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중국

북조 북위(北魏)의 분열 동위(東魏)과 서위(西魏)

올드코난 2017. 2. 19. 10:27
반응형

북조의 사실상 첫 왕조였던 북위(北魏)가 분열을 하게 되는데 고환이 실권을 잡은 동위(東魏)와 우문태가 실권을 잡은 서위(西魏)로 나뉘게 된다. 정리해 본다.


1. 동위

남북조 시대 동위(東魏, 534년 ~ 550년)는 북위가 분열한 나라로 낙양 일대부터 동쪽 지역을 영토로 갖고 있다. 국호는 위(魏), 서위와 구분하기 위해 동위로 부른다. 534년 승상 고환을 제거하는 음모를 꾸미다가 실패한 북위 효무제는 낙양에서 관중의 장안으로 도망쳐 우문태에게 보호를 받고 고환은 곧이어 업에서 효정제를 옹립하고 동위가 건국된다. 한편 우문태와 효무제는 서로 사이가 나빠져 우문태가 효무제를 독살하고 문제를 옹립하고 서위가 건국된다. 효정제는 고환의 꼭두각시에 불과하고 국력은 서위에 비해 우세했지만 여러 차례 군사적 패배를 겪고 547년 고환이 죽자 장남 고징이 승상의 지위를 물려받았다. 이윽고 후경이 남조 양나라에 항복해 동위를 배신하자 모용소종에게 후경을 공격하게 하고, 동위에 남아있던 후경의 처자식을 모두 죽였다. 또한 양나라와 수호관계를 맺고, 후경을 고립상태로 몰아넣었다. 549년 고징은 제왕(齊王)에 봉해졌는데 고징은 포악한 행동을 자주 해서 난경(蘭京)에게 살해되었다. 고환의 둘째 아들 고양이 상국과 제왕의 직위를 물려받았고, 550년에 효정제로부터 선양을 받고 북제를 건국하면서 동위는 멸망했다.


2. 서위

서위(西魏, 535년 ~ 556년)는 북위가 분열되어 건국된 나라로 산시 성 일대 관중 지방이 중심으로 국호는 위(魏) 동위와 구별하기 위해 서위라고 부른다. 우문태가 효무제를 독살하고 문제를 옹립하며 서위가 건국된다. 남조 양나라가 후경의 난에 의해 혼란해진 사이를 틈타 촉 지방을 빼앗아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공제 때는 후경의 난을 틈타 항복해온 양나라의 옹주자사 소찰을 이용해 양나라의 수도 강릉을 공격 양 원제를 죽인 뒤 소찰을 후량의 황제로 세웠다. 우문태의 사후 뒤를 계승한 우문각은 사촌동생 우문호의 도움을 받아 556년 공제로부터 선양을 받고 제위에 올라 북주를 건국하고 서위는 멸망한다.

블로그 올드코난 갈대의 지혜와 나무의 의지를 갖고 글을 쓰겠습니다. 



3. 동위과 서위 황제

동위의 황제는 단 한명이었다. 서위는 3명의 황제가 있었다.

(1)동위

효정황제(孝靜皇帝) 중산왕中山王) 원선견(元善見)

천평(天平) 534년 ~ 537년, 원상(元象) 538년 ~ 539년, 흥화(興和) 539년 ~ 542년, 무정(武定) 543년 ~ 550년/ 재위기간 534년 ~ 550년

요약: 동위 효정제(東魏 孝靜帝, 524년 ~ 551년)는 북위 효문제의 증손으로 조부는 원역(元懌)이며 원단의 적자. 고환이 옹립했고 고씨 일족의 허수아비 황제였다. 550년에 고양에게 제위를 선양하고 중산왕(中山王)으로 강등되고 얼마 안가 죽었다.


(2)서위

문경황제(文景皇帝) 원유(元愉): 서위 문제 추숭

제1대문황제 (文皇帝)원보거(元寶炬)

연호: 대통(大統) 535년 ~ 551년/ 재위기간 535년 ~ 551년

요약: 서위 문제(西魏 文帝, 507년 ~ 551년) 묘호는 없고 시호는 문황제(文皇帝). 508년에 아버지가 기주에서 반란을 일으켜 패사했기 때문에 원보거는 형제들과 함께 종정사에 유폐 되고 선무제가 죽고 유폐에서 풀려 나온다. 원후와 함께 영태후의 총남들을 살해 모의하다 새어나가 실패하고 면직됐다. 528년 소현후 530년 남양왕에 임명된다. 534년 말 효무제가 우문태에 독살되고 535년 1월 우문태에 옹립되어 즉위하는데 낙양에서는 고환이 효정제를 옹립한다. 이후 문제의 서위와 효정제의 동위가 병립한다. 551년 3월 죽었다.


제2대 폐황제 (廢皇帝)원흠(元欽): 재위기간 551년 ~ 554년

요약: 서위 폐제(西魏 廢帝, 525년 ~ 554년)는 서위 문제와 문황후 사이 맏아들로 폐위되어 묘호와 시호 없고 연호도 없다. 535년에 황태자가 되고 승상 우문태의 맏딸 우문씨와 결혼한다. 551년 문제가 죽자 즉위하고 연호를 사용하지 않는다.

553년 상서(尙書) 원렬(元烈)이 우문태를 주살하기를 꾀했는데 발각되어서 죽임을 당하자 폐제는 이를 원망하고 동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문태를 주살하려고 하자 우문태의 사위 이기(李基), 이휘(李暉)와 우익(于翼) 세 사람이 이를 우문태에게 밀고 이듬해 554년에 폐위되고 얼마후 죽었다.


제3대 공황제(恭皇帝) 송공(宋公) 탁발곽(拓跋廓): 재위기간 554년 ~ 556년

요약: 서위 공제(西魏 恭帝, 537년 ~ 557년) 원래 성명은 원곽(元廓)으로 즉위한 뒤 탁발곽(拓跋廓)으로 성을 고쳤다. 문제의 넷째 아들로 묘호는 없고 시호는 공황제(恭皇帝). 554년 형 폐제가 폐위된 뒤 우문태에 의해 옹립되고 개원하지 않고 연호를 사용하지 않았다. 즉위후 원씨를 탁발씨로 복성한다. 556년 우문태가 죽자 그 아들 우문각이 뒤를 이었고 오래지 않아 우문각의 사촌형 우문호가 공제에게 우문각에게 제위를 선양하라 요구하고 공제는 우문각에게 선양한 뒤 퇴위했다. 557년에 우문각이 북주를 건국하고 천왕으로 즉위한후 공제를 송공(宋公)에 봉했고 얼마후 죽이고 만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