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세상

박정희에 굴복하지 않았던 판사 유수호 의원 삶과 평가

올드코난 2015. 11. 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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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감이 있습니다. 오늘 2017.4.19 이 글을 삭제합니다. 앞으로 한 인물을 평가할때 더 자세히 알아보고 객관적으로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제 11월 7일 유승민 의원이 아버지 되시는 故 유수호 의원이 별세했다. 정치인으로서는 몰라도 판사로서는 훌륭했던 소신이 있었던 故 유수호 의원의 명복을 빌며 그의 삶을 간략히 정리해 본다.

박정희에 굴복하지 않았던 원칙있던 판사 故 유수호 의원 별세, 그의 삶과 평가 (아버지 유수호는 박정희에 굴복하지 않았고, 유수호 아들은 박정희 딸에 맞서고 있다.)



1.故 유수호 의원 프로필

故 유수호(劉守鎬, 1931년 12월 16일 ~ 2015년 11월 7일) 의원은 박정희 정권시절 판사였었다. 유수호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군사정권 반대시위를 주동한 부산대 총학생회장을 석방시켰고, 1971년 (박정희 3선)대통령 선거에서 개표 부정에 관여한 혐의를 받았던 울산시장에게 징역형을 선고한다. 이에 박정희 독재정권에 미움을 받게 되고 결국 73년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후 판사 복을 벗게 된다. 이후 변호사로 활동하다 정치로 입문하게 된다.


1978년 12월 총선을 앞두고 목효상 전 의원, 문양 변호사 등과 함께 공화당 대구 동남구에 공천 신청을 하였으나 탈락하고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하다 전두환 정권 후반기인 1985년 민정당 대구 중.서구 지구당 위원장에 선출되고, 노태우 정부 첫해인 19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고 14대 선거까지 대구 중구에서 당선이 된다.


1990년 3당 합당 뒤인 92년 민자당 대통령 후보 경선 파동시 이종찬 전 의원 편에 서게 되는데 당시 박철언, 이자헌, 김용환, 장경우 의원 등과 함께 민자당을 탈당하고 이종찬 의원이 주도하는 새한국당에 합류한다. 얼마안가 1992년 새한국당은 국민당에 흡수되고 92년 대선 몇일 앞두고 불거진 초원복집 사건 국민당쪽 고발인으로 활동하였다. 대선 이후에는 신민당에 합류하였다. 이후 신민당에서 탈당 무소속으로 있다가 95년 초 자민련 창당에 합류하지만 다음해 1996년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고 정계를 은퇴한다. 이후 조용히 말년을 보내다 오늘 2015년 11월 7일 세상을 떠났다.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그의 아들이다.



2.올드코난의 평가

그의 정치인생을 보면 진짜 보수였다. 새누리당같은 가짜 보수들(혹은 수구들)과는 격이 달랐다. 그에게도 분명 흠이 있었지만, 그의 인생 전체를 보면, 그는 존경을 받을 정도의 강직함을 갖춘 인물로 특히 박정희라는 독재자의 정권하에서 판사로서의 소신있는 판결을 내렸던 원칙과 양심이 있는 판사였다.

정치에서 큰 발자취를 남기지는 못했지만, 법률가로서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본다.



3.잡담

알다시피 故 유수호 의원의 아들이 유승민 의원이다.

故 유수호 의원은 박정희 대통령 눈 밖에 났고, 아들 유승민은 박정희의 딸 그네씨 미움을 받고 있다. 박씨 집안과 유씨 집안이 2대에 걸친 악연이라고 할까.


故 박정희 대통령의 부정선거에 맞섰던 故 유수호 의원

역사를 왜곡하려는 박근혜 대통령에 맞설 수 있는 유승민 의원


누구를 응원하겠냐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유승민 의원을 응원하겠다.

비록 새누리당이기는 하지만, 유승민 의원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겠다.


마지막으로 故 유수호 의원의 명복을 빌며, 대한민국 판사들이 모두 황우여 같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 故 유수호 의원의 원칙과 소신에 다시한번 존경의 인사를 드린다.


글 작성/편집 올드코난 (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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