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 詩
제 3 부 너와 나
여자의 집
안개로 저를 풀어 버린 저 들녘
한가운데 그 여자의 집이 불을 밝혀 들고 있으리
조금씩 안개를 베어 물면서 다가서면
길을 따라 흐르는 개울이 있고 다리가 있고
다리를 건너서 나 있는 두 갈래의 길
나는 문득 수도 없이 다녔던 그 길들이 낯설다
어느 길로 가든 희미한 불빛이 번져 오는 창이 보이고
문은 언제나처럼 열려 있으리
그러나 나는 오늘 길이 아닌 곳으로 가고 싶다
그윽한 안개가 내 속을 흐르는 동안
나는 논이며 밭이며 시궁창을 헤매어
쓰러지고 자빠지면서 일어나 가리라
가시에 찔리어 피를 뚝뚝 흘리며
그러나 안개를 타고 가볍게 흐르면서
길 없는 길을 만들며 나아가리
그리하여 마침내 내가 가지 않은 길들을 바라다보며
내가 가지 않은 길은 없다고
그녀의 집 앞에서 외치어 보고 싶다
한 발을 들여놓자 끝없는 나락이
또 한 발을 잡아당길지라도
오늘은 세상 모든 길을 지나서
너에게 이르고 싶은 것이다
너와 나 사이의 빈 집
너는 빈 집 같다
한번도 사람이 살아본 적이 없는
이제 막 허공 중에 세워진 아파트의 방 한 칸
나는 거기에 도배를 하고
아름다운 가구를 들이고 싶다
벽에는 가득히 수족관을 세우고
바다를 띄우리라
베란다에는 망원경을 놓아
날마다 별들을 불러도 보리라
어느 먼 별에선듯
너는 생각이 깊은 눈으로
나를 바라다본다
거기서 나는 너와 함께 살고 싶다
오라
벽에게
마음이 담을 쌓고
빛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오래고 오래도록 창문마저 동여맨다
하여 홀로 먼 우주를 걷느냐
발길에 채이는 별들은 다 어쩌고
물결치는 파도는 다 어쩌고
블랙홀 속으로 들어가느냐
죽었느냐 살았느냐 무엇이 보이느냐
똑똑 흘러드는 소리 자욱하고
아아 우물 속으로 달이 뜬다
담 너머로 별들이 자욱하고
나는 너와
너 사이의 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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