사람과 세상

이철승 의원 별세, 권력을 위해 살다간 극우주의자 사쿠라 이철승 생애와 평가

올드코난 2016. 2. 27.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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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7선을 지낸 이철승 의원이 94세로 별세했다. 예의상 고인의 명복을 빌며 진보로 잘 못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극우였던 이철승 의원의 생애와 평가를 해본다.


1.생애 요약

이철승(李哲承, 1922년 5월 15일 ~ 2016년 2월 27일 ) 호는 소석(素石), 본관은 전의(全義), 경성부 출생, 전라북도 전주부에서 성장하였다. 일제 강점기 후반 전주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 징집반대 등으로 일제의 감시를 받았고, 그 뒤 보성전문학교 내 반일 학생으로 강제 징집 거부 등으로 요시찰 인물로 지목되다가 1944년 1월 학병으로 강제 징집되어 끌려갔다. 그 뒤 오사카의 병참부대에 배속되어 1945년 8월 자살특공대로 차출당했다가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일본군에서 탈출하게 된다.


광복 직후 미 군정기에 김구, 김성수 선생 등을 도와 학생 반탁 집회를 주관하고, 1948년 정부 수립 이후에는 제헌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 친일 경찰 채용 등을 반대하기도 하였다. 제1공화국 기간 중 이승만과 결별 이후 야당 정치인으로서 활동했다.


1961년 5·16 군사 정변 이후 박정희의 회유를 거부하고 반 군정 운동을 벌였고 1970년대 김영삼, 김대중, 윤보선, 유진산 등과 신민당의 당권을 놓고 경쟁관계에 있었고 중도화합론을 주장해 사쿠라 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낙선한 이후 정계를 은퇴해 우익운동과 반북반공운동을 계속했는데 우파 단체의 원로로 우익 청년들을 지도하였고, 김영삼, 김대중 정권에 반대하는 우파 단체들의 후견인이 되어 여러 우익 단체 활동을 지원하고 강연 활동 등을 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2. 올드코난 평가

이철승 같은 이들을 어느 한가지로 평을 하기는 어렵다. 그의 삶은 분명 오른쪽이었다. 우익이며 극우에 가까운 말도 서슴치 않았지만, 그를 수구로만 볼 수도 없는 것이 일제 강점기에는 반일 감정이 있었고, 해방후 이승만 편에 있다 돌아선 것도 친일매국노들이 친일 경찰이 되는 것에 반감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이승만을 부정한 것도 아니다. 생애 후반 그는 이승만을 존경한다는 강의를 내가 직접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의 정치 인생은 야당이었다. 야당 지도자의 한사람으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장면, 윤보선 등과 나란히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분명 야권 인사였지만 박정희 유신 시절에는 협력을 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하는데, 1972년 이후 "중도통합론"을 주장하며 당시 유신독재에 대한 투쟁을 주장하는 윤보선, 장준하, 김영삼, 김대중 등 야권 지도자들과 대립하면서 박정희 정권과 타협을 하고 실제로 많은 공헌을 하게된다.


내가 무척 혼란스럽게 느끼는 것도 이 시기였다. 분명 그는 애국자와 같은 말과 주장을 펼쳤고, 민주주의를 주장하기도 했지만, 이승만과 박정희 편에도 섰고, 이후 이들의 영향을 받은 한국의 극우주의자들(자칭 보수)을 위해 남은 생을 살았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을 ‘도둑맞은 10년’이라고 불렀고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에도 국민장을 반대했는데, “투신자살한 대통령을 이승만 대통령이나 김구 선생과 같은 배열로 국민장을 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관례에 두고두고 혼란을 줄 수 있다”는게 이유였다. 이 외에도 이철승과 얽힌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이철승이라는 사람은 이도저도 아닌 경우가 참 많다는 것을 알게된다.


70년대에 겉으로는 중도 화합을 주장했지만, 이는 화합을 가장한 자신의 이권 챙기기에 지나지 않았다.

둘이 싸우면 그 사이에 끼어 중재를 가장해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자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철승이 당시 야권내에서 화합을 외친 것은 야권 경쟁에서 세가 약했던 이철승의 전략이었을 뿐이다.

당시 정치인들이 그를 사쿠라라고 불렀던 것도 이때문이다. 


정리해 보면, 이철승은 권력을 지행했던 사람이고, 강자에 굴복하는 사람이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장점과 단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철승은 이런 것을 따진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옳고 그른 것을 본 것도 아니었다. 대의를 위해 살았다고 주장하지만, 이철승의 삶을 돌아보면 그는 자신을 위해서 살았고, 권력욕을 애국(愛國)으로 포장한 다른 보수들과 크게 다를바가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단지, 남 밑에 있기 싫어하는 반골 성향은 강했던 인물이었다.


개인적으로 이철승 지지자들에게는 참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철승은 존경을 받을 정도의 위인은 아니었다. 우익이어서 싫은 것이 아니라 이승만의 그림자를 그에게서 봤기에 그를 싫어한다.


마지막으로 간혹 모르는 사람은 이철승이 야당에 오래있다고 해서 진보 인사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는 1번은 보수이며 여당, 2번은 진보이며 야당이라고 하는 등식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철승은 야권에 있었지만, 그는 극우였고 권력지향인물이며 기회주의자였다는 말로 마무리한다.   


글 작성/편집 올드코난 (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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