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세상

대한민국 의회민주주의 공로자 미스터 쓴 소리 이만섭 국회의장 생애와 평가

올드코난 2015. 12. 14.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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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2015.12.14.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별세했다. 향년 83세였다. 지난달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셨는데, 연이어 정치 원로들이 세상을 등지고 있다. 미스터 쓴 소리로 한시대를 풍미했던 이만섭 전 국회의장에 대해 정리해 본다.

대한민국의 의회민주주의에 큰 공로를 세웠고, 권력자에게 굴복하지 않았던 미스터 쓴 소리 이만섭 국회의장 생애와 평가


1.정계 입문

이만섭(李萬燮, 1932년 2월 25일 ~ 2015년 12월 14일) 국회의장은 원래 언론인 출신이었다. 1957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후 동아일보에 입사해 정치부 기자로 활동하다 31살이던 1963년 민주공화당 전국구의원으로 제6대 국회에 진출하며 정계에 입문한다.


2. 운이 좋은 8선 의원

1965년 민주공화당 원내 부총무를 지냈고, 1967년 제7대 총선에서는 대구 중구 선거구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지만 8대 선거에는 낙선하고 이후 제 10대 총선에 대구 중구에서 출마해 3선 의원이 된다. 이후 11대, 12대, 14대, 15대, 16대 총 8번의 국회의원을 역임하게 된다.

단 이만섭 의장의 경우 4번은 전국구로 당선되고, 3번은 2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 제도로 당선되었는데 3번의 중대선거구 당선 중 2번은 2위로 당선되었고 전구구에서도 2위로 당선한 적이 있다. 다시 말해 8번의 국회의원 당선 중 1위로 당선된 적은 8선 중 단 3번이었다. 이 때문에 전국구 및 중대선거구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 이만섭 의장의 사례는 자주 인용되기도 한다. (당선 운이 좋은 편이었다.)



3. 군사 정부 시절

비록 당선운이 있다는 점에서는 비판의 소지가 있지만 의정활동 기간에는 당시 국회의원들 중에서는 대표적인 소신파였다.

박정희 정부 시절 국회에 간섭하던 중앙정보부장 이후락과 김형욱을 연이어 탄핵하고 박정희가 이만섭 의원의 의견을 수용 이들을 낙마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박정희의 3선 개헌을 반대하면서 8년간 정치활동을 중단 당한다.

1980년 민주공화당이 전두환의 신군부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하자 과거 민주공화당 출신과 유신정우회 출신 인사들을 주축으로 한 한국국민당의 창당에 참여하고 1985년 한국국민당의 총재를 지내지만 1987년 10월부터 소속 의원들이 대거 탈당하고 신민주공화당에 입당하면서 와해되고 다음해 제13대 총선에서 이만섭 의원을 포함해 모두 낙선한다. 한국국민당은 신민주공화당에 흡수되었다.


4.김영삼 정부

1990년에 3당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에 합류하고 이후 제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국회의장을 지내기도 하였으며, 그 후 민자당의 상임고문을 거쳐 신한국당의 제15대 국회의원으로 다시 당선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 일명 날치기를 거부하면서 YS와 사이가 멀어지기도 했다.


5. 김대중 정부

신한국당의 총재서리로 임명되었고, 1997년에 이인제를 지지하면서 신한국당을 탈당하고 국민신당의 총재가 되었다가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와 합당을 추진하고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을 지내기도 했다.

그 뒤 새천년민주당 창당준비위원장을 지냈고, 창당 후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제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다시 국회의장을 지냈다. 이 시기부터 국회법이 개정되어 국회의장은 당적을 가질 수 없게 되었는데 이만섭은 최초로 무당적 국회의장으로 기록된다.


6. 은퇴와 사망

2004년 제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계를 은퇴하고 간간이 언론을 통해 정치권에 대한 비판을 하는 등 원로로서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2015년 12월 14일 별세했다. 향년 83세였다.



7.올드코난의 평가

이만섭 의장의 정치신념은 “정치와 사랑은 계산해선 안된다.”였다. 

이는 국민을 속이지도 말고, 소신있게 정치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이만섭 의장에 대해서 부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최소한 그를 거짓말쟁이라고 비판하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외골수여서 거부감은 줄 수 있지만, 타인에게 사기를 칠 사람은 아니었다. 아부 보다는 직설적인 화법을 쓰는 분이었기에, 존경은 받았지만 세력을 만들지는 못했다.

같은 편이어도 잘못한 것은 지적했고, 옳지 않은 것은 거부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이만섭 의장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은 그때문이며 그래서 의회민주주의의 발전에는 큰 공로를 세운 것이다.

돌이켜 보면 이만섭 의장은 대통령같은 1인자 보다는 권력자에게 맞서는 국회의원으로서가 잘 어울렸다. 그건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대통령이 되기 보다는 국회의장으로서의 사명을 다한 것이다.


요즘 들어 이만섭 의장 같은 분이 국회에 많이 없어 무척 아쉬었는데, 이렇게 가셔서 너무 안타깝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제2의 이만섭이 내년 20대 총선에 꼭 배출되기를 기대해 본다.


글 작성/편집 올드코난 (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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