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중국

남조의 남진(南陳) 설명, 남진 황제 계보

올드코난 2017. 2. 1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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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陳, 557년 ~ 589년)은 중국 남북조 시대 강남 지방에 건국된 남조 최후의 왕조로 남진(南陳)이라고도 한다. 진나라를 건국한 진패선(陳覇先)은 미천한 가문의 군인 출신으로 후경(後景)의 난에 유능한 지휘관으로 난을 진압하고 원제의 휘하에서 무공을 세웠다. 북제(北齊)에게 동조한 소연명(蕭淵明)을 제위에 올린 동료 왕승변(王僧弁)을 타도하고 경제를 추대하였으나 이후 경제의 선양을 받아 스스로 제위에 올랐다. 한수(漢水) 유역과 사천성은 서위를 이은 북주에게 빼앗겼고, 거기에 양자강 중하류를 사이에 두고 공방전을 벌였다. 이 시기 양나라에 비해 영토가 크게 축소되어 남조 왕조 중 가장 국력이 약했다. 진패선은 왕승변의 부장과 강남의 토호의 반란을 평정하다 죽고 형 시흥왕 진도담의 아들 문제가 제위를 물려받아 영주를 확보하고 북주를 비롯한 북제, 후량과 대치했다. 문제(文帝)는 내정에 전념하여 국내를 안정시켰고 문제의 아들 임해왕 때 북주, 후량과 내통한 화교의 난을 평정했지만 실권을 장악한 4대 선제(宣帝)가 그를 폐위하고 즉위해 국력의 차이를 생각하지 않고 575년 명장 오명철(吳明徹)을 시켜 북제를 공격해 숙적 왕림(王琳)을 죽이고 수양을 빼앗아 강북으로까지 영토를 넓혔는데 북제를 병합한 북주가 진나라를 공격하려 했지만 정권이 교체되면서 수나라가 이를 대신한다. 수나라 문제는 재빨리 남정을 계획하고, 그동안 진나라는 후주가 즉위해 사치와 향략을 일삼아 국력이 피폐했다. 수나라는 진왕 양광을 총지휘관으로 삼아 하약필, 한금호를 선봉으로 강을 건너 건강을 함락하고, 진나라를 멸망시키게 되고 400년에 걸쳐 분열되었던 위진남북조시대가 종결되고 중국은 수나라로 통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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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南陳) 황제 계보]

태조(太祖 진 무제 추숭) 경황제 (景皇帝) 진문찬(陳文讚)

제1대 고조(高祖) 무황제 (武皇帝) 진패선 (陳覇先)

연호 영정(永定)557년 ~ 559년/재위기간 557년 ~ 559년/ 능호 만안릉(萬安陵)

요약: 진패선(陳霸先, 503년 ~ 559년)은 남북조 시대 진나라 초대 황제로 후한의 태구장(太丘長) 진식(陳寔)의 후손이다. 군인 출신으로 후경의 난을 진압하고, 양 원제의 휘하에서 무공을 세웠다. 진패선의 위망은 높아지고 진왕에 책봉되고 그 달에 소방지를 협박 선양을 받아내고 남교에서 황제가 되었다. 진패선은 용병에 뛰어나 형세가 위급하자 과감하게 부대를 일부 이동하여 적군의 수송로를 차단했다. 또 많은 전투에서도 훌륭한 전술을 구사하여 북제군을 패퇴시켰다. 생활도 검소해서 황제가 돼서도 몇 안되는 반찬으로 식사를 했고 후궁들도 황금이나 비취 같은 사치품을 갖지 못했다. 559년 6월, 재위 3년 만에 57세의 나이로 진패선은 건강 선기전에서 숨을 거뒀으며 8월에 만안릉(萬安陵)에 안장되었다.

제2대세조 (陳世祖)문황제(文皇帝)진천(陳蒨)

연호 천가(天嘉) 560년 ~ 566년, 천강(天康) 566년/ 재위기간 559년 ~ 566년. 능호 영녕릉(永寧陵)

요약: 진 문제(陳 文帝, 522년 ~ 566년)은 무제의 형 시흥소렬왕(始興昭烈王) 도담(道譚)의 장남 모친은 알려져 있지 않다. 자는 자화(子華)이며 어려서부터 침착하고 영민했고 담력과 식견이 있었고 용모와 풍채가 좋고 몸가짐이 단정하고 예법을 바르게 지켜 숙부 진패선이 그를 아꼈다. 559년 6월, 진패선이 사망하자 남예주자사 후안도가 장태후를 협박해 진천을 즉위하게 만든다. 진천은 백성의 고통을 알아 즉위 후에도 검소한 생활을 했고 사리분별에 능했고 신하들의 간악한 행위를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566년 4월, 재위 8년 만에 45세의 나이로 건강 유각전에서 사망하고 6월에 영녕릉에 안장되었다.

제3대 임해왕 (臨海王)진백종 (陳伯宗)

연호 광대(光大) 567년 ~ 568년/ 재위기간 566년 ~ 568년/ 능호 임해왕묘(臨海王墓)

요약: 진백종(陳伯宗, 554년 ~ 570년)은 폐위되어 묘호와 시호는 없다. 문제의 아들 폐위되어 임해왕에 봉해졌고 진백무는 온마후로 강등됐다가 암살당했다.

제4대고종(高宗)효선황제(孝宣皇帝)진욱(陳頊)

연호 태건(太建) 569년 ~ 582년/ 재위기간 569년 ~ 582년/ 능호 현녕릉(顯寧陵)

요약: 진 효선제(陳 孝宣帝, 528년 ~ 582년) 문제의 동생. 570년 진백종이 죽고 이듬해 정월 황제에 즉위한다. 573년 3월, 진욱은 북제가 쇠약해진 틈을 타서 진천장군 오명철에게 10만 명을 이끌고 토벌하도록 했는데 계속 승리했다. 575년에 이르러 회하 남북의 영토를 모두 수복한다. 577년 북주가 북제를 멸망시키고 이듬해 2월, 진욱은 다시 오명철에게 3만 명을 이끌고 수양에서 사수를 건너 북주의 팽성을 포위하게 했으나, 북주 군대에게 전멸되고 오명철도 포로가 되었다. 579년 9월, 북주군이 회남을 공격하자 결국 장강 이북의 영토를 모두 상실했고 581년 양견이 북주의 우문천(정제)에게 선양을 받아 수나라를 세우고 북주를 멸했다. 이로 인해 진욱은 실의에 빠져 병을 앓게 되었고 이듬해 정월, 효제는 재위 14년만에 53세의 나이로 건강 선복전에서 사망했다

제5대장성양공 (長城煬公)진숙보(陳叔寶)

연호 지덕(至德) 583년 ~ 586년, 정명(禎明) 587년 ~ 589년/ 재위기간 582년 ~ 589년

요약: 진숙보(陳叔寶, 553년 ~ 604년)는 진나라 제5대 마지막 황제로 보통 후주(後主)로 알려져 있다. 진숙보는 궁궐에서 여자들의 손에서 자라서 민간의 괴로움과 창업의 어려움을 아무리 교육받아도 이해하지 못했고 즉위 후에도 현실을 모르고 사치와 방탕을 해 갈수록 정치가 부패해졌다. 589년 수나라의 공격에 허무하게 나라가 망하고 마는데, 이때도 진숙보는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수나라는 진숙보를 죽이지 않아 604년 11월 52세에 낙양에서 사망하고 망산에 안장되었다. 어리석은 군주의 전형으로 여겨지며, 진나라가 멸망당한 뒤 수 문제에게 장성현공(長城縣公)으로 책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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