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

국제적십자위원회 창시자 장 앙리 뒤낭(Jean-Henri Dunant) 설명

올드코난 2016. 10. 3.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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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십자위원회(International Committee of the Red Cross)의 창시자이며 최초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인도주의자 장 앙리 뒤낭(Jean-Henri Dunant, 1828년 5월 8일 ~ 1910년 10월 30일)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 본다.


1. 어린 시절

장 앙리 뒤낭은 1828년 어머니 앙트와네트와 아버지 자크 뒤낭 사이에서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자크 뒤낭은 제네바 시의회에서 의원으로 활동했고 어머니는 종교개혁자 장 깔뱅을 존경하는 개신교 신자였다. 앙리의 부모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는데 자크 뒤낭은 소년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등 교도소 재소자들의 복지에 관심이 있었다. 앙리는 이런 부모에게 좋은 영향을 받으며 성장해 청소년기부터 환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구호하는 데 참여를 하게된다.


2. 사회 운동

어려서는 개신교였지만 나눔의 실천을 중시하는 개혁교회(Reformed)으로 전향했고, 1844년 영국 복음주의자들이 만든 기독교 사회운동 단체인 YMCA(기독교 청년연합회) 창설에 참가하기도 한다. 북아프리카의 알제리 지역주민들의 빈곤퇴치를 위한 제분회사(製粉會社)를 설립하기도 한다. 이 외에 많은 업적 중 아리의 가장 큰 업적은 역시나 적십자 창립이었다.


3. 적십자 창립

1858년 이탈리아 통일전쟁 때 제분회사의 수리권(水利權)을 얻기 위해 북이탈리아로 나폴레옹 3세를 찾아가던 길에 솔페리노 전투에서 생긴 수천의 부상자를 만나게 된다. 앙리는 국적에 구애받지 않는 구호활동에 참가하고 이때의 경험을 저서 솔페리노의 회상(1862년)에 실었다. 이 책에서 앙리 뒤낭은 전시의 부상자 구호를 위한 중립적 민간 국제기구 창설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유럽 각국으로부터 큰 호응을 받아 1863년 국제적십자위원회가 창설되었고 다음해인 1864년 정치, 종교, 이념의 중립성 유지, 국적에 구애받지 않는 구호활동을 원칙으로 하는 제네바 협약이 체결되었다. 1864년부터 뒤낭의 생일인 5월 8일을 적십자의 날로 정하여 지금도 기념하고 있다.


4. 말년과 최후

적십자활동을 하면서 전 재산을 모두 써버린 앙리 뒤낭은 1867년 고향인 제네바를 떠나 프랑스 파리에 이사해 글을 옮겨 적는 일을 한다. 1871년 프랑스와 독일간의 보불전쟁이 벌어지자 앙리는 프랑스 국방위원회의 보조를 받으면서 구호활동을 한다. 1892년에는 스위스출신 의사의 배려로 알프스가 보이는 양로원에서 지내다 1910년 별세한다. 오늘날 적십자의 날이 5울8일인 것은 그의 생일을 기리기 위함이다.

5. 평가

앙리는 전 생애에 걸쳐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주의자로 1901년 적십자 창설과 박애정신과 평화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제 1대 노벨 평화상을 받는 영광을 얻게 된다. 그의 삶은 반전과 인류애를 위한 실천의 삶이었으며, 당시 카톨릭의 유럽 대륙에서 종교를 넘어 존경을 받았다. 오늘잘 적십자는 사회적 약자와 전쟁터 등 전세계에 걸쳐 박애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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