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회왕은 누구든지 함곡관(函谷關)에 먼저 진입해 관중을 평정하는 사람을 관중의 왕으로 삼겠노라고 약속한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진나라의 병력이 막강했기 때문에 직접 진군과 맞서 승리할 자신이 없었던 여러 장수들은 서로 눈치만 보면서 먼저 진군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단 숙부 항량의 전사에 분노한 항우와 건달 출신으로 두려움이 없었던 유방만이 함곡관으로 진격하고자 했다.
회왕이 초나라의 여러 원로 장수들에게 누구를 서정 책임자로 정할지 묻자 신하가 이렇게 답했다.
"항우는 사람됨이 성급하고 사나우며 남을 잘 해칩니다. 일찍이 양성을 공략했을 때 한사람도 남기지 않고 다 생매장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지나가는 곳은 어디나 무참히 섬멸 당하곤 합니다. 그러니 차라리 덕망 있고 관대한 사람을 보내 인의를 베풀면서 서쪽으로 진격하게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성급하고 사나운 항우보다는 덕망 있고 관대한 유방을 보내 진나라 민심을 다독이는 것이 좋겠다는 말로 내심 항우를 경계하던 초회왕은 이 의견을 받아들여 유방에게 서쪽 공략을 맡겼던 것이다.
회왕의 명을 받든 유방이 군사들을 이끌고 서진할 때 고양(高陽) 지방에서 관문을 지키던 역이기(酈食其)란 자가 찾아왔다. 그는 "이곳을 지나간 장수들이 많이 있었지만 오늘 패공을 뵈니 과연 도량이 크고 관대하신 분입니다"라고 하면서 패공을 만나 유세(遊說)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청했다. 유방은 이를 허락했다.
역이기와 처음 만날 때 유방은 마침 침상에 걸터앉아 두 여자를 시켜 발을 씻고 있었다. 당시 예법에 손님을 청해놓고 그 앞에서 발을 씻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상대방을 심하게 모욕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화가 난 역이기가 유방에게 절을 올리는 대신 길게 읍(揖)을 한 후 정색하며 한마디 했다. "족하(足下)께서 반드시 포악무도한 진을 토벌하시고자 한다면 걸터앉은 채 장자를 접견하셔서는 안 됩니다."
본래 공부하는 유생이라면 얕잡아보던 유방이었지만 역이기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자 일어나서 옷을 여미며 사죄하고 그를 상좌에 앉혔다. 유방의 환대에 감동한 역이기는 유방에게 진류(陳留)를 습격해 진나라 군사들의 비축 양식을 얻으라고 권했다. 유방은 그의 말이 좋다고 여겨 진류를 공격해 진군의 양식을 취했다. 이후 유방은 백마(白馬), 곡우(曲遇), 영양(穎陽)에서 진군과 맞서 싸워 잇따라 진군을 물리쳤고 장량(張良)의 도움을 받아 험준하기로 유명한 한(韓)나라의 환원(轘轅)을 공략했다.
이처럼 유방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수하에 많은 유능한 인재들이 포진해있었고, 유방이 이들의 말을 잘 듣고 행동으로 옮겼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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