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세상

(13공수 특전여단) 특전사 포로체험 훈련 사망사고 원인과 문제점.

올드코난 2016. 11. 2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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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발생한 제 13공수 특전사 포로체험 사망 사고는 사고 발생과정도 문제지만, 사고 이후는 솜방망이처벌로 더 큰 비판을 받아야 한다. 이 사건에 대해 정리해 본다. (글 참고: 2014년 9월3일 MBC "특전사 포로 심문 훈련 중 호흡곤란 증세…'2명 사망'" 취재 정재영 기자/ KBS1 2016년 1월7일 “특전사 포로체험 사망 사고, 솜방망이 처벌 논란”/나무위키 참고)

2014년 1987부대 제 13공수 특전여단 (흑표부대) 포로체험 훈련 사망사고 원인과 문제점 (전인범 특전사령관 책임 회피 의혹)


1. 포로체험 훈련 개요

미국이나 영연방의 특수부대에서 행하는 훈련으로 전쟁 중 적진에서 포로로 붙잡혔을 때 고문 등에 대비하기 위한 생존/탈출 훈련의 일환으로 밀폐된 천주머니를 씌우고 양손을 뒤로 결박하고 무릎을 꿇리는 것이다. 미국 네이비씰과 그린베레 같은실제 포로 경험이 있는 전 현직 대원들이 훈련 과정에서 감독하고 참여해 훈련생들이 부상이나 치명상을 입지 않도록 의무지원이 대기하고 있다. 또한 참가자가 일정 단계에서 포기 의사를 천명하면 그 시점에서 훈련은 바로 중지된다.


2. 과거 한국의 특전사 고문저항 훈련

80/90년대 고문저항훈련을 특전사에서 실시했었다는 증언이 있다. 미국 항공기 조종사들의 고문 체험 훈련을 벤치마킹해 기존 특수전문유격 교육의 한 과정으로 도입했었다. 문제는 당시 특전사 분위기와 훈련 목적이 육체적 고문 및 가혹행위로 변질되었다는 점이다. 결국 90년대 중반 고문저항 훈련은 없어졌고, 모든 특전사 대원들이 특수전교육단에서 특수전교육 중에 기본으로 받는 심하지 않은 정도의 고문저항훈련은 존속되었다 2004년에 없어졌다.


3. 2014 포로체험 훈련 시작 배경

2004년 사라진 고문저항 훈련이 2014년 포로체험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갑작스럽게 부활했다. 문제는 10년 동안 실시를 하지 않았던 훈련이기에 경험도 없고 숙달된 교관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특수부대의 고문저항훈련을 어설프게 흉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된다. 임OO 군인권센터 소장 등 인권활동가들은 “전인범 특전사령관이 영화 브라보 투 제로를 특전사 고위간부들에게 보여주며 이런 훈련과정을 만들라고 지시해서 졸속으로 시행된 훈련”이라고 밝혔다.


4. 포로체험 훈련 시작 및 사건 발생

2014년 9월 2일 13공수특전여단에서 훈련이 실시되었다. 5인 1조를 기반으로 1명의 중대장과 9명의 하사관으로 구성되었다고 하며 포로 대상자들은 이틀을 굶은 상태로 얼굴에 두건을 쓰고 손발이 묶인 채 심문실에 감금돼 있었다. 훈련이 시작되고 사고 발생 30분 전 포로 역할을 하던 하사가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교관은 훈련의 일부로 여겨 중단하지 않았다. 결국 질식증세가 나타나자 충북 청주의 성모병원으로 후송하지만 이OO하사(23), 조OO하사(21)가 숨졌고 전OO하사(23)는 다행히 목숨을 건진다. 병원 측은 사인을 질식으로 추정했다.


5. 사고 원인

검증이 안 된 신발 주머니를 사용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무엇보다 훈련 경험이 사실상 없고 포로체험에 대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간부들이 훈련을 주도했다는 점이 근본 문제였다. 사망자를 포함해 포로훈련의 대상은 경력이 짧은 하사들이었다. 여기에 현장에 의료지원 대기도 없었다. 또 12월 18일 채널A 보도에 따르면 사건 당시, 유부남이던 책임교관이 내연관계에 있던 여자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느라 대처가 늦어졌다고 폭로했고 군은 이 사실을 알고도 은폐했다는 것이다. 뭘 모르는 간부들이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후배들을 데리고 이런 위험한 훈련을 실시했다는 것이다. 이는 지휘에 책임이 있는 것이다.


6. 사망자 처리

이유성 하사는 9월 4일 중사로 추서되고 국립대전현충원에 봉헌되었고, 조용준 하사는 유족들이 부검을 요청하여 영결식이 연기되었다가 부검 결과 별다른 특이점이 나타나지 않아 역시 중사로 추서되고 현충원에 봉헌되었다.


7. 국방부 솜방망이 처벌

해당 훈련이 전인범 특전사령관의 직접 지시에 따라 도입되었다는 점이 알려졌고 전인범 당시 사령관의 해임 등 문책을 요구하는 주장이 있었지만, 책임을 지지 않았다. 다른 간부들 역시 큰 책임을 지지 않았다.

포로 체험 훈련 질식사 사고 책임자들에 대해 1심 군사법원에서는 교관 4명에게 벌금형을 특전사 교훈처장은 재심의를 통해 무혐의를 받았다.


 특전사령관 전인범 : 서면경고

13공수여단장 ○○○ : 감봉 1개월

특전사 교훈처장 ○○○: 정직 1개월 * 이후 무혐의 처분

13공수참모장 ○○○: 정직 2개월

교관 4명 ○○○: 벌금형


2심 고등군사법원은 훈련을 계획한 제13 공수특전여단 작전참모 김모 중령과 여단 작전처 교육훈련계획 장교인 김모 소령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급심에선 벌금 천 5백만 원 선고) 재판부는 무죄 선고 이유에 대해 "피고인들이 일부 업무상 주의 의무를 위반했더라도 피해자들의 사망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1심에서 각각 벌금 2천만 원을 선고받은 교관 4명에 대해서는 군 검찰의 항소가 기각되면서 상고를 포기해 벌금형이 확정됐다.


육군은 전인범 특전사령관은 도의적인 지휘책임은 있으나 법적책임은 없다는 입장이며 2016년 10월 장성 인사에서 2차 지휘책임이 있던 13공수여단장 정재학 준장을 소장으로 진급시켰다.


8. 문제점

부실한 훈련 과정에서 2명의 특전사 대원이 숨졌지만 이를 계획하고 지휘한 장교와 교관 모두에게 고작 벌금형에 무죄가 결정되면서 흔히 말하는 군대에서 죽으면 개죽음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사건은 이전 의문사들과는 달리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사건이다. 다시말해 사건 내용과 처벌받을 대상도 분명함에도 솜방망이 처벌로 끝났다는 점이다.


당시 특전사 사령관이 전인범 중장은 박정희 아들 박지만과 육사 37기 동기생으로 이후 이기백 합창의장의 후원과 뛰어난 영어실력으로 승승장구하던 인물로, 만일 이 당시 특전사 사령관이 전인범 중장이 아니었다면 그때 당장 옷을 벗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전인범 중장은 사고 발생 2년 후인 2016년 7월 28일 미국 장성들까지 참여한 아주 거창한 명예로운 전역식을 치른다. 물론 이날도 이 사건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임OO 군인권센터 소장은 제13공수특전여단 훈련사망사고의 지휘책임이 전인범에게 있음을 지적하며 처벌을 받지 않고 영원한 특전사령관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전역한 것을 비판했고 필자도 이에 동의한다.


덧붙여 전인범 중장의 전역전 마지막 보직은 육군본부 정책연구관이다. 하지만 2016년 7월 28일, 경기도 이천시 육군특수전사령부 연병장에서 전역식을 가졌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평생 특전사에서 복무했다 여겼을 것이다. 35년 군 복무중 고작 2년 안되는 기간 특전사에서 근무를 했을 뿐이다. (그나마 천리행군같은 특전사 훈련을 통과한 적도 없다.)

지금 인터넷에서 전인범을 영원한 특전맨이라고 쓴 글들이 많은데 본인이 썼는지, 언론배포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특전맨이라는 칭찬은 쓰지 말기를 바란다. 전인범은 특전사 훈련을 통과했던 사람도 아니고 별 넷을 달기 위해 잠시 특전사 사령관으로 복무를 했었을 뿐이다. 특전사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특전사 사령관을 맡았던 것이다. 전인범을 특전맨이라고 부르는 것은 진짜 특전사 전우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다. 쓰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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