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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비, 어느 것이 참이냐, 여름밤이 길어

올드코난 2010. 7. 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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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코난(OLD CONAN)

추천 문학, , 소설

만해 한용운(韓龍雲)


 

비는 가장 큰 권위를 가지고, 가장 좋은 기회를 줍니다.

비는 해를 가리고 하늘을  가리고, 세상 사람들의 눈을  가립니다.  

그러나 비는 번개와 무지개를 가리지 않습니다.

 

나는 번개가 되어 무지개를 타고,

당신에게 가서 사랑의 팔에 감기고자 합니다.

비오는 날 가만히 가서 당신의 침묵을 가져온대도,

당신의 주인은 알 수가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비오는 날에 오신다면, 나는

연잎으로 웃옷을 지어서 보내겠습니다.

당신이 비오는 날에 연잎옷을 입고 오시면,

이 세상에는 알 사람이 없습니다.

당신이 비 가운데로 가만히 오셔서 나의 눈물을 가져 가신대도

영원한 비밀이 될 것입니다.

비는 가장 큰 권위를 가지고, 가장 좋은 기회를 줍니다.



어느 것이 참이냐

  

  엷은 사()의 장막(帳幕)  작은 바람에  휘돌려서 처녀의 꿈    

을 휩싸듯이  자취도  없는 당신의   사랑은 나의 청춘을   휘감습    

니다.

 

  발딱거리는 어린 피는  고요하고 맑은  천국(天國)의 음악에 춤   

을 추고 헐떡이는  작은 영()  소리없이 떨어지는 천화(千花)    

의 그늘에 잠이 듭니다. 

 

  가는 봄비가 드리운  버들에 둘러서 푸른  연기가 되듯이, 끝도    

없는 당신의 정()실이 나의 잠을 얽습니다.

  바람을 따라가려는 짧은  꿈은 이불 안에서  몸부림치고, 강 건    

너 사람을 부르는 바쁜 잠꼬대는 목 안에서 그네를 뜁니다.

 

  비낀 달빛이 이슬에  젖은 꽃수풀을  싸라기처럼 부시듯이 당신    

의 떠난 한은  드는 칼이 되어서  나의 애를  도막도막 끊어 놓았   

습니다.

 

  문 밖의 시냇물은  물결을 보내려고  나의 눈물을  받으면서
르지 않습니다.

 

  봄동산의 미친 바람은  꽃 떨어뜨리는  힘을 더하려고 
나의 한
숨을 기다리고 섰습니다.



여름밤이 길어

 

  당신이 계실 때에는 겨울밤이 짧더니,

  당신이 가신 뒤로는 여름밤이 길어요.

  책력의 내용이 그릇되었다  하였더니, 개똥불이  흐르고 벌레가 웁니다.

  긴 밤은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 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긴 밤은 근심 바다의 첫물결에서  나와서, 슬픈 음악이 되고 
득한 사막이 되더니 필경 절벽의 성 너머로 가서
 악마의 웃음 속으
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당신이 오시면, 나는 사랑의 칼을 가지고

  긴 밤을 베어서 일천 토막을 내겠습니다.

  당신이 계실 때에는 겨울밤이 짧더니,

  당신이 가신 뒤로는 여름밤이 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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