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주(北周, 557년 ~ 581년)는 중국 남북조 시대 때 선비족 우문씨(宇文氏)가 건국한 국가이다. 국호는 주(周)로 고대의 주나라와 구별하기 위해 북주라고 부른다.
북주(北周)의 실질적인 창시자 우문태는 북위의 6진의 난에 참가한 뒤 하발악에게 귀순하여 두각을 나타내고, 하발악이 죽자 그가 가지고 있던 기반을 계승한 뒤 관중 지방에서 세력을 과시한다. 이에 효무제가 북위의 재상 고환으로부터 도망쳐 우문태에게로 오고 그 후 고환이 동위를 건국하자 우문태는 사이가 나빠진 효무제를 독살하고 문제를 옹립해 서위가 건국된다. 우문태는 서위의 승상이 되고 우문태 사후 승상의 자리를 물려받은 우문각은 557년 서위의 황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제위에 올라 북주를 건국하지만 실권은 우문태의 조카우문호가 잡고 있었는데 우문호는 초대 효민제부터 3대 무제까지 권세를 누리는데 이런 우문호의 전횡에 불만을 품고 있던 무제가 우문호를 주살하하고 577년 고씨가 세운 북제를 멸망시켜 화북을 통일 한다. 또 무제는 폐불(제2차 삼무일종의 폐불)을 단행한다.
제4대 황제인 선제는 폭군으로 인망을 잃고 이에 수국공 양견에 민심이 옮겨간다. 선제가 죽자 양견은 외척이라는 명목으로 섭정을 하하고 581년 제5대 황제인 정제는 양견에게 선양하니 수나라가 세워지고, 북주는 멸망한다.
북주는 주례에 기초해 관제와 부병제를 만들었는데 대총재, 대사도, 대종백, 대사마, 대사구, 대사공의 6관의 관제는 3성 6부라고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 유교 경전에 있는 주례에 기초한 관제를 사용 옛 주나라의 국호을 사용했다. 하지만 북주는 북위 효문제 이래의 한화정책을 반대하고 선비족 고유의 풍습로 회귀하는데 황실의 의례 등을 선비족 풍으로 치르고 공용어도 한어가 아닌 선비어를 사용했고 성씨도 원래의 선비족 성씨인 탁발씨로 되돌리고 영내의 한인들에게도 선비족 식의 성씨로 고칠 것을 강요했다.
북주의 군은 8주국 12대장군을 체계로 이들 20장군에는 우문태의 출신지 무천진 출신자가 대부문이며 이들 20군 아래 24개부를 설치해 부병제 24군단을 구성했는데 수나라를 세운 양씨가 12대장군 출신이었고 당나라 이씨가 8주국의 가문출신으로 이런 체계는 수나라와 당나라까지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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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주(北周) 황제 계보
덕황제(德皇帝) 우문굉(宇文肱): 주 명제 추숭
주 태조(周太祖) 문황제 (文皇帝) 우문태(宇文泰): 주 명제 추숭
제1대효민황제 (孝閔皇帝) 우문각(宇文覺)
재위기간: 557년/ 능호 정릉(靜陵)
요약: 우문각(宇文覺, 542년 ~ 557년)은 북주의 초대 황제로 자는 타라니(陀羅尼) 우문태의 셋째 아들. 실제로는 재상 우문호의 허수아비 황제였다 우문태의 셋째 아들로 동주 관사(同州 官舎)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풍익공주(馮翊公主)는 북위 효무제의 여동생이다. 9살 때 서위의 약양군공(略陽郡公)으로 책봉되었다. 주서 효민제기에 의하면 고귀하지만 오래 살수 없는 인상으로 점이 나온것으로 알려졌다.
556년 3월에 안정공 우문태의 세자가 되었고, 우문태의 적자로 인정받고 4월에 대장군으로 임명된다. 10월 우문태가 사망하자 태사(太師)와 대가재(大家宰) 자리에 올랐다. 12월에 주공(周公)으로 봉해졌고, 557년 1월에 서위의 공제로부터 제위를 선양받아 즉위해 북주를 건국한다. 우문태의 조카 우문호가 조귀(趙貴)와 독고신(獨孤信)등의 정적을 숙청하여 실권을 장악했다. 우문각은 강하고 과감한 성격으로 그 해 9월 우문호의 전횡을 막기 위해 측근들과 우문호를 살해하는 계획을 하지만 사전에 탄로나 폐위되어 약양공(略陽公)으로 격하되고 16세에 살해된다. 후에 우문호가 동생인 무제에 의해 살해된 후 복권되어 효민황제(孝閔皇帝)로 추존되었다.
제2대 주 세종 (周世宗) 명황제 (明皇帝) 우문육(宇文毓)
연호 무성(武成) 559년 ~ 560년/ 재위기간 557년 ~ 560년/능호 소릉(昭陵)
요약: 우문육(宇文毓, 534년 ~ 560년)은 북주의 제2대 황제 묘호 세종(世宗), 시호 명황제, 우문태의 서장자로 534년 우문태가 하주의 통만성에 머물렀을 때 출생해 통만돌(統萬突)의 아명으로 불리기도했다. 효민제를 살해한 우문호에 의해 즉위하지만 우문호에게 독살한다..
제3대 주 고조 (周高祖) 무황제 (武皇帝) 우문옹(宇文邕)
연호 보정(保定) 561년 ~ 565년, 천화(天和) 566년 ~ 572년, 건덕(建德) 572년 ~ 577년, 선정(宣政) 578년/ 재위기간 560년 ~ 578년/ 능호 효릉(孝陵)
요약: 북주 무제 우문옹(北周 武帝 宇文邕, 543년 ~ 578년) 묘호는 고조(高祖)로 우문태(宇文泰)의 넷째 아들. 560년 명제를 시해한 우문호에 의해 황제로 등극하고 우문호를 제거한 뒤 572년 친정을 시작해 권력과 막대한 토지를 소유한 도교와 불교를 탄압해 재산을 몰수하고, 일반 승려와 도사를 병사로 강제 징병하고 유교, 불교, 도교를 모아 3교의 연구기관으로 통도관을 설치해 우수한 승려나 도사을 학사로서 수용하여 폐불을 단행한다.((제2차 삼무일종의 폐불)) 575년 북제를 공격 577년 북제를 멸망시킨 뒤 화북을 통일하고 진나라를 공격하려다 578년 병사했다.
제4대 선황제 (宣皇帝) 우문윤(宇文贇)
연호: 대성(大成) 579년/재위기간 578년 ~ 579년. 능호 정릉(定陵)
요약: 북주 선제 우문윤(北周 宣帝 宇文贇, 559년 ~ 580년)은 무제의 장남이며 정제의 아버지. 자는 건백(乾伯). 어려서 황태자가 되었지만 자질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즉위 후 무제 시기 신하를 숙청하고 대규모 궁전을 축조 하는 등 사치를 다부리는 등 무제가 우려한 대로 어리석은 군주가 되고, 579년 7세의 아들 우문연에 양위 스스로 천원황제로 자칭하다 다음 해에 사망했다.
제5대 정황제 (靜皇帝) 우문천(宇文闡)
연호: 대상(大象) 579년 ~ 580년, 대정(大定) 581년/ 재위기간 579년 ~ 581년/ 능호공릉(恭陵)
요약: 북주 정제 우문천(北周 靜帝 宇文闡, 573년 ~ 581년) 본명은 우문연(宇文衍)으로 선제 우문윤(北周 宣帝 宇文贇)의 장남으로 579년 1월 노왕(魯王)으로 봉해진 후 황태자가 되고 2월 7세에 아버지 선제에게서 양위받고 이름을 천(闡)으로 바꿨다. 아직 어려 양황후의 아버지승상 수국공 양견(楊堅)이 보필한다. 신주자사 이혜(申州刺史 李慧)와 황족 소국공 우문주(邵國公 宇文冑) 등이 군사를 일으켜 혼란에 빠지고 정제는 581년 2월 수왕(隋王) 양견에게 제위를 선양하고 북주는 멸망한다. 퇴위 후 개국공(介國公)에 봉해졌지만 5월 양견에게 처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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