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제의 폭정과 고구려 원정의 실패 등으로 수나라는 망국의 조짐을 보이더니 수많은 반란이 일어나고 결국 수양제는 근위병에서 죽음을 당한다. 그리고 잠시 혼돈의 시기를 보낸후 당고조 이연이 반란을 진압하고 당나라를 건국한다. 정리해 본다.
1.개요
당(唐, 618년 ~ 907년)나라는 나라 황실의 외척이자 한족과 선비족의 혼혈인 이연에 의해 건국된 중국왕조로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력을 대제국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군사력, 정치, 경제와 문화 등 여러분야에서 당시 전세계에서 발달된 문명국이었다. 또 다른 한족왕조에 비해 이민족에 대한 차별이 심하지 않았다. 당헌종이후 국력이 약해지더니 907년에 멸망한다.
2. 전성기
정무의 변으로 황태자가 된후 이연에게 양위를 받아 즉위한 당태종은 돌궐을 물리치고 결국에는 정복함으로서 ‘천가한’이라는 칭호도 얻게 된다. 이는 이전 한족왕조들의 북방민족에 대해 열세를 보였던 것을 뒤집어 버리고 사실상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당태종은 내치에도 신경을 써 조세제도와 토지제도와 군사제도도 정비하고 율령 체제가 완성된다. 태종이 대천황에 있었던 시대에 이러한 치세를 두고 정관의 치라고 부른다. 이런 자신감으로 당시 동쪽의 강국이었던 고구려를 치지만 결국 패해 당태종의 오점으로 남았지만, 수양제처럼 나라를 잃지는 않았다. 이후 당 고정 시기 고구려의 내분을 이용해 고구려를 멸망시키게 된다. 이후 태종의 후궁이었다 고종의 황후가 되었던 측천무후가 당나라의 권력을 장악하고 이후 중국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인 유일무이한 여황제로 즉위를 하게 된다. 물론 이때는 나라 이름을 ‘주’로 바꾸었기 때문에 당나라 황제는 아니다. 측천무후 사후 이융기(현종)가 황제에 올라 당나라를 재건해 민생을 안정시키고 선정을 배풀어 개원의 치를 이루며 당나라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지만, 현종 말년에 판단력을 잃으면서 양귀비에 빠져 국정을 소홀히 하게 된다.
3. 쇠퇴기와 멸망
현종 집권 후반기로 가면서 귀족들의 장원토지가 증가하고 이에 민란이 발생하고 대외적으로 토번과 돌궐 등에서 이민족들이 침공을 하면서 당의 국력이 약화 된다. 이런 때에 안사의 난이 일어나게 된다. 난은 진압되었지만, 당나라의 전성기는 끝나고 쇠퇴기로 넘어가게 된다. 이후 당나라의 조세 제도는 양세법으로 군사 제도는 모병제로 바뀌고 계속된 반란으로 절도사들이 세력을 키우고 중앙정부에서는 환관과 외척들이 권력다툼을 벌이는 등 혼란기를 겪다 황소의 난이 발생하고 결국 절도사 주전충에게 멸망하고 만다.
4. 당의 정치 체계
당나라는 3성 6부제를 실시했는데 3성은 중서성(中書省), 문하성(門下省), 상서성(尚書省)이고 6부는 이부(吏部), 호부(戶部), 예부(禮部), 병부(兵部), 형부(刑部), 공부(工部)로 나눈다. 3성 6부로 이뤄진 통치 조직과 지방에 설치된 주 현 체제로 황제권을 강화했고 지방관리는 중앙에서 파견했다. 율령 체제는 당나라의 행정법으로 당나라 통치의 기본을 이룬 것이다. 토지 제도는 균전제, 조세 제도는 조용조, 군사 제도는 부병제를 실시했다.
5. 당의 문화와 경제
당나라는 수나라에서 시작된 과거제도를 통해 관리를 선발했는데, 이로 인해 유학과 문학이 크게 발달하게 된다. 당나라 때에는 훈고학이 발달고 이로 인해 사상의 획일화가 나타나기도 했다. 문학은 귀족 중심의 시가 발달하는데 이백과 두보가 대표적인 당나라의 시인이었다. 종교는 불교가 매우 발전하였고 현장이 지은 대당서역기라는 책은 인도와 동남 아시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당나라 때는 무역이 크게 발달하였기 때문에 조로아스터교,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마니교 등도 전파되었다. 도교는 황실의 지원을 받았다. 당나라의 문화는 아시아 각국에 영향을 미쳤으며 일본에서도 나라 시대와 헤이안 시대에 견당사를 파견하여 당나라 문물을 수입해갔다. 또 당나라 때는 차가 처음으로 재배되어서 해외로 많이 수출됐다. 또한 화북 지방에는 2년 3모작이 가능하게 되어 농업 생산량이 크게 증가하고 영토가 넓어짐에 따라 비단길을 통한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상업이 발달하고 양저우 같은 도시들이 크게 성장하였다. 화폐 유통도 활발하게 이루어져 어음인 비전이 사용되었고 행(行)이라는 상인 조합도 생겼다.
6. 대외 관계
당나라 초기에는 돌궐을 정복하고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등 강한 군사력을 앞세웠다면 중반이후는 중앙권력이 약화되었다는 이유도 있어 군사력 우위의 외교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당나라 시대 일본은 나라 시대로 당과 긴밀하게 통교하고 있었다. 고구려 멸망후 유민들에 의해 건국된 발해는 당나라의 견제를 받으면서 교역은 하게 되는데 812년 당나라가 신라와 손을 잡고 발해 원정에 나서자 일본과 동맹하고 신라를 적대시 하면서 동아시아 정세는 신라와 당나라, 발해와 왜의 양자 구도를 이루게 된다. 일본은 836년에 견신라사 파견을 중단하고 838년에는 견당사 파견을 중단하면서 발해와의 관계만을 유지했는데, 이는 당시 발해의 국력이 강해졌다는 반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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