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며 국회의원이었던 강봉균 씨가 어제 1월 31일 별세했다는 소식이다. 사인은 지병인 췌장암이었다. 죽은 당일 고인에 대해 예의가 아닌 것은 알지만, 그의 죽음에 애도를 하고 싶지는 않다. 무엇보다 이런 인물이 진보진영 사람이라고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가짜 진보였고, 무능하고 위선적이며 권력에 빌붙어 살던 강봉균에 대해 몇자 적어 본다.
[강봉균 프로필 요약]
강봉균(康奉均) 1943년 8월 13일 전북 군산 출생, 1962년 군산고등학교 졸업, 1969년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 1972년 윌리엄스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1989년 한양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1969년 제6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노태우 및 김영삼 정권 제17대 경제기획원 차관보, 제6대 노동부 차관, 제24대 경제기획원 차관, 제12대 행정조정실장, 제43대 정보통신부 장관/ 김대중 정부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 비서관, 경제수석 비서관, 제7대 재정경제부 장관, 제10대 한국개발연구원 원장/ 노무현 정부 시기 제16대 국회의원(새천년민주당), 제17대 국회의원(열린우리당),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열린우리당 탈당 후) 중도통합민주당 원내대표/ 이명박 정권 시 제18대 국회의원 (민주당, 전라북도 군산시), 민주당 전북도당 위원장/ 박근혜 정권 2016년 3월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2016년 9월 대한석유협회 회장 재직 중 사망
[고 강봉균 의원의 주요 논란과 의혹들]
1. 강봉균 군면제 의혹 (SBS 그것이 알고싶다 참고)
강봉균은 1964년 병역기피이후 입영을 하게 되는데 곧 결핵판정으로 귀가조치된다. 그리고 1967년 입영연기되고 1968년 갑종 판정을 받고 1969년 행정고시를 합격한 이후 1969년 갑자기 보충역으로 편입되고 미국유학을 다녀온 후인 1974년에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병역이 면제되었다.
2. 강봉균 아들 군면제 의혹 (SBS 그것이 알고싶다 참고)
강봉균 아들 강문선 역시 병역기피로 비난을 받았다. MC몽 병역비리 브로커 김대업이 병무청 직원들에게 돈을 주고 강봉균 아들을 보충역으로 처분해줬다고 진술했고 강봉균 부인이 병무청 직원에게 돈을 주고 아들의 병역 감면 청탁을 했다는 병무청 직원의 검찰 진술도 있었지만 서울지검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수사를 중단해 버렸다. 강봉균 아들 강문선은 1994년 미국 유학을 떠나 20년간 거주하며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했고 미국여성과 결혼해 미국 영주권을 취득하였다.
2005년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강봉균 아들의 병역기피 논란이 있자 당시 만 31살 로 공부를 마친 후 병역의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답변했지만 아들 강문선은 귀국하지 않았다. 결국 병역소집기간을 넘겨 군면제를 받았는데 문제는 병역소집기간을 넘긴후 이혼을 해 위장결혼이었다는 뒷말이 나온다.
(*이렇게 긴 시간 비난을 받고 사는니 차라리 군대 다녀오는게 더 속 시원하지 않았을까.)블로그 올드코난 갈대의 지혜와 나무의 의지를 갖고 글을 쓰겠습니다.
3. 친북좌파 논란
10년전인 2007년 1월 4일 강봉균(당시 열린 우리당 의원/정책위의장)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당시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이 당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김근태 의장의 사퇴를 요구했는데 이때 강봉균은 김근태 의장을 '좌파'로 규정했고 열린우리당 지지율 하락을 당내 '친북좌파' 때문이라고 말해 큰 파장이 있었다. 당시 한나라당과 같이 열린우리당을 좌파정권으로 매도한 것이다. 또 김대중 정부의 대표적인 대북포용정책을 부정했고 금강산 관광 금지를 주장했는데,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좋은 대접을 받았던 강봉균을 배은망덕한 인물로 여기게 된 계기도 이때부터였다.
4. 신용카드 대란 책임
IMF가 발발하고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다임해인 1999년 초 강봉균은 제7대 재정경제부 장관(1999년 5월 ~ 2000년 1월)에 취임한다. 재정경제부 장관 재임 시기 경기부양책이었던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을 내놓았는데,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사용한도 폐지, 길거리 카드회원모집, 신용카드 매출 전표 복권제도 등 신용카드 규제를 풀어주어 신용이 좋지않은 노숙인들까지 카드를 만들 수 있도록 했고 여기에 이자까지 높도록 해주었는데 그 결과 1998년 신용불량자 193만명에서 2004년 382만명으로 대폭 증가하게 되는데 이 시기 신용카드 발급자 80%가 신용불량자가 되었다는 통계가 있다. 신용카드 대란으로도 일컬어지는 이 사건에 대해 강봉균은 분명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경제학자들과 시민단체들은 강봉균 의원의 책임과 사과를 요구했고 노무현 정부였던 2004년 신용카드 특검이 있었지만 강봉균은(당시 제17대 국회의원) 책임을 부정하고 회피했다.
[마무리]
그의 인생을 정리해 보면, 위선적이고 무책임하고 기회주의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병역문제에 있어서 2대째 병역을 기피했음에도 고위 관직에 있었고, 군사독재정부에서 참여정부까지 전혀 다른 정치권력과 함께한 처세를 보여준다. 간혹 IMF 사령탑이라고 그를 높이 여기는 말이 있는데, 강봉균은 IMF 사령탑으로 부적합한 인물이었다. 카드대란이 대표적으로 IMF 극복은 강봉균이 해낸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희생으로 해낸 것이었다.
그가 진보와 보수 진영을 오고간 시기와 배경을 보면 철저히 힘의 논리였다. 보수 권력이면 보수처럼 행세했고, 진보가 권력을 잡으면 진보 진영에 있었다. 생애 마지막에 새누리당에 있었던 것은 진보 쪽에서 자리를 얻기 어렵다는 판단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강봉균을 특히 싫어하는 것은 이 사람은 전라도 출신임에도 5공 세력들과도 함께 하려는 자였기 때문이다. 정말 역겨운 사람이었다. 이런 자의 죽음에 가족이 아닌 자가 눈물을 흘린다면, 생각이 없거나 영혼이 없는 자일 것이다. 나는 이 자의 무덤에 침을 뱉겠다.
글 작성/편집 올드코난 (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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