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전] OO여대 심OO 총장 남편되는 전인범 중장의 일화가 최근들어 인터넷에 많이 올라와 있다. 이 글들만 읽고 보면 이순신 장군이후 대한민국 최고의 영웅은 전인범 중장인 것 같다. 나는 그를 직접 만난 적도 없고 그를 고의적으로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지나칠 정도로 영웅으로 포장되고 미화하고 있다. 특히 당시 현역 군인 신분으로 대대적인 홍보와 영웅 행세를 하는 행태도 보기 좋지 않지만 이는 다분히 어떤 의도가 있지 않은가 의심이 든다. 지난 2016년 7월 전역을 해 현재는 민간인 신분이기에 군 명예는 훼손하지 않는다고 판단 그의 실체에 대해 조금씩 정리해 보기로 하고 오늘은 전인범의 출세의 배경이며 영웅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사건인 아웅산 테러 당시 목숨을 걸고 이기백을 구출 한 영웅이라고 과장하는 것부터 짚어 보겠다. 위키백과 등에 공개된 내용을 토대로 차근차근 정리해 본다. (참고: 위키백과, 나무위키, 전인범 방송 인터뷰 등)

전 국방장관 이기백 구출 전인범 장군 일화, 전인범 아웅산 영웅 과장되고 포장된 것. 칭찬정도로 끝낼 일이었다. (전두환 정권 실세 이기백이 전인범을 키웠다. )


우선 그의 어린시절부터 간략히 살펴본다.

1. 금수저 출신

1958년 9월 6일 서울 출신 경기고등학교(1977. 73회), 육사(1981. 37기) 졸업. 그의 집안을 보면 대표적인 금수저 집안이다. 할아버지 전항섭은 유한양행 사장이었고, 아버지 전주화는 한의사 어머니 홍숙자 박사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외교관이자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였다. 그의 고모 전혜성 예일 대학교 교수의 장남으로 미국 보건복지부 보건담당 차관보를 지낸 하워드 고는 그에게 내종형이 된다. 부인 심OO은 1956년 생으로 남편 전인범보다 2살 위이며, 현재 OO여대 총장이다. 전인범의 외모 때문에 서민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대표적인 한국의 상류층 집안이다.


2. 어린시절

7살에 이혼한 외교관 어머니 홍숙자와 미국에서 5년 정도 살았고 미국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을 다룬 TV 시리즈 컴뱃(Combat)을 보며 샌더스 중사에게 푹 빠졌다고 한다. 12살 때 한국에 돌아와 외삼촌과 국군의 날 행진을 보고 외삼촌에게 '군인이 되려면 육사에 가야 한다'라는 말을 듣고 육사 행을 결정했다고 한다. (나무위키 인용)

학창시절 겁도 많고 운동도 못해 체육에서는 C, D 정도를 받았다. 단, 어머니 홍숙자 박사는 전인범에게 한국에서 AFKN만 보게 하고, 저녁식사 때는 영어로만 대화하게 했는데 이 영향으로 능숙한 영어실력을 갖게 된다. 그리고 평소 밀리터리 매니아라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그의 사진들을 보면 총을 들고 사격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 많다. 정리해 보면, 총싸움은 좋아하지만 운동은 못하고 공부도 썩 잘하는 편도 아니고 단지 영어만 잘하는 아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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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육사 입학

1977년 육사 37기로 입학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의혹들이 나온다. 우선 육사 37기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 아들 박지만이 입학한 기수다. 그래서 육사 37기에는 당시 고위 장성들 아들들이 대거 지원한 일명 ‘황금 기수’들이었다. 실재 고위장성 아들 10명이 이때 입학했다고 전한다. 이때 전인범은 입학 성적이 꼴찌에서 두번째였지만 영어시험에서 만점을 받아 합격했다고 본인이 추측하는데 그의 어머니 홍숙자 여사 덕분에 입학할 수 있었다는 뒷말이 나온다. 이유는 홍숙자 박사가 육영수 여사의 통역을 맡았던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홍숙자 박사는 전인범에게 '지만이 잘 챙겨줘라'는 말을 해주었다고 하는데 이는 전인범의 육사 입학 배경이 다른 고위장성들처럼 대통령 아들 박지만과 인연을 맺기 위함으로 볼 수 있다.


4. 실세 군인 이기백을 만나다.

육사 졸업후 소위에 임관되고 1981년 30사단 소대장으로 근무 중 당시 1군단장 이기백 중장 전속부관으로 발탁되는데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중위 계급을 달고 3성 장군인 군단장 전속부관을 맡게 된 사례는 이때가 처음이다. 더구나 이기백은 대한민국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의 친구였는데 고작 중위에게 전속 부관을 맡겼다? 아직 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단지 여기에도 홍숙자 여사가 있을지 모른다는 뒷말만 돌 뿐이다. (진싸 사실은 본인들만 알겠지)


[참고] 이기백(李基百) 장군은 1931년 10월 20일 충청남도 연기군 출생으로 본관은 고성(固城) 호는 석관(石寬)이다. 전두환과 육군사관학교 동기로 제5공화국에서 합참의장과 국방부장관을 지냈던 실세 장군이었다. 또 대국민 사기극 평화의 댐 사건의 주역 중 한 명으로 전직 군장성 모임인 성우회 회원과 한나라당 특임고문으로 활동한 보수 정치인으로 비난을 많은 받는 대표적인 군출신 정치인.


5. 아웅산 테러 사건

1983년 10월 9일 아웅 산 묘역 테러 사건 당시 이기백은 육군 대장이며 합동참모의장이었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수행해 아웅산 묘역으로 갔던 것이며 이때 전속부관인 전인범 중위가 동행했다.

이날 아웅 산 묘역 테러 사건이 발생하는데, 언론에는 이렇게 알려졌다. “폭탄 테러로 아수라장이 된 묘역에서 추가 폭발의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에 뛰어든 그는 중상을 입은 이기백 장군을 구출해냈다.” 이 사건으로 전인범은 보국훈장 광복장을 수훈한다. 하지만 이는 과장된 표현이다. 사건 당시를 조금 더 세밀히 살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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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과대 포장된 진실

당시 방송에 내보낸 편집된 영상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폭발이 발생하자마자 바로 달려간 것처럼 알고 있다. 사고 당시 현장에는 전인범이 먼저 달려간 것이 아니었다. 다른 수행원들과 현지 경찰들이 먼저 사고 현장에 달려갔던 것이고 전인범은 그보다 늦게 도착했다. 이는 전인범이 등장한 영상을 확인해 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원본 영상을 보면 전인범은 부상당한 이기백을 발견하고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누구 없어요”라며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주변 도움으로 철판에 이기백을 싣고 여러사람이 같이 구해낸다. 전인범 혼자서 이기백을 구출해 나온 것이 아니다. 물론 전인범이 이기백을 도운 것은 맞다. 하지만, 전인범이 목숨을 걸고 2차 폭발의 위협을 무릅쓰고 달려갔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장된 것이다.


군대를 나온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똑같은 장소에서 연이어 폭발이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폭발의 위력 때문에 동시에 다 터지고 만다. 그래서 군대에서 제대로 훈련을 받은 사람은 긴박한 전투 상황에서는 큰 폭발이 발생한 곳이나 폭탄이 터졌던 곳으로 숨는게 최선이라고 가르쳐 준다. 필자도 군생활 당시 교관에게 배운 내용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시 전인범은 이기백의 전속 부관이다. 상관을 구출할 임무가 그에게 있는 것이다. 만일 전인범이 이기백을 업고 나오지 않았다면 군법에 회부될 사항이었다. 전속 부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고 부관으로서의 의무였다. 그런데 여럿이 함께 들고 나온 정도로 전인범이 보국훈장 광복장을 받은 것은 과했다고 본다. “수고했어” 한마디로 끝낼 정도 수준이었다. 만일, 들고 나온 상대가 이기백이 아니었다면 훈장은 없었다. 그리고 훈장을 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7. 정치적 상황

아웅산 테러 사건의 테러의 목표는 바로 전두환 대통령이었다. 차량 정체로 도착시간이 지연되면서 운이 좋게 전두환이 도착 전 폭탄이 터졌던 것이며 무사했다. 하지만, 수행원들이었던 서석준 부총리와 이범석 외무부 장관, 김동휘 상공부 장관 등 각료와 수행원 등 한국인 17명과 버마인 4명 등 21명이 사망한다. 그리고, 사건 당시 현장 유일의 생존자는 바로 이기백 장군이었다. 당시 육군대장 이기백은 합동참모의장이었고, 전두환 대통령의 육사동기이며 절친이었던 5공 실세 장군이었다. 사건 당시 국내 상황은 전두환의 독재와 인권탄압에 대한 반감으로 국민들이 분노를 느낄 때였다. 이러한 때 전두환은 아웅 산 묘역 테러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북한의 테러는 분명 비난 받아 마땅한 짓이지만 전두환은 이 사건을 이용해 안보를 이유로 언론과 인권을 통제하게 된다. 그리고. 전인범을 아웅 산 묘역 테러 사건 영웅으로 포장한다. 전인범이라는 과장되고 포장된 영웅은 이렇게 탄생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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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과장된 영웅

당시 전인범이 이기백을 업고 나온 것은 잘한 정도였다. 직속 부관으로서 당연히 할 도리이며 그러지 않았다면 그건 오히려 군법 위반이었다. 전인범이 이기백을 업고 나온 정도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구출해낸 진짜 시민 영웅들과 비견을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당시 구출 상황이 폭탄이 터진 이후여서 두려움은 느꼈겠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주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다. 겁을 먹었을 뿐이다. 전인범의 행동은 칭찬은 받을 정도였지 훈장은 과했고 영웅 칭호도 심했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필자 역시 자랑 같지만 구조 작업을 몇 번 해봐서 안다. 그 까짓것 정도라는 말 한마디로 끝냈고 단 한번도 상을 달라는 말을 해 본적이 없다. 상을 받기 위해 누군가를 도운 적도 없다. 이는 대부분의 시민 영웅들의 공통된 마음가짐이다. 전인범처럼 영웅이랍시고 과시하는 사람보다는 묵묵히 남을 돕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9. 무책임한 지휘관

전인범이 구했다는 이기백은 대국민 사기극이었던 평화의 댐 사건의 책임이 있는 인물이다. 전인범은 이런 자를 구했을지 모르지만 2014년 13공수에서 2명의 안타까운 젊은이들을 희생했다. 무엇보다 전인범은 이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았다. 필자가 전인범 중장을 싫어하는 것도 이런 무책임한 사람이 영웅 행세를 하면서 인터넷 상에서 대단한 군인, 위대한 장군 흉내를 내는게 싫기 때문이다. 전인범은 자신의 한 일에 대해 진심으로 속죄하고 책임을 지기를 바란다. (참고글 =>(13공수 특전여단) 특전사 포로체험 훈련 사망사고 원인과 문제점.)


10 마무리.

마지막으로 현역 군인 신분으로 이처럼 과도한 홍보를 했던 군인은 여태 2명 있었다. 박정희와 전두환이었다. 내가 전인범 중장을 경계했던 것도 현역 군인치고는 너무 홍보에 열을 올리는게 다소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너무 과장하고 있고 그래서 자꾸 경계심을 갖게 된다. 전두환의 절친이며 정치군인 이기백이 키워준 전인범은 계속해서 지켜 봐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글 작성/편집 올드코난 (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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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더불어 사는 세상 강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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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똥배나온 장군 2017.01.11 04: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인범 장군이 어찌 그리 영어를 잘하는가 했습니다.
    하하하 똥배나온 특전사령관도 처음 보았지만 현역시절 내내 미군과 아주 밀접하게 지내기도 했지요.
    미군 행사에 부인학교 관계자 학생들을 줄줄이 달고 다녀서 주한미군 행사 사진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내가 주한미군시절 사진 보여주던 친구들에게 '이 똥배 나온 장군이 누구냐?' 했더니 '전인범'이라고 해서 그때 알았음 하하하

  3. ㅋㅋ 2017.01.13 21: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쓴놈 이자는 진짜 쓰레기네 쓰레기...사람의 생각이 이렇게 비관적이고 삐뚤어 질 수 있구나를 느끼고 간다..

  4. 글쓴이 말이 맞아 2017.01.15 19: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뭘 좀 아는 사람들은 전인범 대령이 아웅산 영웅이라고 떠들면 비웃어. 나도 대위로 예편한 사람이라 같은 장교로서 평하자면, 전인범 이 사람은 장군이 아니라 장교가 되었다는게 사실은 조금 그렇다는 말들이 많았다. 나는 육사 출신이 아니지만, 전인범이 37기인데, 내가 35기 상관이라 오래 생활했는데, 전인범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많이 하더군. 이렇게 말했지 전대령 이 녀석은 영어 말고는 할 줄 아는게 없어라는 말을 종종했었지.

  5. 한가지 더 2017.01.15 19: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인범 대령은 정말 몸치야. 몸이 비만한 정도가 아니라 운동도 못하고 행군도 제대로 못해. 작전 능력이 뛰어난 장교도 아니었어. 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군 생활을 해 본 사람으로서 있는 그대로 평한 말이다.

  6. 동의 2017.01.24 10: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이버에서는 전인범을 영웅으로 묘사하는 글들로 넘쳐나는데,이기백도 그렇고 전인범도 그렇고 이 사람들 인터넷에서 말하는 것처럼 참군인들은 아니지.
    지금 그네때문에 이런자들에 대해 관심들이 덜한데, 이런 자들을 정말 눈여겨 봐야돼

  7. Favicon of http://oldconan.tistory.com BlogIcon 더불어 사는 세상 강 소장 2017.01.24 17: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에 대한 어떤 비판도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그런 댓글은 삭제하겠습니다.

  8. 노산 2017.02.04 23: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 기억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1981~1984년까지 육군본부에
    근무했던 사병출신인데
    이기백이 2군사령관에서 합참본부장인가로
    국방부로 옮길때 직속부관이 맞다면
    전임범에 대한 이제까지 가졌던 참군인
    이라는 좋은 감정을 버리고 싶네요.
    지금까지 그가 이기백의 부관인줄
    전혀 몰랐거든요.
    아닐지도 모르지만 아는분 계시는지
    그때 저는 사병으로 그를 업무상 만났는데
    일요일 날 원칙적인 얘기를 했다가
    자유복장인날 복장가지고 시비걸고
    사병이라고 고압적인 태도로 무시했거든요.
    아니라면 전인범씨 본인이라도 댓글을
    달면 내리겠음

  9. 버들잎 2017.02.05 16: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인범 장군이 아웅산 당시 이기백 의장을 수행할때, 계급은 중위였지만, 국방부에서 임시 계급장으로 대위를 달아 주었습니다. 의전상...사건 당시 폭발 소리를 듣고 이기백 장군이 화염속에 쓰러지자. 달려와서 응급처치를 한것은 맡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정부 고관들을 신속히 들것에 옮겼죠...당시 이기백 의장이 정복을 이고 철제 지휘장을 단 덕분에 일부 파편들을 방탄역활을 해내어 중상으로 끝이 났죠..머리에 좌상부위를 찾기위해 애를 썼는데 피로 궅어져 머리카락이 뭉치자 좌상부위를 찾이 어려웠다는 것이 이기백 장군의 회고입니다. 나중에 전인범 장군이 27사단장이 되자 장교 부사관 장병 할것없이 반싹을 했다는 전설..이분이 어쨰서 육사에 들어갓다는 것은 일화는 모르지만, 박지만 생도가 입학한것을 알고 어머니가 집어 넣었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요? 재수를 한것도 1년 일찍 집어 는것도 아닌데..나중에 이 덕분에 대장진급이 유력하다 했는데.. 중장 1차보직에서 전역합니다.
    그리고 홍숙자 여사와 이기백장군의 후견과 모종의 뒷거래가 있다고 하시는데..홍숙자 여사가 여성 최초 대통령 후보로 나갈떄. 전두환 대통령이 노태우 후보를 위해 힘써달라 이 장관을 통해 연락을 했지만, 결국 홍숙자 후보가 후보단일화를 한쪽은 당시 통일민주당 대선후보 김영삼이었습니다..이에 전두환이 버럭 화를 냈답니다. 아마 전두환도 전인범 장군의 가걔도를 잘 알고 그런 제의를 했겠죠..

    • Favicon of http://oldconan.tistory.com BlogIcon 더불어 사는 세상 강 소장 2017.02.05 16: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박지만 생도가 입학한것을 알고 어머니가 집어 넣었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요?"라는 대목은 이렇게 설명하는게 좋겠군요. 육사 입학 성적이 안되는데 어머니의 도움이 있었다는 그런 뒷말이 있다는 겁니다.

    • Favicon of http://oldconan.tistory.com BlogIcon 더불어 사는 세상 강 소장 2017.02.05 16: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또 "피로 궅어져 머리카락이 뭉치자 좌상부위를 찾이 어려웠다는 것" 이 대목도 중요한데, 상처 부위를 찾은 것은 의사들이었습니다. 전인범이 아닌데, 착각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더군요.

    • Favicon of http://oldconan.tistory.com BlogIcon 더불어 사는 세상 강 소장 2017.02.05 16: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홍숙자 여사와 이기백장군의 후견과 모종의 뒷거래가 있다고 하시는데." 여기서 모정의 뒷거래라는 말을 한 적은 없고, 단지 홍숙자 여사의 영향력이 있을 것이라는 뒷말들은 있었습니다.

  10. 아웅산 2017.02.05 21: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벌써 언론이 띄우고 문캠프에 정치적 참여가 되었네요~예견이 빠르네요

  11. 아웅산 2017.02.05 21: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인이 성신여대 총장이네요 나경원 부정입학 시비가 있었던~뭔가 찜찜한 기분이 듭니다.

  12. 이건 진짜 2017.02.05 21: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월호사건 최종 책임자가 박근혜이듯 포로체험 질식사 사건도 최종책임자도 전인범이죠.문재인 대표 요즘들어 실망입니다. 이재명으로 갈아타야 하지 않을까? 고민됩니다.

  13. 사실입니다. 2017.02.06 21: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친구 절친이라해서 딱 한번 만났는데 정말 헉 했어요.
    공짜바라고 허풍이 너무심해서 20년전에 본사람인데 뉴스에 나와서 깜짝놀랐어요.
    1년전에 문제인씨 부인도 직접보고 너무 심하게 꼴갑을 떨어서 저런사람이 정치하는 사람에 부인이라니 정말 한심하구나 했어요.
    문제인씨도 자기 부인이 소리치고 억지를 써도 옆에서 가만히 보고 있더라구요.
    그런사람이 무슨대통령이 된다고 정말 이나라 걱정입니다.
    전임범씨 정말 몸치맞아요.
    제가 그때 그랬거든요. 그렇게 배가 나왔는데 훈련은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난 지휘만하고 통역만 한다고.....

  14. 버들잎 2017.02.07 04: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좌상부위를 찾아 신속한 응급 치료는 현장에서 기본입니다. 당시 이 의장의 좌상부위를 신속한 1차 치료를 한것뿐입니다. 전인범 장군은 전문의가 아니지만, 이의장의 전속부관으로 당연 직속상관을 구하는건 당연한 일이지만, 전인범 장군의 신속한 긴급 응급 치료가 없었다면 이의장은 당시 미약한 미얀마 의료시설은 개판이었는데 죽을뻔했겟죠... 님의 주장대로 영웅만들기로 포장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생명을 구한 부하의 후견인이 된다는 것이 잘못인지. 그리고 전인범 중위는 이기백 장군의 후광을 별로 받지 않았습니다. 진급이 그렇게 빠르지 않았습니다. 아웅산 사건 14년이 되서야 96년에 중령 달고 대대장 하고 있었습니다. 속칭 안전보직 꽃보직만 돈게 아니고 전방 대대장 전방 연대장 전방 사단장 등 야전 군인 클래스였습니다. 미국통이라 정책 및 한미연합사 근무도 했습니다. 2005년이 되서야 대령 단분입니다. 장군 진급도 노무현 대통령 시절입니다.노무현 대통령 시절..그분의 전성기였죠.. 그래서 문재인을 지지한건지...
    입학 성적이 안되었다는 정확한 사실 근거를 말해주시길 바랍니다.

  15. Favicon of http://oldconan.tistory.com BlogIcon 더불어 사는 세상 강 소장 2017.02.07 11: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버들잎께서 궁금한 내용은 저 보다는 전인범에게 직접 하시는게 좋을 듯 싶군요

  16. 육군 하사 김하사 2017.02.08 19: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5 사단 중동부 최전방 에서 탱크 몰고 12 .12 에 참석 한 이기백 장군 아닌가요?

    하사 교육 받으러 갈 때 15 사단 연병장에서 신고식 햇던 장본 입니다,

  17. 선담 2017.02.09 22: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인범을 평가하는 위의 글은 특정인에 대한 악평이다 의도하는것이 있는지는 몰라도 글을 보면서
    또 일선전방부대 대대장시절의 우리사무실방문에
    차한잔한 기억밖에 없지만 당당하고 예의가 바른인간미있는 남자참군인의 매력을 분명히 느꼈다
    그날 받은 명함 대한민국육군 중령 전인범 지역민행정 등 협조를 당부하는 모습 그이후 아웅산사건
    관련사실과 그의 부인은 나와 대학동문이라는 것외에 아는게 없고 단지 사병들을 아끼고 금수저티 안내고 다소 정치적 제복출신이란 평이 가능해도 특전사령부를 거쳐 국가안보의 초석을 다진 문재인과 비슷한 훌륭한 국민이라는 생각은 변함없다

    • Favicon of http://oldconan.tistory.com BlogIcon 더불어 사는 세상 강 소장 2017.02.10 08: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른 시절은 몰라도 대대장 시절 이런 찬양은 정말 거짓이라는 것을 댓글 쓴 사람은 잘 알것입니다. 전인범 대대장 시절 군생활을 한 장교를 내가 알아요. 앞으로 이런 허위 과장 댓글은 사람을 봐가면서 하기를 바랄게요~
      그리고, 긴 글 쓰느라 고생했소 ^^

  18. 울고 싶어라 2017.02.10 17: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치가 무엇인? 존경받지 못한 더러운 쓰레기들 집합소

  19. 버들잎 2017.02.12 09: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분ㅁ이 대대장 시절을 96-97년도에 한것으로 알고 있는데 몇년전 이분에 대한 기사의 댓글을 보면 과거 이분의 대대원이엇던 분들이 쓴 댓글들이 많앗습니다.
    제기 이분 대대장 시절을 잘 알지는 모르지만 과거 예하 대대원들이 이분만큼 지장이자 참군인이 없었다. 떠날떄 전 대대원들이 박수를 쳐가며 그분을 보내드렸다는 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20. luna 2017.03.04 20: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기백이란 말은 듣고 개쌔끼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5공청산도 안된 젖같은 땅 조센징. 난 그래서 개대중이와 뇌무현이가 싫다. 차라리 두환이가 좋다. 두환이 태우 등 1212군사반란 매국노년놈들을 참살했어야함에도 지좆꼴린대로 사면한 개대중이. 1212군사반란때 전방을 비워두고 후방으로 탱크몰고 온 년놈들이 어디 국가를 위한 마음이 눈꼽만큼이라고 있겠나. 권력에 눈이 어두워 군이 아닌 군바리쌔기가 되서 이땅의 민중들이 피와 뼈를 갈아 만든 혈세를 월급으로 쳐먹는 년놈들이 이땅 민중들을 군화발과 탱크로 깔아뭉개 군사반란 매국노개쌔끼들.

  21. 그네 죽었네 2017.03.11 11: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불쌍해서 어쩌누 친박들은 폐족확정이고 친박집회나 나가서 죽창이나 들지 키보드 두드리는거 웃기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