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마지막 제국이었던 청나라 마지막 전성기였던 건륭제 후반 화신의 국정농단은 강대국 청나라의 멸망을 가속시켰다.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재물을 모았다는 간신 화신에 대해 정리해 본다.
1. 생애 초기
화신의 본명은 뉴호록화신(鈕祜祿和珅, 니오후루 허션 1750년 7월 1일 ~ 1799년 2월 22일)이다. 만주족 출신으로 원명은 선보(善保), 자는 치재(致齋)로 청의 팔기중 정홍기 사람이다. 머리가 뛰어나 어릴 때부터 만주어, 중국어, 몽골어, 티베트어등 4개 언어에 능통했다고 한다. 어릴 때 가세가 기울어져 형편이 어려워지자 직례총독인 풍영렴(馮英廉)에게 가 의탁하고 18살에 그의 손녀와 혼인한다.
2. 건륭제의 지나친 총애
화신은 금군의 삼등시위(三等侍衛)가 되어 건륭제를 호위하다 눈에 띄고 건륭제의 총애를 얻게 되면서 도통(都統)으로 승진하고 27세인 1776년 나라의 국고를 책임지는 호부의 부책임자 호부시랑이 되고 32세인 1781년에는 2품관인 호부상서로 고속 승진한다. 특히 건륭제와 화신은 라마교 신도였기에 건륭제는 화신을 더욱 신뢰하게 된다. 여기에 화신은 머리회전이 빠르고 업무 능력도 있었기 때문에 건륭제의 신임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 등으로 이부상서, 병부상서, 형부상서 등 6부의 상서를 모두 지내고 국자감 교장, 내무부총관 등을 거친후 30대 후반에 재상인 문화전대학사(文和殿大學士) 겸 군기대신이 되고 40대에 정황기의 영시위내대신(領侍衛內大臣), 사실상의 수상인 수석군기대신(首席軍機大臣)에 이르며 조정에 막강한 권력과 영향을 가지게 된다. 여기에 1789년 아들 풍신은덕이 건륭제의 막내딸 고륜화효공주와 혼인해 건륭제와 사돈까지 되면서 감히 화신에 맞서는 자가 없게 된다.
3. 간신이 된 배경
이런 과한 승진은 화신을 오만방자하게 만들었고 욕심을 키우게 되는데 이때 지방 관리들에게 뇌물을 받기 시작하는데 정차 그 액수가 늘어났고, 뇌물의 액수가 커질수록 정치는 부패해져갔고 상소를 가로채 건륭제의 눈과 귀를 가리는 등 건륭제 집권 말기 실질적인 청나라의 권력자는 화신이었다. 이 모든 원인은 건륭제에게 있었다. 황제 재위 기간이 길어지면서 판단력을 잃어가면서 화신에게 더욱 의존하면서 화신의 권세는 누구도 막지 못할 만큼 막강해졌다. 사실상 황제였던 것이다. 그리고 화신의 본성이 탐욕이 많다고는 하지만 건륭제는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능력은 있던 화신을 적절히 쓸수만 있었다면 화신은 간신이 아니라 유능한 인재로 남을 수도 있었지만 건륭제는 능력 이상의 대우를 해주었고, 화신의 죄까지 묵인해 주면서 화신에게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화신이 간신이 된 배경에는 건륭제의 책임이 매우 크다 할 것이다.
4. 몰락과 최후
1795년 건륭제는 강희제보다 더 재위에 있을 수 없다며 가경제에 양위하고 상황으로 물러가지만 실권은 건륭제에게 있기에 화신은 권세는 여전히 막강했다. 그리고 권세만큼 화신의 탐욕은 끝이 없었고, 청나라 조정은 화신을 탄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고 가경제는 화신을 파직하려 했지만 건륭제의 비호로 실패한다. 화신의 몰락은 1799년 건륭제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화신이 권세를 누른 배경에는 건륭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건륭제가 죽자 화신의 운명은 이미 결정이 된 것이다.
화신에게 사적인 감정도 있던 가경제는 얼마후 화신을 파직하고 20개의 죄목을 발표한다. 이어 화신의 가족을 모두 잡아들이고 화신의 재산을 몰수하여 국고로 환수한다. 가경제는 화신에게 능지형을 내리려 했지만 화신의 며느리 고륜화효공주가 간곡히 청해 자진을 명하는데 1799년 2월 22일 건륭제 사후 보름 뒤 화신은 하얀 비단으로 목을 매 자진하는데 그때 나이 50세였다.
5. 사후
화신이 자진한 후 가경제는 화신의 나머지 죄를 묻지 않는다는 대사령을 발표하고 매듭지었는데 그 이유는 화신의 재산때문이었다. 가경제가 몰수한 화신의 재산은 16억 냥이상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청나라 국가 총예산 7천만냥의 20년 치를 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국가 예산의 20분의1만 되어도 엄청나다는 말이 나올텐데 20배였다니.
그런데 웃기는 것은 가경제가 이 돈을 국가 재산이 아닌 자신의 내탕금으로 가져갔던 것이다. 이에 대해 “화신이 죽으니 가경제가 배불리 먹었다”(和珅跌倒嘉慶吃飽)며 이를 비꼬았다. 만일 가경제가 이 돈을 국고에 환수했어도, 그리고 그런 도량을 가진 황제였다면 어쩌면 청나라는 이때 바로 설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경제는 자신의 탐욕을 채우고 말았다.
6. 평가
화신은 대부분의 간신들이 그러하듯이 단 한사람 건륭제(乾隆帝)의 비위만을 맞추며 살았다. 분명 그는 능력은 있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아부를 잘하고 비위를 잘 맞춘다고 해도 무능했다면 건륭제에게 이런 총애를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똑똑한 머리를 가진 화신을 유능하게 썼다면 국가에 큰 도움을 주었겠지만, 그러지를 못했다는 것은 건륭제(乾隆帝)가 과연 유능한 황제였는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 나라를 망하게 만드는 것은 간신 하나면 충분하다고 하는데, 간신이 설치는 가장 큰 이유는 무능한 왕(황제) 때문이다. 건륭제는 분명 유능했지만 능력이상을 과신했고, 이런 과시욕은 오히려 자신의 능력을 부족하게 만들었으니 건륭제는 무능한 황제가 아니었을까.
화신이라는 희대의 간신을 배출한 건륭제 재위기간은 청나라 번영을 끝내고 망국의 조짐들을 보이게 되고 이후 100년간 청나가 망할때까지 다시는 전성기 시절의 청나라의 모습은 찾을 수 없게 된다. 이 모든 책임을 화신에게 돌릴 것인지 건륭제(乾隆帝)가 짊어져야 할 것인지 묻는다면 나는 건륭제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할 것이다. 화신은 건륭제가 키웠다. 차지철을 키운 박정희, 그리고 최순실을 키운 박근혜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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