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중국

항우의 반격과 유방의 위기

올드코난 2015. 12. 19.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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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유방이 공격의 방향을 항우가 있는 동쪽으로 향하자 크게 노한 항우가 정창(鄭昌)을 한왕(韓王)에 임명해 유방의 공격을 막게 했다. 그러자 유방은 시간을 벌기 위해 장량을 항왕에게 보내 원래 약조대로 관중을 얻을 수 있게 해주면 즉시 동쪽으로의 진격을 멈추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항우의 처사에 불만을 품은 조(趙)나라와 제(齊)나라가 손을 맞잡고 초나라에 반기를 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항우도 마지못해 수락하고 북쪽으로 올라가 제나라와 교전했다. 이때 항우가 구강왕(九江王) 경포(黥布)의 군대를 징발했으나 경포는 정세를 관망하기 위해 병을 핑계대고 나오지 않았다. 이 일 때문에 항우는 경포를 크게 원망하게 된다.


한편 한나라 다섯 제후의 연합 군이 초나라의 도읍인 팽성(彭城)에 진입했다. 당시 항우는 제나라와 전투를 치르기 위해 마침 도성을 비운 상태였기에 쉽게 승리를 차지해 버렸고 이는 오히려 장수와 병사들의 긴장을 풀어 버리게 된다. 한군(漢軍)은 한신 등 몇몇 장수들을 제외하고 마치 세상을 다 얻은 듯이 방탕해져 연일 술잔치로 날을 보냈다.


하지만 곧 항우가 이끄는 초나라 정예 병력들의 기습을 한다. 죽음을 각오하고 새벽부터 달려드는 초나라 군사들에게 군기 빠진 한군은 애초 적수가 되지 못했다. 정오 무렵 초군의 공세에 밀린 한군이 크게 패했다. 당시 도망치다 죽은 한나라 병사들이 무려 10만여 명에 달했다. 당시 한군(漢軍)의 사상자가 워낙 많아 강물이 막혀 흐르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때 초군이 한왕을 겹겹이 포위한 순간 갑자기 서북쪽에서 큰 바람이 일더니 사방이 칠흑처럼 어두워지면서 초군을 향해 불어왔다. 유방은 이 틈을 이용해 가까스로 수십 기의 병사와 함께 도망칠 수 있었다. 원래 유방의 계획은 자신의 고향인 패현에 가서 가족들을 데려가려 했으나 초군도 사람을 보내 유방의 가족들을 추격했다. 유방은 도중에 우연히 만난 아들 혜(惠 훗날의 혜제)와 딸인 노원 공주를 수레에 태우고 길을 재촉했다.

초나라 기병이 뒤를 쫓자 다급해진 유방은 자기 목숨이라도 살리려는 심정에 두 자식들을 수레 아래로 밀쳐버렸다. 하지만 수레를 몰던 하후영(夏候嬰)이 수레를 멈춘 후 다시 이들을 태우길 3차례나 반복했다. 우여곡절 끝에 유방은 위급한 순간을 간신히 모면할 수 있었고 적군의 추격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한편 유방의 부친인 태공(太公)과 아내는 이미 초나라 군사들의 포로가 되었다. 항우는 이들을 군중에 억류한 채 인질로 삼았다.


이로인해 이전까지 한나라로 기울던 제후들은 한군이 크게 패하는 것을 보고는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거나 유방을 배신하고 초왕 항우에게 복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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