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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인슈타인 시집 – 여자의 집, 너와 나 사이의 빈 집, 벽에게

올드코난 2010. 7. 28.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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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3      너와 나

 

여자의 집

  

 안개로 저를 풀어 버린 저 들녘

 한가운데 그 여자의 집이 불을 밝혀 들고 있으리

 조금씩 안개를 베어 물면서 다가서면

 길을 따라 흐르는 개울이 있고 다리가 있고

 다리를 건너서 나 있는 두 갈래의 길

 나는 문득 수도 없이 다녔던 그 길들이 낯설다

 어느 길로 가든 희미한 불빛이 번져 오는 창이 보이고

 문은 언제나처럼 열려 있으리

 그러나 나는 오늘 길이 아닌 곳으로 가고 싶다

 그윽한 안개가 내 속을 흐르는 동안

 나는 논이며 밭이며 시궁창을 헤매어

 쓰러지고 자빠지면서 일어나 가리라

 가시에 찔리어 피를 뚝뚝 흘리며

 그러나 안개를 타고 가볍게 흐르면서

 길 없는 길을 만들며 나아가리

 그리하여 마침내 내가 가지 않은 길들을 바라다보며

 내가 가지 않은 길은 없다고

 그녀의 집 앞에서 외치어 보고 싶다

 한 발을 들여놓자 끝없는 나락이

 또 한 발을 잡아당길지라도

 오늘은 세상 모든 길을 지나서

 너에게 이르고 싶은 것이다

 

너와 나 사이의 빈 집

 

 너는 빈 집 같다

 한번도 사람이 살아본 적이 없는

 이제 막 허공 중에 세워진 아파트의 방 한 칸

 나는 거기에 도배를 하고

 아름다운 가구를 들이고 싶다

 벽에는 가득히 수족관을 세우고

 바다를 띄우리라

 베란다에는 망원경을 놓아

 날마다 별들을 불러도 보리라

 어느 먼 별에선듯

 너는 생각이 깊은 눈으로

 나를 바라다본다

 거기서 나는 너와 함께 살고 싶다

 오라


 

벽에게

  

 마음이 담을 쌓고

 빛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오래고 오래도록 창문마저 동여맨다

 하여 홀로 먼 우주를 걷느냐

 발길에 채이는 별들은 다 어쩌고

 물결치는 파도는 다 어쩌고

 블랙홀 속으로 들어가느냐

 죽었느냐 살았느냐 무엇이 보이느냐

 똑똑 흘러드는 소리 자욱하고

 아아 우물 속으로 달이 뜬다

 담 너머로 별들이 자욱하고

 

 나는 너와

 너 사이의 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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