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12월 15일 오늘 한국계 일본인 프로레슬러 역도산(力道山, 일본어: 力道山 りきどうざん 리키도우잔, 1924년 11월 14일 ~ 1963년 12월 15일)이 사망했다.일본 프로레슬링의 기초를 닦아 일본 프로레슬링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다. 본명은 김신락(金信洛)으로, 일본 이름은 모모타 미쓰히로(百田光浩)였다. 김일의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역도산에 대해 정리해 본다.
일본 프로레슬링의 아버지, 천황아래 역도산 (김신락) 생애
1.생애
역도산 (김신락)은 일제강점기였던 1924년 함경남도 홍원군에서 태어났다. 나가사키 현 오무라의 부농에게 양자로 들어가 모모타 미쓰히로 (百田 光浩 ももた みつひろ)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다. 어려서부 힘이 쎄 씨름 소년 장사로 1939년 16살 때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가 스모 선수가 된다. 이때 역도산(리키도잔)이라는 이름을 쓰게 된다. 스모 선수들의 최고 영예인 요코즈나를 꿈꾸지만 당시 식민지였던 조선인이라는 차별과 텃세에 1950년 스모계에서 은퇴하고, 1951년 10월 28일부터 프로레슬링을 시작했다. 일명 가라데촙으로 서양 선수를 때려 눕히는 장면에 일본인들은 열광하고 이때부터 역도산의 이름이 일본과 한국에 알려지게 된다.
일본인들에게 가장 각인된 경기는 1954년 2월 미국 샤프 형제를 초청해 벌어진 태그매치였다. '빨간 머리 파란 눈, 가슴과 배에 텁수룩하게 털이 난 샤프 형제는 미국인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미일전쟁'으로 연출된 첫 싸움에서 역도산은 가라테촙으로 상대를 때려눕히는데 이때부터 역도산은 반칙을 일삼는 외국 선수에 맞서 최후에 승리하는 일본 영웅 레슬러가 된다.
역도산의 인기는 한국에도 이어졌는데, 역도산은 남한과 북한 모두 좋아했다. 남한은 같은 한국인이기에 그를 좋아했고, 북한은 함경도 출신이기에 역도산을 좋아했다. 역도산은 안토니오 이노키, 김일, 자이언트 바바 등의 제자를 기른 스승이기도 했다.
하지만, 역도산은 이런 엄청난 성공으로 인해 다소 문란한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결국 1963년 12월 8일 심야 도쿄 도심의 나이트클럽 '뉴라틴쿼터'에서 야쿠자 스미요시 일가(住吉一家) 소속 무라타 가쓰시(村田勝志)와 말다툼이 벌어지고 이자의 칼에 복부를 맞았다. 병원에서 급히 수술을 했지만 이때 생긴 화농성 복막염 때문에 12월 15일 사망한다.
당시 역도산의 사망원인에 대해서는 오랜동안 의혹이 제기되었는데 2003년 역도산의 부인 다나카 게이코는 역도산의 사망이 의료사고였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지만 역도산의 죽음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2.평가
1950년대 일본은 매우 힘든 시기였다. 전범국가이면서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었고, 특히 일본은 본국의 외국에게 점령된 적이 없던 국가였다. 미국에 의해 처음으로 점령을 당했기에 일본인들은 패망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미국에 열등감이 있었다. 그런 일본인들에게 역도산이 미국 선수를 때려눕혔다는 사실에 흥분하고 일본 열도가 들끓었다는 것은 당연했다. 2차 세계대전 패망후 실의에 빠진 일본에게 역도산은 희망의 아이콘이 되고 이때 역도산을 일컬어 “천황아래 역도산”이라고 불렀다.
역도산은 일본의 영웅이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김일의 스승이었던 역도산은 당시 광복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6.25전쟁을 겪으면서 전국의 피폐했던 시기 한국에서도 영웅과 같은 존재였다.
북한에서도 인기가 있었다고 하니 역도산은 당대 이념과 민족을 초월한 혹은 그 경계선에 있던 인물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의 최후는 비참하면서도 어이없는 죽임이었고 그의 삶이 기회주의적인 면은 강했지만 당시 미래가 없어 보이던 한국과 일본인들에게 어떤 희망을 주었다는 점에서는 분명 좋은 평가를 받을 자격은 있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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