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중국

홍문(鴻門)의 위기

올드코난 2015. 12. 19.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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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가 함곡관(函谷關)에 도착했지만 유방이 이미 함양을 함락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화가 난 항우는 병사들에게 함곡관을 공격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마침내 관내에 들어간 항우가 희수(戱水) 서쪽에 이르자 유방은 패상(覇上 지금의 서안시 동남쪽)에 주둔했다. 이때 유방의 좌사마(左司馬) 조무상(趙無傷)이 항우에게 유방이 관중의 왕이 되어 진귀한 보물을 다 차지하려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 말에 크게 노한 항우는 유방의 군대와 일전을 벌여 격파하리라 다짐했다. 당시 항우의 병사는 40만으로 신풍(新豊 지금의 섬서성 임동현)과 홍문(鴻門 산언덕 이름)에 주둔해 있었고, 유방의 10만 병사들은 패상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므로 직접 전쟁을 치른다면 유방에게 극히 불리한 상황이었다. 

이때 범증이 항우에게 권고했다.

"패공이 산동에 있을 때는 재화를 탐하고 미색을 좋아했는데 지금 관내에 들어가서는 재물을 취하지 아니하고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으니 이는 그의 뜻이 작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사람을 시켜 그의 기(氣)를 살펴보게 했더니 모두 용과 범의 기세로 오색 찬연하니 이는 천자(天子)의 기세입니다. 빨리 공격하여 기회를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범증과는 달리 초나라 좌윤(左尹)이자 항우의 숙부인 항백(項伯)은 유후(留侯) 장량(張良)과 아주 친했는데 과거 항백이 진(秦)나라에서 사람을 죽여 위험에 처했을 때 장량의 도움으로 살아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항우가 유방을 공격하면 장량도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안 항백은 장량을 살리기 위해 한밤중에 유방의 군영을 찾아가 장량에게 유방을 버리고 살길을 도모하라고 권고했지만 장량은 그렇게 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고 거부하며 곧장 유방에게 사실을 알렸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한 유방이 장량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묻자 장량은 "항백에게 패공께서는 감히 항왕(項王)을 배반하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십시오."라고 대답했다. 유방은 항백의 나이가 장량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를 형님으로 칭하면서 깍듯이 모셨다.

그러면서 "나는 관내(關內)에 들어와 터럭만한 물건도 감히 건드리지 않았으며 아전과 백성들의 호적을 정리하고 창고를 잘 관리하며 항장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장수를 보내 관을 지키게 한 것은 혹시라도 다른 도적의 침입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밤낮으로 장군께서 오시기만을 바라고 있었는데 제가 어찌 반역을 하겠습니까? 원컨대 신이 감히 배은망덕하지 않았다는 것을 상세히 말씀드려주십시오."라고 말했다.


항백은 그렇다면 내일 아침 일찍 항왕께 사죄하러 오라는 조건을 달고 유방의 부탁을 수락했다. 그날 밤으로 군영에 돌아온 항백은 항우에게 유방이 한 말을 낱낱이 보고했다. 그러면서 "패공이 먼저 관중을 공략하지 않았다면 공께서 어찌 들어오실 수 있겠습니까? 지금 그가 큰 공을 세웠음에도 공격하려 하신다면 이는 의롭지 못한 일입니다. 부디 잘 대우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자 항왕이 이를 허락했다.


이튿날 아침 유방이 백여 기를 대동하고 항왕을 찾아가 사죄하며 말했다.

"신은 장군과 더불어 사력을 다해 진나라를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본의 아니게 먼저 진나라에 진입하여 진나라를 무찌르고 이곳에서 다시 장군을 뵐 수 있게 되었는데 지금 소인배들의 참언 때문에 틈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에 항우가 대답했다. "이는 패공의 좌사마 조무상이 한 말이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했겠소." 항우는 그러면서 저녁에 술이나 함께 하자면서 패공을 군영에 머무르게 했다.


이날 밤 술자리에는 항우와 항백, 범증이 함께 했고 유방과 장량이 함께 앉았다. 범증이 여러 차례 항우에게 눈짓을 보내면서 옥결(玉玦 허리에 차는 옥)을 들어 유방을 죽일 것을 암시했으나 항왕이 응낙하지 않았다. 초조해진 범증이 밖으로 나와 항우의 사촌 동생인 항장(項莊)을 불러 칼춤을 추는 것처럼 하다가 유방을 살해하도록 시켰다.


범증의 사주를 받은 항장이 들어와 "군왕과 패공께서 주연(酒宴)을 여시는데 군중(軍中)에 취흥을 돋울 만한 것이 없는지라 소장이 검무(劍舞)를 추고자 합니다."라고 말했다. 항우가 이를 허락하자 항장이 검을 뽑아들고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항장의 칼끝이 유방을 노리고 있음을 눈치 챈 항백이 칼을 꺼내 들고 나와 같이 검무를 추면서 패공을 감싸면서 공격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장량이 군문(軍門) 앞에서 번쾌(樊噲)를 만나 다급한 상황을 알리자 번쾌가 검을 차고 뛰어들었다. 중도에 자신을 가로막는 호위병들을 넘어뜨린 후 군막에 뛰어 들어간 번쾌가 두 눈을 부릅뜨며 항우을 노려보았다.

항우가 무릎을 세우고 검을 만지작거리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면서 물었다. "대체 무엇을 하는 자인가?" 옆에 있던 장량이 "패공의 호위병인 번쾌라고 합니다."라고 대신 대답했다. 번쾌의 용감한 행동에 대해 항우는 장사라고 칭하며 술 한 잔을 권했다. 번쾌는 항왕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는 선 채로 큰 잔을 비워버렸다. 그리고는 유방의 억울한 사정을 호소했다.

자신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항우에게 아무런 응답이 없자 번쾌 역시 자리를 함께 했다. 유방은 이 틈에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군막을 빠져나왔다. 다급해진 유방은 뒷수습을 장량에게 맡기고 수레와 말도 버린 채 네 사람만 대동하고 샛길을 통해 패상으로 달아났다.


유방이 탈출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장량이 항우에게 나아가 "패공께서 술 기운을 이기지 못해 하직인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대신 신 장량으로 하여금 백벽(白璧) 한 쌍을 대왕께 바치게 하고 또 옥으로 만든 술잔 한 쌍을 아부(亞父 범증을 말함)께 바치게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항우가 유방의 행방을 묻자 장량은 지금쯤이면 이미 군영에 도달했을 거라고 대답했다. 항우는 별다른 대꾸 없이 구슬을 받아 자리에 두었으나 범증은 화가 나서 옥 술잔을 깨뜨리고는 탄식하며 말했다. "애송이하고는 천하 대사를 도모할 수 없구나. 항왕의 천하를 빼앗는 자는 분명 패공일 것이다. 우리는 이제 그의 포로가 될 것이다."

한편 유방은 군영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을 배신한 조무상을 찾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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