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세상

LA폭동 사건 (4.29사태) 배경 (로드니 킹 사건, 두순자 사건)과 이유

올드코난 2016. 4. 2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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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4월 29일부터 5월 4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흑인 소녀에 대한 인종차별에 격분한 흑인들에 의해 유혈 사태가 발생한다. 이를 1992년 로스앤젤레스 사태(1992 Los Angeles Riots, Rodney King Riots, South Central Riots, 1992 Los Angeles Civil Disturbance, 1992 Los Angeles Civil Unrest)로 불리는데, 4월 29일 이후 5월 4일까지 수천 명이 LA에서 시위를 일으켰으며, 유혈, 방화로 확산되었다. 재산 피해액이 약 10억 달러를 넘었다. 총 53명이 사망했고 수천 명이 부상당했다 이 사태의 배경에는 흑백인종차별이 있었고 2가지 사건이 유혈 사태를 불러왔다. 이에 대해 정리를 해 본다.

LA폭동 (4.29사태) 사건 배경과 이유, 로드니 킹 사건, 두순자 사건 설명


1. 로드니 킹 사건

1991년 3월 3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LA)에서 몇 명의 백인 교통 경찰관이 과속으로 질주하는 흑인 운전수 로드니 킹(Rodney King)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무차별 폭행을 가한다. 이 경찰관 폭행 사건은 피해자인 로드니 킹이 백인 교통경찰관들의 집단구타로 평생 청각장애인이 될만큼 심각한 사건이었지만 다음해 법원은 과잉진압 백인들에게 사실상 무죄를 선고하다.

하지만 당시 4명의 LA 경찰관이 로드니 킹을 집단 폭행하는 모습이 TV로 공개되면서 흑인사회가 분노를 일으킨다.



2. 두순자 사건

1991년 3월 16일, LA의 한국인 가게 주인이었던 두순자가 흑인 여성 라타샤 할린스(Latasha Harlins)를 절도범으로 오인해 말다툼과 몸싸움을 끝에 두순자가 상점을 나가려던 라타샤 할린스의 뒷머리를 조준사격해 총격 사망하게 만든 사건으로 이를 두순자 사건(斗順子 事件)으로 부른다. 재판과정에서 라타샤 할린스는 빈민 가정 출신이지만 착실히 학교를 다니던 평범한 고등학생이었고 두순자의 총격 역시 조준사격에 의한 것임이 드러났다. 명백한 두순자의 잘못이었다. (같은 한국인라도 죄는 죄다.) 하지만 판사는 두순자에게 집행유예와 40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선고했는데 LA 흑인 사회는 살인 사건에 대헤 너무 적은 형량이라는 불만을 갖게 되고 이런 불만이 결국 1992년 4월 29일 로스앤젤레스 폭동에서 한인들의 상점이 많은 피해를 입은 원인이 되었다. 만약 라타샤 할린스가 백인이였더라면 형량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3. LA폭동

미국의 흑백인종갈등은 아주 오래된 일이지만, 로드니 킹 사건의 재판 결과는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흑인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결국은 폭동으로 이어진다. 4월 29일 LA폭동이 시작되자되고 이때 미국의 ABC 방송과 LA지국 KABC TV에서는 1991년 3월 16일에 흑인 빈민 지역인 남부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생한 '두순자사건'을 집중 보도하는데 이 보도는 한국인과 흑인 사이의 인종 갈등을 야기시키며 폭동을 악화시키게 된다. 그리고 흑인들의 백인들에 대한 분노를 한국인에게 돌아가도록 만들었고, LA폭동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한국인들이었다.

폭동이 일어나자 미국 경찰은 비버리 힐즈와 헐리우드 등 부자들이 있는 부촌을 집중해 지켰고 반면 피해가 극심한 한인 상점이 몰려 있는 지역은 방관했다. 결국 재미교포 한국인들은 가게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들고 진지를 구축하고 흑인들에 맞서 직접 대응했다.

1992년 5월 1일 캘리포니아 주방위군이 출동한 것을 계기로 4.29 사태는 서서히 진압되었고 5월4일 공식적으로 폭동의 종식을 선언하지만, 이후 몇일동안 산발적인 폭력 범죄 사건이 일어났다. 실재로는 5월9일 종료된 것으로 보인다.


4. 결과

흑인들의 주 공격대상은 한국이었다. 그래서 한국인으로 보이는 동양인들에게 무차별 폭력과 약탈을 자행했다. 53명이 사망하고 1만 1천명이 체포되고 10억달러 가까운 재산피해가 발생한 20세기 미국 최악의 폭동 사건으로 최대 피해자는 한국인이었다. 약탈당한 4500개 상점 중 2300개가 '한인 상점'이었고 한국인 피해액은 3억 5천만 달러로 전체 피해액의 45%에 달한다.



5. 이후

LA폭동이후 한국인과 흑인들의 갈등 해결의 노력을 하면서 관계가 많이 개선되었다 한다. LA 한인 10만명의 '평화행진'을 통해 "모든 소수자를 위한 정의"를 주장는 등 한인들이 미국사회와 정치에 더 참여를 하는 노력을 갖게 되었다.


6. 교훈

LA폭동 사태는 미국사회의 치부를 드러냈다는 평가들이 많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흑백 인종갈등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고, 빈부 격차 역시 미국사회의 갈등으로 남아있다. 여기에 두순자 사건을 집중 보도해 흑인들의 분노를 한인들에게 돌린 언론들의 행태는 한국인들을 주 공격대상으로 만들었다는 점 등을 감안해 보면 LA폭동은 지금 한국에 몇가지 교훈을 남겼다.

여론을 선동하고 있는 조중동 같은 보수 언론이 지역주의, 보수와 진보 등 이념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고, 이로 인한 갈등은 결국에는 국민들이 서로를 분노하고 다투게 만들고 있으며, 갈등을 조장한 수구세력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빈부격차 또한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과 계급차별과 남녀차별 등이 극심해 지면 국민들의 불평과 불만은 결국에서 소요사태로 이를수 있다는 것을 LA폭동이 보여주었다.


결론은 정치를 잘하라는 것이다. 좋은 정치는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지,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들을 분열시키지 말고 민심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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