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지 시간으로 지난주 금요일 12월 2일에 한국계 미국인 다이빙 선수 출신 새미 리가 사망했다. 세계 다이빙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인물이지만, 미국에 살고 있어서인지 오늘 JTBC뉴스룸을 통해서야 알게된 사람이 많을 것이다. 간단히 정리해 본다.
미국에서 동양인이라는 인종차별을 극복한 재미교포2세 세계적인 다이빙 선수 올림픽 2관왕 새미 리 (Sammy Lee) 생애
새미 리(Dr. Samuel Lee 1920.8.1 ~ 2016.12.2)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캘리포니아 주 프레즈노에서 한국에서 이민 온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극심한 인종차별 때문에 새미 리는 수영장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었다고 전하지만 물 대신 모래 위로 점프하며 훈련을 거듭해 결국 쟁쟁한 미국 백인들을 누르고 미국 대표선수가 되었고 1948년 런던 올림픽 다이빙에 출전 플랫폼에서 금메달 스프링보드에서 동메달을 획득한다. 미국에서 아시아계로는 처음으로 금메달을 딴 선수이며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의 다이빙 금메달이었다. 다음회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도 출전해 플랫폼에서 금메달을 따며 올림픽 다이빙 사상 최초의 2회 연속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선수 시절을 마감하고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의대에서 의학을 전공 의학 박사학위를 취득 후 의사로 활동하면서 여러 다이빙 선수를 지도한다. 이들 중 유명한 선수는 1984년과 1988년 하계 올림픽 다이빙 부문에서 2회 연속 2관왕에 오른 그레그 루가니스였다.
한국과도 인연을 맺어 1953년~1955년에는 미8군 군의관으로 근무하면서 이필중, 조창제, 송재웅 등 다이빙 선수를 지도하고, 1964년 동경올림픽에서 한국선수들을 지도하기도 하였다. 2010년과 2014년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명예 홍보대사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2010년 한국인들에게 자신의 활동상을 알리기 위해 새미리가 미국 대표로 올림픽 경기에 출전하면서 착용한 운동복, 모자와 수영복을 독립기념관에 기증했고 이 물품들은 2012년 8월 13일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501호로 지정되었다.
말년은 치매와 심장 질환을 가지고 있다고 전하며 2016년 12월 2일 폐렴 합병증으로 캘리포니아 뉴포트 비치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향년 96세. 한명의 아들과 딸 하나 그리고 3명의 손자를 남겼다. 한국인을 자랑스럽게 만든 고인의 명복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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