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세상

인권운동가 김근태 의원 생애와 평가 [김근태 추모 5주기]

올드코난 2016. 12. 2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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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전] 노인세대들 중에서 상당수는 운동권을 싫어한다. 여기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어떤 열망이 아닌 권력에 대한 욕망을 갖고 운동권에 참여한 자들 때문이다. 모든 운동권이 폭력적이지도 않았고, 대다수는 순수한 민주주의 운동이었음에도 몇몇 사이비 운동권 출신 때문에 여전히 비난을 받고는 한다. 해서 시간이 될 때마다 운동권 출신 중에서 우리가 존경을 할 수 있는 인물 혹은 잊어서는 안되는 사람들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처음으로 소개해 볼 사람은 바로 고(故) 김근태 의원이다. 곧 5주기를 맞는 김근태 의원에 대해 정리해 본다.

운동권 정치인의 모범사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인권운동가이며 신사였던 사람, 잊지 말아야 할 사람 김근태(金槿泰) 의원 생애와 평가


1. 생애 초반

김근태(金槿泰, 1947년 2월 14일 ~ 2011년 12월 30일) 1947년 2월 14일 경기도 부천 출생, 12남매 중 막내, 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임하던 아버지는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교직을 강제로 그만두게 되자 그 충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위로 6명의 형·누나는 어릴 때 숨졌고 그 다음 세 형은 6·25전쟁 이후 소식이 끊어졌기때문에 12남매 중 10번째인 형 김국태가 사실상 집안의 맏아들 노릇을 했다. 1965년 경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입학. 1967년 육군입대 1970년 8월 병장 만기제대.


2. 박정희 시대

196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해 손학규, 조영래와 함께 ‘서울대 운동권 3총사’로 불렸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까지 재야 단체에서 활동하다가 수배와 투옥을 반복했다.

1971년 2월 유신독재에 저항한 서울대 학생 시위를 배후 조종한 내란음모 혐의(서울 대학교 내란 음모 사건)로 첫 번째 도피생활을 시작했다. 1972년 2월 피신 상태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1974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다시 수배가 되어, 박정희 정권이 막을 내릴 때까지 7년 넘게 수배자로 살았다. 수배 중이던 1977년 인천 부평의 봉제 공장에서 위장취업을 하고 있던 인재근과 결혼했다.


3. 전두환, 노태우 군사 정권

전두환 정권 시절 인천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했고 1983년 9월 한국 최초의 독자적/공개적 사회운동단체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결성을 주도해 초대 의장을 맡았다 1985년 8월 24일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 (민추위) 배후조종 혐의로 연행되어 남영동에 있는 대공분실에서 고문기술자 이근안 등에게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했다. 당시 민청련 간부였던 이을호, 김병곤 등도 함께 고문을 당했다. 이후 이을호는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병을 앓았고 김병곤은 1990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근태 역시 평생 고문 후유증에 시달린다.

법정에서 고문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부인 인재근이 이미자의 노래 테이프 중간에 고문 내용을 녹음한 다음 이를 미주 한국일보 기자 심기섭을 통해 해외로 내보냈고, 이 사실이 뉴욕 타임스 등에 크게 보도되며 전두환 정권을 궁지에 몰았다. 그 공으로 김근태와 인재근 부부는 미국의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1987)을 공동으로 받았고 독일 함부르크 자유재단으로부터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1988)되었다.

1988년 6월 30일 석방되고 다음 해 1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결성에 핵심 역할을 하고 정책기획실장과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1990년 노태우와 김영삼 김종필이 주도해 여당 민주 정의당과 야당 통일 민주당, 신민주 공화당 3당 합당을 결행하자 전국 민족 민주 운동 연합을 중심으로 이를 규탄하는 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때 김근태는 전민련 결성선언문을 빌미로 국가 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1992년 8월까지 2년 3개월 동안 복역한다.


4. 정계 입문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들어서 군부 독재를 청산하며 민주화가 이뤄지기 시작하던 1995년 김대중이 이끌던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에 참여하며 공식적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 해 9월 부총재를 맡았다. 1996년 15대 총선거에 서울 도봉갑 선거구(쌍문 1동, 쌍문 3동, 창 1동, 창 2동, 창 3동, 창 4동, 창 5동)에 출마해 당선되어 17대까지 국회의원에 3번 당선되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시 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지만 중도에 사퇴했다.


5. 노무현 정부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2004년 7월부터 2005년 12월까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고 2006년 6월부터 2007년 2월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냈다. 2008년 제18대 선거에서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에 패했는데 이는 보수와 언론에 의한 반 노무현 정서와 뉴타운 열풍 등의 영향이 컸다. 이후 통합 민주당 상임 고문과 민주 통합당 상임 고문을 지냈다. 2010년부터 우석대학교 석좌교수로 활동했고, 2011년 3월 민주당 진보개혁모임을 꾸려 공동대표를 맡았다.


6. 사망

평생 고문의 후유증으로 시달리던 김근태는 2007년 파킨슨 병 확진을 받았고 2011년 12월 초 뇌정맥혈전증 투병사실을 공개한다. 그리고 2011년 12월 30일 오전 5시 30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6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마석 모란 공원에 안장되었다. 사후 2016년 '민주주의자 김근태 상'이 제정되었다.


7. 저서

여러편의 저서를 남긴 작가로 남영동(1987), 열린 세상으로 통하는 가냘픈 통로에서, 우리 가는 이 길은(1992), 희망의 근거(1995), 희망은 힘이 세다(2001),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2004), 일요일에 쓰는 편지(2007) 등이 있다.


8. 평가

민주주의자, 민주화의 대부, 세계의 양심수 등으로 불린다. 타협보다는 원칙을 중시했고 이상주의적인 면이 있어 자주 현실정치의 벽에 부딪친 적은 있지만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덮는 사람은 아니었다. 항상 진지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동료들에게 '국제신사'란 별명을 얻었다.


9. 올드코난 생각

개인적으로 김근태 의원과의 친분은 전혀 없다. 몇 번 뵌 적은 있다. 처음 뵌 것은 90년대 후반 필자가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잠시 살 때였는데 김근태 의원은 도봉구갑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다. 상계동과 다리 하나를 건너면 바로 창동이었다. 우연찮게 3번 정도 보게 되었는데, 사람이 참 소박하면서도 위엄이 있되 겸손함과 매너가 있는 말 그대로 진짜 신사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필자가 운동권 정치인들 중에서 김근태 의원을 먼저 소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운동권은 쇠파이프나 화염병만을 드는 사람 그래서 과격한 사람이라는 그런 편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김근태 의원은 운동권에 대한 그런 편견을 깨뜨린 사람이라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의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한 공로는 매우 컸다는 것은 분명하고 이에대해 공정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70년대와 80년대 운동권이 왜 화염병을 던졌냐를 비난하기 전에 왜 던져야만 했는지를 생각해 보자. 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막강한 공권력을 가진자들과 상대를 해야 했던 근로자와 민주주의 운동가들에게는 그나마 화염병이 무기였었다. 독재자들이 국민들과 대화를 나누려 했다면 왜 화염병을 들었겠는가. 아직도 노인 세대들 중에서는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들었던 운동권을 비난하면서 정작 국민들을 억압했고, 심지어는 살인까지 저질렀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을 영웅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이 박근혜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김근태 의원같은 분들이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김근태 의원이 맞섰던 자들이 누구이며, 그들이 국민들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를 잊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독재에 맞섰던 김근태 의원같은 분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세대들은 민주주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인데 우리가 이분들을 잊어 버렸기에 이명박과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 버렸고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후퇴해 버렸던 것이다. 


박근혜 애비 박정희는 국민들을 탄압했던 독재자였고, 김근태 의원 같은 분들이 목숨을 걸고 박정희에 맞섰다는 당연한 사실을 잊었기에 민주주의의 위기가 온 것이다. 박정희가 독재자라는 사실을 잊지말고, 김근태 의원이 민주주의를 위해 살다갔다는 그 사실만이라도 잊지 말기를 바란다.  


끝으로 김근태 의원하면 절대 잊지말아야할 인간이 또 있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이다. 인간말종이었던 이런 자가 애국자라고 주장한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얼마전의 일이었다. 역사를 잊으면 과거는 반복된다.  언제 다시 이런 자들이 날뛸지 모른다. 과거를 잊지 말자. 그리고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던 김근태 의원을 잊지말기를 바란다. 김근태 의원을 추모하며.

글 작성/편집 올드코난 (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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