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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중국 162

오호십육국 후량(後涼) 설명, 후량 황제 계보

오호십육국시대 후량(後涼 386년~403년)은 저족(氐族) 여광(呂光)에 의해 건국된 나라로 원래 국명은 량(凉)이다. 중국 오호십육국시대 - 후량(後涼) 설명후량의 건국자 여광은 저족 출신으로 전진(前秦)의 장군이었다. 383년 여광은 부견(苻堅)의 명을 받아 서역 원정을 떠났다. 1월부터 원정을 시작해 하서(河西) 회랑을 진군 384년 7월 귀현(亀玆)을 정벌하고 서역 대부분을 영향권 아래 두었다. 이때 여광은 서역에 이름이 알려진 승려 구마라습(鳩摩羅什)의 신병을 확보한다. 전진의 부견이 비수대전(淝水大戰)에서 패배하여 몰락하고 전진은 혼란에 빠지고 교통이 두절되어 여광은 이 소식을 알지 못하고 서역 평정 이후 부견의 명령이 오지 않자 불안을 느낀 여광은 휘하 장병 및 구마라습의 희망에 따라 정벌을..

역사/중국 2017.02.15

오호 십육국 서진(西秦) 설명, 서진 황제 계보

오호십육국시대 서진(西秦, 385년 ~ 400년, 409년 ~ 431년)은 선비족(鮮卑族) 걸복부(乞伏部)의 걸복국인(乞伏國仁)이 세운 국가로 국호는 진(秦)이다. 같은 국명을 가진 국가가 많아 구분하기 위해 서진이라 부른다. 중국 오호 십육국 시대 - 서진(西秦) 설명걸복국인(乞伏國仁)은 전진(前秦)의 군주 부견(苻堅)의 부하로 남선우(南單于)의 직위를 가지고 있었다. 383년 비수대전(淝水大戰)이 벌어지기 직전 농서(隴西)에서 걸복국인의 숙부 걸복보퇴(乞伏步頹)가 모반하고 부견은 걸복국인을 토벌대로 파견하는데 걸복보퇴는 오히려 걸복국인을 환영해 준다. 비수대전의 패배로 전진의 국력이 쇠퇴하자 걸북국인은 농서 인근의 여러 부족들을 통합해 세력을 확대하고 385년 부견이 요장(姚萇)에게 살해되자 걸복국인..

역사/중국 2017.02.15

후진(後秦) 황제 계보

오호 십육국 시대 강족이 후진(後秦)은 384년부터 417년까지 33년간 3명의 황제가 있었다. 정리해 본다. 오호십육국 시대 후진(後秦) 황제 계보 진시조(秦始祖) 경원황제 (景元皇帝) 요익중(姚弋仲)무소제 추증/ 능호 고릉(高陵)요약: 요익중(姚弋仲, 280년 ~ 352년)은 중국 오호십육국 시대에 활동한 강족(羌族)의 수장으로 후진(後秦)을 건국한 요장(姚萇)의 아버지. 후진이 건국된 이후 시조(始祖) 경원황제(景元皇帝)로 추존되었다. 요익중은 남안(南安) 출신으로 강족의 수장이다. 313년 기근을 피해 동쪽으로 이주 옹주(雍州 산시 성 중부)에 거주하며 호서강교위·옹주자사·부풍공(護西羌校尉、雍州刺史、扶風公)을 자칭했다. 전조(前趙)의 유총(劉叢)은 요익중을 포섭하려 하였으나 따르지 않았다. 318..

역사/중국 2017.02.14

오호 십육국 후진(後秦) 설명

오호 십육국 시대 후진(後秦, 384년 ~ 417년)은 강족 요장(姚萇)이 건국한 나라로 국호는 진(秦)이다. 건국자의 성을 따 요진(姚秦)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국 오호 십육국 시대 - 후진(後秦) 설명후진을 세운 강족(羌族)은 중국의 서북방에 살던 이민족으로 후한 시대부터 중국으로 이주해 산시성(陝西省) 일대에 거주했다. 오호 십육국 시대에 들어와 요익중(姚弋仲), 요양(姚襄), 요장 등이 족장이 되어 전조(前趙), 후조(後趙), 동진(東晉), 전진(前秦) 등의 용병으로 중국 각지를 전전한다. 383년 전진의 부견(符堅)이 비수대전에서 패배하자 화북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는데 이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출정했던 요장은 반란군에 패배하고 부견의 처벌을 두려워해 위수 북방의 말목장으로 도주 384년 대장군..

역사/중국 2017.02.14

북연의 창립자 모용운(慕容雲) 고운(高雲) 설명

고운(高雲, ? ~ 409년)은 북연(北燕)의 초대 황제로 시호는 혜의제(惠懿帝)이다. 모용보의 양자로서 모용 씨를 얻어 모용운(慕容雲)이란 이름을 써 모용운이라고도 불린다. 북연을 세운 고운에 대해 정리해 본다. 북연의 창립자 모용운(慕容雲)은 고구려인 고운(高雲)이었다. 고운은 고국원왕 때 고구려가 후연(後燕)에 패배하여 붙잡혀 온 고구려의 지파 고화(高和)의 손자이며 고발(高拔)의 아들로 자(字)는 자우(子雨). 생각이 깊고 차분한 성격이었다고 전해지는데, 훗날 북연의 두 번째 황제가 되는 풍발(馮跋)과 두터운 친교를 쌓게 된다. 후연 2대 황제 혜민제(惠閔帝) 모용보(慕容寶, 재위 : 396년 ~ 397년)가 태자로 있었을 때 고운은 무관으로서 모용보를 섬겼다. 모용보가 등극한 후 시어랑(侍御郞)..

역사/중국 2017.02.14

오호 십육국 북연(北燕) 설명, 북연 황제 계보

중국 오호 십육국 시대 북연(北燕, 407년 ~ 436년)은 고구려의 왕족 출신 고운이 후연을 멸망시키고 건국한 나라로 연나라이지만 다른 연나라와 구분하기 위해 북연(北燕)이라고 부른다. 모용씨의 연나라를 후연, 고운의 연나라를 북연으로 구분하지만, 일부 역사 학자는 고운의 재위까지를 후연으로 보기도 한다. 중국 오호 십육국 시대 - 북연(北燕) 설명선비족들이 건국한 후연의 마지막 황제 모용희는 폭군으로 407년 모용희의 황후가 사망하자 모용희는 신하들에게 큰 소리로 곡하도록 명령하고 소리가 크지 않은 자들을 처벌했는데 이 사건으로 선비족화한 한족 출신의 신하 풍발은 모용보의 양자 모용운(고운)을 설득해 반란을 일으켰다. 모용희는 폐위되고 수도 용성을 공격하다가 붙잡혀 처형되었다. 모용운은 천왕(天王)에..

역사/중국 2017.02.14

후연세조(後燕 世祖) 모용수(慕容垂) 설명

모용수(慕容 垂, 326년 ~ 396년, 재위: 384년 ~ 396년)는 중국 오호 십육국 시대 후연(後燕)의 제1대 황제로 자는 도명(道明) 묘호는 세조(世祖) 시호는 성무제(成武帝)다. 모용수(慕容垂)는 전연(前燕) 모용황(慕容皝)의 다섯째 아들로 326년에 태어났다. 모친은 단씨(段氏)이며 원래 이름은 모용패(慕容覇)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해 모용황의 총애를 받았고 모용황은 모용패를 태자로 삼으려 했지만 신하들의 반대로 그만두었다. 태자 모용준(慕容俊)보다 모용패를 더 총애자 모용준은 모용패를 시기하게 되고 이후 모용준이 전연의 2대황제(경소제)로 즉위하자 모용패는 모용준의 견제를 받고 지방으로 좌천된다. 이후 모용패는 낙마하여 앞니가 부러지게 되자 이름을 패(覇)에서 수(垂)로 바꾼다. 모용수의 부..

역사/중국 2017.02.14

오호십육국 후연(後燕) 황제 계보

오호십육국시대 후연(後燕, 384년 ~ 407년)은 총 4명의 황제가 있었다.제1대 연 세조(燕世祖)무성황제(武成皇帝)모용수(慕容垂)연호: 연원(燕元) 384년 ~ 386년, 건흥(建興) 386년 ~ 396년/ 재위기간 386년 ~ 396년/ 능호 선평릉(宣平陵)요약: 모용수(慕容 垂, 326년 ~ 396년, 재위: 384년 ~ 396년)는 후연(後燕)의 초대 황제로 자는 도명(道明), 묘호는 세조(世祖), 시호는 성무제(成武帝)이다. 전연(前燕) 모용황(慕容皝)의 다섯째 아들로 태자 모용준(慕容俊)의 시기를 받고 모용준이 즉위한 이후 모용패는 견제를 받아 지방으로 좌천되기도 하고 많은 제한을 받았다. 훗날 전진(前秦)으로 망명했다 370년 전연이 멸망하자 모용수는 전진의 장수로 각지에서 전공을 세웠다...

역사/중국 2017.02.14

오호 십육국 후연(後燕) 설명

오호십육국시대 후연(後燕, 384년 ~ 407년)은 선비족 모용수(慕容垂)가 건국한 나라로 국호는 연(燕)이다. 동시대 같은 이름을 가진 나라가 4개나 되기 때문에 두 번째로 건국해 후연이라고 부른다. 후연은 고구려 왕족 출신 고운(高雲)이 황위를 찬탈하고 북연(北燕, 407년 ~ 436년)을 세우면서 멸망한다. 정리해 본다. 중국 오호 십육국 시대 - 후연(後燕) 설명 전연(前燕)이 멸망한 후 전연의 왕족이었던 모용수는 전진(前秦)의 부견(苻堅) 휘하에서 복무한다. 383년 부견이 비수대전에서 패배하자 모용수는 이를 기회로 독립하기로 마음먹고 부견을 설득해 곁을 떠나 하북의 업(鄴)으로 들어갔다. 이때 정령족의 적빈(翟斌)이 낙양(洛陽) 근방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모용수는 토벌을 위해 출진한다. 성을 나..

역사/중국 2017.02.14

전진의 3대 황제 진세조 (秦世祖) 부견(苻堅) 설명

중국 오호 십육국 시대 전진(前秦)의 3대 황제 부견(苻堅, 337년 ~ 385년, 재위 : 357년 ~ 385년)의 자(字)는 영고(永固), 문옥(文玉)이고 묘호는 세조(世祖), 시호는 선소제(宣昭帝)이다. 부견은 부건(苻健)의 동생 부웅(苻雄)의 아들로 337년에 태어났다. 어려서 영민해 할아버지 부홍(苻洪, 진 태조)의 총애를 받았고 등에 '草付應王'이라는 붉은 글씨가 써 있어 부홍은 이를 보고 성을 부씨(苻氏)로 고치기도 했다고 전한다. 354년 부웅이 전사하자 동해왕(東海王)의 작위를 이어받았다. 357년 왕맹(王猛)을 만나 등용하고, 왕맹과 함께 반정을 일으켜 폭군이었던 2대황제 부생(苻生)을 폐위하고 천왕(天王)에 즉위한다. 즉위 초 부견은 왕맹을 중용해 내치를 다지고 개혁을 실시해 법을 엄..

역사/중국 2017.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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