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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나는 잊고자, 당신이 가신 때, 떠날 때의 님의 얼굴

올드코난 2010. 7. 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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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코난(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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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韓龍雲)



나는 잊고자

 

남들은 님을 생각한다지만

나는 님을 잊고자 하여요.

잊고자 할수록 생각하기로

행여 잊을까 하고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잊으려면 생각하고

생각하면 잊히지 아니하니,

잊지도 말고 생각도 말아 볼까요.

잊든지 생각하든지 내버려 두어 볼까요.

그러나 그리도 아니 되고

끊임없는 생각생각에 님뿐인데 어찌하여요.

 

구태여 잊으려면

잊을 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잠시 죽음뿐이기로

님 두고는 못하여요.

 

아아, 잊히지 않는 생각보다

잊고자 하는 그것이 더욱 괴롭습니다.




당신이 가신 때

 

  당신이 가시 때에 나는 다른 시골에 병들어 누워서

  이별의 키스도 못하였습니다.

  그때는 가을바람이 처음으로 와서

  단풍이 한 가지에 두서너 잎이 붉었습니다.

 

  나는 영원의 시간에서 당신 가신 때를 끌어내겠습니다.

  그러면 시간은 두 도막이 납니다.

  시간의 한 끝은 당신이 가지고, 한 끝은 내가 가졌다가

  당신의 손과 나의 손이 마주잡을 떼에 가만히 이어 놓겠습니다.

  그러면 붓대를 잡고  남의 불행한  일만 쓰려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당신의 가신 때는 쓰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영원의 시간에서 당신 가신 때를 끌어 내겠습니다.


떠날 때의 님의 얼굴

 

꽃은 떨어지는 향기가 아름답습니다.

해는 지는 빛이 곱습니다.

노래는 목마친 가락이 묘합니다.

님은 떠날 때의 얼굴이 더욱 어여쁩니다.

 

떠나신 뒤에 나의 환상의 눈에 비치는 님의 얼굴은 눈물이 없는 눈

으로는 바로 볼 수가 없을만치 어여쁠 것입니다.

님의 떠날 때의 어여쁜 얼굴을 나의 눈에 새기겠습니다.

님의 얼굴은 나를 울리기에는 너무더 야속한 듯하지마는,

님을 사랑하기 위하여는 나의 마음을 즐겁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일 그 어여쁜 얼굴이 영원히 나의 눈을 떠난다면,

그때의 슬픔은 우는 것보다도 아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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