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세상

아름다움이 필요없던 명배우 비비안 리 (Vivien Leigh) 생애와 평가

올드코난 2015. 11. 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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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전: 비비언 리 요약] 비비언 리(Vivien Leigh, 1913년 11월 5일 ~ 1967년 7월 7일)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의 전형적인 남부 여인 스칼릿 오하라 역으로 첫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의 블랑슈 뒤부아 역으로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당시 영화보다는 연극배우로 더 많이 알려졌고 30년의 무대 경력 동안, 노엘 카워드나 조지 버나드 쇼의 희극 여주인공부터 오필리아, 클레오파트라, 줄리엣, 맥베스 부인 등의 고전적 셰익스피어 캐릭터까지 두루 소화했다.

리 자신은 아름다움이 진정한 배우의 길에 걸림돌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건강 악화가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성년 대부분을 조울증으로 보내 함께 일하기 힘들다는 평판을 얻었으며,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1940년대 중반 처음 발견된 만성 결핵으로 발작이 반복되자 건강은 더욱 나빠졌다. 올리비에와는 1960년 이혼했다. 1967년 54세에 결핵으로 죽었다. 영원한 배우 스칼랏 오하라, 비비안 리에 대해 알아 본다. 



그녀가 미모로 성공했다는 것은 편견이었다. 아름다움이 필요없던 명배우 비비안 리 (Vivien Leigh) 생애와 평가


1.어린 시절

비비안 리의 본명은 Vivian Mary Hartley(비비언 메리 하틀리)이다.

1913년 11월 5일 당시 영국령이었던 인도 다르질링(Darjeeling)에서 아버지 Ernest Richard Hartley와 어머니 Gertrude Mary Frances사이에서 태어난 외동딸이었다. 아버지는 프랑스계였고 어머니는 아일랜드 계통의 독실한 로마 카톨릭 신도였고 비비안의 부모는 1912년 영국 런던 켄싱턴(Kensington)에서 결혼을 했다. 어려서 인도에서 자란 비리안은 영국식 엘리트 교육을 받고 자랐고 부모와 여행을 다녀서인지 감성이 풍부한 비비안은 이때부터 문학가와 배우로서의 자질을 갖추었다고 여겨진다. 물론 재능도 있었는데, 비비안은 부모에게 배우의 꿈을 말하고 비비안의 아버지는 1931년 18세가 되던 해에 영국 왕립 예술 아카데미 (Royal Academy of Dramatic Art (RADA))에 입학시켜 준다.

그리고 그해 Herbert Leigh Holman을 만나게 되는데, 13년간 비비안의 수석 변호사였다. 주변에서 연극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만류에도 이들은 1932년 12월 20일 결혼을 하게 된다. 다음해 1933년 10월 12일 런던에서 딸 수잔 (Suzanne 나중에 Robin Farrington 부인으로 불려짐)을 낳는다.

2. 데뷔

비비안 리의 친구들이 뮤지컬 코미디 영화 Things Are Looking Up(1935)의 작은 역할이었던 여학생 역을 추천하는데, 이 영화가 비비안 리의 공식 데뷔작이다. (단역이라 당시 영화 크레딧에는 이름이 올라가지 못했다.) 영화후 비비안의 에이전트 John Gliddon은 당시 비비안의 배우명인 Vivian Holman을 바꾸는게 좋다는 의견을 나누고 비비안은 우리가 아는 이름 Vivian Leigh(비비안 리)로 결정했다. 

3. 연인 로렌스 올리비에(Laurence Olivier) 만남

로렌스는 The Mask of Virtue(미덕의 가면)에서의 비비안 리의 연기력에 박수를 보내고 축하의 인사를 건넨후 둘 사이는 동료로서 우정의 관계로 시작한다. 1937년 영화 Fire Over England에서 둘이 주연배우로 출연을 했는데, 당시 로렌스는 여배우 Jill Esmond와 결혼 중인 유부남이었다. 이 기간 비비안은 1936년 출간된 마가렛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을 읽었는데 비바안은 스칼렛 오하라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소설의 엄청난 성공은 영화 제작을 당연히 하해야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 기간에 비비안과 로렌스의 사랑은 깊어졌지만 둘다 이미 결혼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배우자들은 이혼을 거부하고 있던 때였다. 결국 둘은 기혼자의 신분으로 동거를 시작하게 되는데, 이에 대한 비평이 있었다.

4.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

제작자 David O. Selznick는 스칼렛 오하라 역을 공개 모집하고 오디션을 실시한다. 비비안이 스칼렛으로 결정되고 영화는 1939년 12월 15일 개봉되어 대단한 흥행성적을 거둔다. 개봉 당시뿐만이 아니라, 70년이 지난 지금도 걸작으로 꼽히는 위대한 영화로 작품성까지 인정을 받아 비비안 리는 첫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된다. 지금도 비비안 리하면 스칼렛을 떠올리는 그녀의 대표작이다.

(실재 허리치수는 23인치였지만, 연화에서 17인치로 나와서인지 그녀의 허리 치수는 17인치로 알려져있다.)



5.로렌스와의 결혼

1940년 로렌스 올리비에는 Jill Esmond와 이혼을 하고 1940년 8월 31일 캘리포니아 San Ysidro Ranch 목장에서 산타바바라 로렌스와 비비안은 결혼식을 올린다. 하지만 이들의 결혼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폐결핵과 유산, 조울중에 하루 3갑 줄담배를 피웠던 비비안은 연기에 대한 집착도 강해 로렌스와의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한다.


6. 2번째 아카데미 주연상 수상

말론 브란도와 출연했던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이 전차 (A Streetcar Named Desire, 1951)에 출연한다. 블랑쉬(Blanche DuBois)역을 맡은 비비안 리는 1952년 2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연기 인생의 정점이 되어 버렸다.

7. 로렌스와의 이혼

비비안 리의 건강은 계속 악화되는데 무엇보다 그녀의 조울증으로 인한 정신적인 문제가 매우 컸다. 남편 로렌스와의 불화는 계속되고 결국 세기의 커플이었던 이들은 1960년 이혼을 하게된다.


8. 말년과 죽음

이혼후에도 비비안 리는 연기 생활을 계속했다. 1963년에는 뮤지컬 시상제인 토니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여러 가지 정신적인 유체적인 건강상의 문제가 그녀를 괴롭히고 그녀는 서서히 죽음과 가까워지고 있음을 주변에서도 느낄 정도였다. 그리고 1967 7월 7일 비비안은 세상을 떠난다. 장례식은 영국 런전의 세인트 메리 교회 (St. Mary's Church)에서 치러졌다.

전 세계인의 연인이었던 비비안 리는 그렇게 사라진 것이다. 

9.평가

비비안 리는 정말 아름다운 배우였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 때문에 그녀의 뛰어난 연기력이 가려졌다.

그래서 비비안 자신도 아름다음때문에 칭찬을 받는 것을 싫어했다.


JTBC에서 표현한 "비비언 리만큼 아름다운 배우에게 연기력은 필요없다. 비비언 리만큼 연기하는 배우는 아름다움이 필요 없다"는 문구가 비비언 리에 대한 가장 적절한 평가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글 작성/편집 올드코난 (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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