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

태산가 (泰山歌)의 저자 응빙 양사언 생애와 평가

올드코난 2015. 12. 17.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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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양사어의 시조 ‘태산가’를 읊었다. 학창시절에 태산가 많이 들어 봤을 것이다. 태산가의 저자 양사언에 대해 알아 본다.

태산가 (泰山歌)의 저자 응빙 양사언 생애와 평가


1. 가계와 생애

양사언(楊士彦, 1517년 ~ 1584년)은 조선의 문신·서예가이다. 자는 응빙(應聘), 호는 봉래(蓬萊)·완구(完邱)·창해(滄海)·해용(海容).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1546년(명종 1) 문과에 급제, 대동승(大同升)을 거쳐 삼등(三登) 현감·평양 군수·강릉 부사·함흥 부윤 등을 역임한 후 회양(淮陽) 군수, 이어서 철원 군수를 지냈다. 회양 군수로 있을 때 금강산에 자주 들어가 대자연을 즐겼고 금강산 만폭동(萬瀑洞)의 바위에는 그가 새긴 '봉래풍악 원화동천(蓬萊楓嶽元化洞天)'이라는 글귀가 남아 있다. 이어서 안변(安邊) 군수로 나가 일을 잘하여 그 공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의 관계(關係)를 받았다.

그 후 안변 군수로 있으면서 큰 못을 파고 마초(馬草)를 저장하였다. 이듬해에 북쪽에서 변란이 일어나서 많은 군대가 북송될 때 다른 고을에서는 마초와 물이 없어서 관리나 백성들이 책임을 추궁당하여 사형을 받는 자까지 있었으나 안변만은 아무 걱정 없었다. 그의 앞을 내다보는 지혜에 누구나 탄복했다고 전한다. 얼마 안 되어 지릉(智陵)에 화재가 일어나니 그 책임 때문에 해서(海西)에 귀양 갔다. 2년 후 풀려 돌아오는 길에 병사했다.


2. 일화 (역사적 사실이 아님)

양사언의 아버지 양희수는 장령을 지낸 송환정(宋環貞)의 딸 은진 송씨를 부인으로 맞았는데, 마침 양희수와 같은 마을에 살던 문화 유씨 처자는 세상에서 제일 가는 아들을 낳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백일 동안 장독대에 자리를 펴고 밤마다 알몸으로 누워 북두칠성의 정기를 받던 유씨 처자는 양희수의 재취부인으로 들어가서 얼마 뒤 양사언을 낳았다. 아들을 낳겠다는 목적은 이루었으나 재취부인의 자식으로서는 현달할 수 없다는 걸 고민하던 유씨 부인은 양사언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와 남산 밑에 초가집을 짓고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임금이 야행을 나왔다가 갑자기 광풍과 폭우가 쏟아져 행차가 난처해졌다. 당황해하던 행차 일행은 마침 유씨부인의 초가집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비를 피했다. 유씨부인은 이를 예견이라도 한 듯이 임금에게 진수성찬을 올렸다. 그 집에서 어린 양사언의 범상치 않은 기골을 본 임금은 장래에 큰 인물이 될 거라 깨닫고 유씨 부인에게 양사언의 장래를 약속하고 궁궐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후 벼슬길에 오른 양사언은 금강산 등지를 돌아다니며 자연을 즐겼는데, 이로 인해 당대의 풍류인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전우치전에 따르면 단군의 옛 유적을 찾기 위해 산에 들어갔다가 화담 서경덕과 우사 전우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그는 서경덕으로부터 천기를 예언한 예언서들을 받아 간직하며 읽고 또 읽었으며, 한편으로는 유명한 예언가인 남사고로부터 천문과 역술을 배워 통달했다고 한다.



3.태산가 (泰山歌)

泰山雖高是亦山 태산수고시역산

登登不已有何難 등등불이유하난

世人不肯勞身力 세인부긍노신력

只道山高不可攀 지도산고불가반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山)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만은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4.평가

양사언은 비상한 천재인 데다가 노력을 거듭하여 읽지 않은 책이 없고, 모르는 것이 없었다고 전한다. 40년간 관직에 있으면서 다스린 고을은 8군데나 되었는데 단 한 가지의 부정이 없었고, 처자를 위해서 재산을 마련하지도 않았다고 전한다. 남사고(南師古)한테 배워 점도 잘 쳐 임진왜란을 예견하였고, 시(詩)는 작위(作爲)없이 천의무봉(天衣無縫)하고 기발하였다.

글씨는 해서(楷書)와 초서(草書) 다 같이 명필이었다. 안평대군(安平大君)·김구(金絿)·한호(韓濩)와 함께 조선 전기의 4대 서예가(명필)로 불린다. 문집으로 『봉래집(蓬萊集)』이 있고 가사(歌辭)로는 「미인별곡(美人別曲)」과 을묘왜란(乙卯倭亂) 때 군(軍)을 따라 전쟁에 나갔다가 지은 「남정가(南征歌)」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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