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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당신이 아니더면, 사랑의 존재, 사랑의 측량

올드코난 2010. 7. 3.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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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코난(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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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韓龍雲)



당신이 아니더면

 

당신이 아니더면 포시럽고 매끄럽던 얼굴에

왜 주름살이 접혀요.

당신이 기룹지만 않다면,

언제까지라도 나는 늙지 아니할 테여요.

맨 처름에 당신에게 안기던 그때대로 있을 테여요.

 

그러나 늙고 병들고 죽기까지라도,

당신 때문이라면 나는 싫지 않아요.

나에게 생명을 주든지 죽음을 주든지

당신의 뜻대로만 하셔요.

나는 곧 당신이어요.




사랑의 존재

 

사랑을 사랑이라고 하면, 벌써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을 이름지을 만한 말이나 글이 어디있습니까.

미소에 눌려서 괴로운 듯한 장미빛 입술인들 그것을

스칠 수가 있습니까.

눈물의 뒤에 숨어서 슬픔의 흑암면(黑闇面)을 반사하는

가을 물결의 눈인들 그것을 비칠 수가 있습니까.

그림자 없는 구름을 거쳐서, 메아리 없는 절벽을 거쳐서,

마음이 갈 수 없는 바다를 거쳐서 존재? 존재입니다.

 

그 나라는 국경이 없습니다. 수명은 시간이 아닙니다.

사랑의 존재는 님의 눈과 님의 마음도 알지 못합니다.

 

사랑의 비밀은 다만 님의 수건에 수놓는 바늘과,

님의 심으신 꽃나무와, 님의 잠과 시인의 상상과

그들만이 압니다.

사랑의 측량

 

즐겁고 아름다운 일은 양이 많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사랑은 양이 적을수록 좋은가 봐요.

당신의 사랑은 당신과 나와 두 사람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사랑은 당신과 나의 거리를 측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과 나의 거리가 멀면 사랑의 양이 많고,

거리가 가까우면 사랑의 양이 적은 것입니다.

그런데 적은 사랑은 나를 웃기더니, 많은 사랑은 나를 울립니다.

 

뉘라서 사람이 멀어지면, 사랑도 멀어진다고 하여요.

당신이 가신 뒤로 사랑이 멀어졌으면, 날마다 날마다

나를 울리는 것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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