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중국

수(隋)나라 건국 남북조의 통일, 수나라 역대 황제 계보

올드코난 2017. 3. 27.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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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隋, 581년 3월 4일 ~ 619년 5월 23일)는 중국 남북조 시대을 종식시키고 서진이 멸망한 후 분열되었던 중국을 약 300년 만에 재통일하게 된다. 38년이라는 단명제국이지만 당나라가 수를 이어 중국을 다시 하나의 제국으로 만들게 된다. 수(隋)나라 건국과 중국 통일과정을 간략히 정리해 본다.


수나라 (隋朝) 건국, 중국의 통일


수(隋)나라를 건국한 양견은 양충의 아들로 양충은 양씨(楊氏) 일족으로 북위 초기 북위의 수도 평성(平城)을 북쪽의 유연으로부터 방어했던 무천진(武川鎭)으로 이주한다. 양충은 북위가 서위와 동위로 분열될 당시 우문태가 서위을 건국하는 데 공헌해 대장군이 되었고 북주가 건국된 뒤 수국공(随国公)의 작위를 받고 568년 양충이 죽자 아들 양견이 대장군과 수국공을 물려받고 무제 우문옹은 숙적인 북제를 멸망시켰고 이어서 남쪽의 진나라를 정벌하기에 앞서 북쪽의 돌궐에 대한 원정을 준비하던 중 576년에 병사했다.


무제의 뒤를 계승한 선제 우문윤은 기괴한 인물로 5명의 황후를 가졌는데 그중 한명이 양견의 장녀였던 천원대황후 양씨 여화(麗華)였다. 선제의 또 다른 황후인 천대황후 주씨가 우문천(정제)을 낳았는다. 선제의 기행은 그치지 않고 계속되어 재위 8개월 만에 퇴위하며 정제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스스로 천원황제(天元皇帝)를 칭하며 정무를 내팽개쳤기에 정제의 뒤를 보살피던 양견에 대한 이름을 높여주게 된다. 


580년 선제가 죽고 양견은 섭정해 전권을 장악하고 이에 반발한 무천진 군벌내 실력자들은 양견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규모로 일어난 것이 울지형(尉遲迥)에 의한 것으로 한때 양견이 장악한 관중 지역 이외 모든 곳에서 반란이 일어날 정도였지만 양견은 이들을 모두 각개격파해 북주 내에서 패권을 확고히 다졌다. 그 해 말에 수국공에서 수왕(隋王)의 자리에 오른 뒤, 이윽고 다음해 정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수나라를 건국한다.


북주 무제에 의해 중국 통일에 대한 진행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으나, 신중한 수문제 양견은 세밀하게 준비를 진행해 돌궐의 내부를 분열하게 만들어 583년 개황 3년 돌궐을 공격해 큰 승기를 거두로 돌궐은 서돌궐과 동돌궐로 나뉘게 된다. 이로 인해 수나라는 북쪽 지방을 안정시키게 되고 남조를 통일하는데 주력할 수 있게 된다. 


북조의 괴뢰정권인 후량을 병합하여 전초기지로 삼고 588년 문제는 진나라에 대한 원정군을 파견한다. 이 시기 원정군의 총사령관은 차남 진왕 양광으로 대군을 이끌고 다음해 589년 진나라의 수도 건강이 함락되면서 남북조는 통일하게 된다. 이는 184년 황건적의 난 부터는 약 405년이라는 기나긴 분열 시대가 종결된 것이다.


수(隋)나라 역대 황제 계보

강왕(康王)(수 문제 추숭) 양렬(楊烈)

헌왕(獻王)(수 문제 추숭) 양정(楊禎)

수 태조(隋太祖)(수 문제 추숭) 무원황제(武元皇帝) 양충(楊忠)


제1대 수문제 양견(楊堅)

묘호 수고조(隋高祖), 시호 문황제(文皇帝); 재위기간 581년 ~ 604년; 연호 개황(開皇) 581년 ~ 600년, 인수(仁壽) 601년 ~ 604년


제2대 황제 수양제 양광(楊廣)

묘호 수 세조(隋世祖)(황태주 추숭), 시호 양황제(煬皇帝)(공제 추숭) (민황제(閔皇帝))(두건덕 추숭) (명황제(明皇帝))(황태주 추숭); 재위기간 604년 ~ 618년 ; 연호 대업(大業) 605년 ~ 618년


수 세종(隋世宗)(황태주 추숭) 효성황제(孝成皇帝) 양소(楊昭)


제3대황제 (쟁립) * 3명의 황제가 쟁립했다.

(1) 양유(楊侑): 시호 공황제(恭皇帝); 재위기간 617년 ~ 618년; 연호 의녕(義寧) 617년 ~ 618년

(2) 양호(楊浩): 시호 (진왕(秦王); 연호 없음; 재위기간 618년

(3) 양동(楊侗): 시호 공황제(恭皇帝)(황태주(皇泰主); 재위기간 618년 ~ 619년; 연호 황태(皇泰) 618년 ~ 6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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