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세상

한주호 준위 죽음에 국방부 책임은 없나? 한주호 준위는 영웅이었다. 문제는...

올드코난 2016. 11. 20.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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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천안함 침몰 사건은 여전히 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될 사람이 있다. 고 한주호 준위로 그의 영웅적인 죽음과 왜 그가 죽어야 했는지 위키백과를 참고해 정리해 본다.


1. 한주호 프로필

한주호(韓主浩, 1958년 9월 8일 ~ 2010년 3월 30일) 준위는 1958년 서울에서 출생해 1975년 2월 서울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 졸업 직후 해군부사관 36기로 입대 내연보통과 수료, 호위함 부산함(FFK-959)에 승조하였다. 이듬 해 1976년 해군 특수전 초급반(UDT/SEAL) 제22차 과정 수료, 수중파괴대(UDT)에서 훈련교관, 작전요원 등을 역임하였다. 2000년 해군사관학교 준사관 제41기 과정 수료 준위로 임관.


2. 주요 활동

- 35년의 군경력중 19년 6개월을 해군 특수전 교육훈련대 교관으로 재직 특수전 요원 양성 활동을 했다. 해군 특수전 초급반(UDT/SEAL)수료자 절반 이상이 그의 제자라고

- 특전요원으로 활동중 활동,훈련장비의 개선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선박 침투습격용 사다리, 저격수 횡이동 표적기, 탄·뇌관 보호상자 등 특수전 장비 개선, 제작했다.

- 부산 태종대에서 발견된 대인지뢰 M16 및 대전차지뢰 폭파해체 (인터뷰 장면이 2000년 11월 17일자 MBC 뉴스에서 방송)이 외 EOD 요원으로 유실지뢰 등 각종 폭발물을 처리하는데 활약.

- 2002년 8월 KBS에서 UDT요원이 되기 위한 해군 특수전 초급반 제48기 훈련생도들의 훈련과정을 생생히 담아 보도한 수요기획 "지옥에서 살아오라!"에서 훈련교관으로 등장 했다.

- 2009년 3월 청해부대 1진(문무대왕함)에 선박검색 요원으로 승조 4월17일 덴마크 국적 상선 ‘푸마호’ 구조를 시작으로 8월4일 바하마 국적 선박 ‘노토스 스캔호(3천t급)’ 구조에 이르기까지 총 7차례의 해적선 퇴치 작전에서 활약.

- 2010년 3월 천안함이 침몰하여 46명의 승조원이 실종되자, 본부의 명령에 따른 구조대 편성에 작전부서가 아닌 작전지원부서(해군 특수전 여단 작전지원대)에 재직중임에도 불구하고 잠수 베테랑으로서 구조임무에 자원하여 편성되었다. 53세 노령에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 숙련도 낮은 청년 대원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여 솔선 수범했다.


3. 사망

2010년 3월 26일 천안함(PCC-772) 침몰 사건당시 해군 특수전 여단 작전지원대 근무중이던 한준위는 소속부대원들과 함께 구조요원으로 참여하던 중 3월 30일 잠수 수색활동 중 실신 같은 해역내 미 해군 구조함 살바(SALVOR)함으로 후송돼 응급조치했지만 끝내 소생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향년 만 52세 (한국나이 53세)

구조작업 투입전 한주호 준위는 동료들과의 통화에서 '오늘안으로 모든 실종자들을 책임지고 구조해내겠다.'고 말을 남겼다.


4. 사후 및 평가

순직 직후, 만35년 이상의 군 근속경력자에게 수여되는 보국훈장 '광복장'만이 수여되었지만 그 공로에 비해 부족한 예우라는 여론의 질타가 이어졌고, 결국 충무무공훈장이 추서되었다. 순직자 관련 법규에 따라 소위로 1계급 특진 문제가 운위, 거론되었으나 준사관은 최고의 계급이라 특진이 될 수 없고 유족의 거부로 무산되었다. 장례는 해군장(5일간)으로 거행하고 유해는 4월 3일 국립대전현충원 장교3묘역에 안장되었다. 한편 2011년3월 30일에는 진해에 업적을 기리는 동상이 세워졌다. '책임을 다한 숭고한 삶'편의 초등학교 6학년 도덕 교과서에 일부가 게재되기도 했다.

한주호 준위는 따뜻한 인격을 가졌고 임무에 있어서는 강인한 책임감으로 무장된 훌륭한 군인이었다고 전한다.

2010년 무공훈장 충무장 (천안함 수색, 구조 공로), 2010년 보국훈장 광복장 (35년 근속 공로), 합동참모회의 의장 표창, 국방부 장관 표창 등을 수상했다.


5. 올드코난이 생각하는 문제점

한 준위는 영웅이라는 사실에는 절대 이견이 있을 수가 없다. 그의 죽움은 모든 이들에게 존경이 대상이 되어야 한다. 단지 그의 죽음에 국방부의 책임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사고 당시 한주호 준위가 사용하던 장비는 시가 30만원대 장비 80년대에 사용하던 장비였다. 그때 한 준위가 200만원대 최신장비를 사용했더라면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또 천안함 침몰은 3월 26일 발생했다. 한준위가 투입된 3월30일에는 생존자가 없음이 분명하다. 시신이라도 건저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 국방부(특히 해군)는 국민들에게 구조작업을 철저히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무리한 구조작업을 펼쳤다는 의혹이 있고, 필자도 그런 의심을 하고 있다.


정리해 보면 한 준위는 죽지 않을 수 있었다. 살 수 있었던 사람이 죽은 것이다. 그의 죽음은 위대한 희생이었지만, 그의 죽음에 국방부는 최소한의 미안함이라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또 다른 군인들의 아까운 희생을 막을 수 있다고 믿기때문이다. 


글 작성/편집 올드코난 (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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