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세상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 별세, 막둥이 구봉서 어떤 사람이었나.

올드코난 2016. 8. 27.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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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코미디안 구봉서 선생님이 별세했다는 소식입니다. 안타깝고 슬픈 마음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며 구봉서님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 봅니다.


구봉서(具鳳書, 1926년 11월 5일 ~ 2016년 8월 27일) 선생은 평안남도 평양부 출신으로 당시 의료상을 하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3살이 되던 때 평안남도 대동군에 이주했다 다시 경성부(서울)로 상경했는데, 부유한 가정 덕분에 여러 악기를 구입해 배우게 되고 이때부터 그의 연예인의 꿈이 시작됩니다. 해방이 되던 해인 1945년 대동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45년 태평양가극단에서 아코디언 연주자로 악사 생활을 시작하며 연예계 활동을 시작합니다. 1947년 일본 동양음악전문학교를 수료하고, 20살에 태평양가극단을 시작으로 육군 군예대와 해병대 군예대를 거쳐 영화, 라디오, TV에서 활동합니다. 1945년부터 1954년까지 태평양·백조가극단 및 육군군예단에서 활동했고, 해병연예대를 창설하는데도 참여했다고 합니다.

30살이던 1956년 영화 ‘애정파도’로 영화배우로 데뷔해 10여편에 출연을 합니다. 이중 영화 ‘오부자’는 구봉서의 출세작으로 이때 ‘막둥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36살이 되던 1961년에 코미디언으로 데뷔를 하게됩니다. 많은 이들이 구봉서를 배우로서보다는 코미디언으로 기억하는 것은 그만큼 희극인으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배삼룡과 단짝을 이룬 그의 코미디는 한 시대를 풍미하게 됩니다.


그리고 희극인으로서의 삶 못지 않게 그의 사생활은 매우 깨끗해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평소 가정을 중요시해 애처가로 알려졌고 이런 애처가들의 사적인 모임인 `공처가구락부' 회원이기도 했습니다. (곽규석, 신영균, 박노식, 장동휘 등이 가입되었다고 알려짐)

2016년 8월 27일 오전 세상을 떠날때까지 그의 말년은 기독교도인으로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보냈다고 합니다.

그의 삶을 요약해 보면, 희극인으로서 참 열심히 사셨고, 좋은 아빠였고, 좋은 남편에 진솔한 신앙인이었다고 정리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스캔들도 없고, 도박이나 탈세같은 죄와는 인연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성실하고 모범적인 구봉서 선생은 코미디계의 대부이며 인생의 선배로 불릴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빌며 이만 줄입니다.


[참고: 주요 수상 내역] 1987년 문화포장, 1992년 옥관문화훈장(4등급), 2000년 MBC 코미디언부문 명예의 전당, 2006년 제13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연예예술발전상(연기), 2013년 은관문화훈장(2등급)

글 작성/편집 올드코난 (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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