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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님의 얼굴, 최초의 님, 님의 손길

올드코난 2010. 7. 3.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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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코난(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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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韓龍雲)



님의 얼굴

 

임의 얼굴을 '어여쁘다'고 하는 말은

적당한 말이 아닙니다.

어여쁘다는 말은 인간 사람의 얼굴에 대한 말이요,

님은 인간의 것이라고 할 수가 없을 만치 어여쁜 까닭입니다.

 

자연은 어찌하여 그렇게 어여쁜 님을 인간으로 보냈는지,

아무리 생각하여도 알 수가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자연의 가운데에는 님의 짝이 될 만한 무엇이 없는 까닭입니다.

 

님의 입술같은 연꽃이 어디 있어요.

님의 살빛같은 백옥이 어디 있어요.

봄 호수에서 님의 눈결같은 잔 물결을 보았습니까.

아침 볕에서 님의 미소같은 방향(芳香)을 들었습니까.

천국의 음악은 님의 노래의 반향입니다.

아름다운 별들은 님의 눈빛의 화현(化現)입니다.

 

아아, 나는 님의 그림자여요.

님은 님의 그림자밖에는 비길 만한 것이 없습니다.

님의 얼굴을 어여쁘다고 하는 말은 적당한 말이 아닙니다.



최초의 님

 

맨 처음에 만난 님과 님은 누구이며 어느 때인가요.

맨 처음에 이별한 님과 님은 누구이며 어느 때인가요.

맨 처음에 만난 님과 님이 맨 처음으로 이별하였습니까,

다른 님과 님이 맨 처음으로 이별하였습니까.

 

나는 맨 처음에 만난 님과 님이 맨 처음으로 이별한 줄로 압니다.

만나고 이별이 없는 것은 님이 아니라 나입니다.

이별하고 만나지 않는 것은 님이 아니라 길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들은 님에 대하여 만날 때에 이별을 염려하고,

이별할 때에 만남을 기약합니다.

그것은 맨 처음에 만난 님과 님이 다시 한번 이별한

유전성의 흔적입니다.

 

그러므로 만나지 않는 것도 님이 아니요,

이별이 없는 것도 님이 아닙니다.

님은 만날 때에 웃음을 주고, 떠날 때에 눈물을 줍니다.

만날 때의 웃음보다 떠날 때의 눈물이 좋고,

떠날 때의 눈물보다 다시 만나는 웃음이 좋습니다.

아아, 님이여! 우리의 다시 만나는 웃음은 어느 때에 있습니까.


님의 손길

 

님의 사랑은 강철을 녹이는 물보다도 뜨거운데,

님의 손길은 너무 차서 한도가 없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서늘한 것도 보고 찬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님의 손길같이 찬 것은 볼 수가 없습니다.

 

국화 핀 서리 아침에 떨어진 잎새를 울리고

오는, 가을 바람도 님의 손길보다는 차지 못합니다.

달이 작고 별에 뽈나는 밤에, 얼음 위에 쌓인 눈도

님의 손길보다는 차지 못합니다.

 

나의 작은 가슴에 타오르는 불꽃은

님의 손길이 아니고는 끄는 수가 없습니다.

 

님의 손길의 온도를 측량할만한 한란계는

나의 가슴 밖에는 아무데도 없습니다.

님의 사랑은 불보다도 뜨거워서, 근심 산()을 태우고 한()

바다를 말리는데, 님의 손길은 너무도 차서 한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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