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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만해 한용운 - 복종, 알 수 없어요, 나룻배와 행인

올드코난 2010. 7. 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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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코난(OLD CONAN)

추천 문학, , 소설

 복종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 더 달콤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알 수 없어요

 

바람도 없는 공중에서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이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을 알지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나룻배와 행인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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