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중국

유방의 젊은 시절과 관상

올드코난 2015. 12. 7.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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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시절 유방은 다른 사람들과 사귀는 것을 좋아했고 늘 남에게 베풀기를 즐겨 도량이 넓었다. 평소 원대한 포부를 지녔던 그는 일반 백성들이 하던 힘든 농사일이나 작업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유방은 사람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놀기 좋아하는 백수건달이었다.


1. 착실했던 형 유중

당시 유방의 모습을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유방에게는 유중(劉仲)이란 바로 손위의 형이 있었는데 그는 유방과는 달리 착실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유방은 늘 형과 비교되곤 했다. 태공은 유방에게 "너는 재주가 없어 생업도 꾸려나가지 못할 처지임에도 왜 늘 형처럼 노력하지 않느냐?"라고 탓하곤 했다. 이것이 한에 맺혔던지 유방이 나중에 황제가 된 후 태상황으로 추대된 부친을 축수하며 자신과 형인 유중 중에서 누가 더 큰 업적을 쌓았는지 공개적으로 비교해보라며 질문한 적이 있다.


2. 유방의 포부

한편 유방의 큰 포부를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일찍이 진나라 수도인 함양(咸陽)에 불려가 부역(賦役)할 때의 일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불려가 일을 하던 유방이 우연히 진시황의 행차를 보게 되었다. 이때 유방은 "대장부란 마땅히 저래야 한다!"라고 탄식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당시 범부가 황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아주 위험천만한 행동이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고개도 쳐들지 못하고 주눅이 들었을 테지만 애초 겁이라고는 별로 없었던 유방은 자신도 진시황처럼 천자가 되어 천하를 종횡하고 싶다는 소망을 솔직하게 내뱉은 것이다.


3.하급 관직 정장이 된 유방

성년이 된 후 두루두루 원만한 성격과 좀 거만하긴 하지만 남에게 잘 대해주어 인기가 좋았던 유방은 여러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 사수정(泗水亭)의 정장(亭長)이 되었다. 정장이란 진나라 통치구조에서 군(郡)-현(縣) 아래에 위치한 최 말단의 조직으로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시골 이장이나 면장쯤에 해당한다. 비록 하급 관리이긴 했지만 남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는 유방에게는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격이었다.

유방은 이때 술을 몹시 좋아해 늘 술에 취해 다녔으며 관아의 관리들도 우습게 알았다. 주점에 가면 늘 외상으로 술을 마셨고 술에 취하면 아무데나 드러눕곤 했다. 하지만 유방이 오는 날이면 평소보다 매상이 몇 배로 올랐기 때문인지 주점 주인은 그에게 따로 돈을 받지 않았다.


4.여공(呂公)의 딸과 결혼

패현(沛縣) 현령과 친분이 두터웠던 여공(呂公)이 때마침 원수를 피해 현령의 식객이 되어 패현에 거주하고 있었다. 당시 패현은 변방의 작은 현에 불과했고 여공은 과거 위나라의 수도였던 대량(大梁)에서 온 손님이었다. 외지에서 현령의 귀한 손님이 오셨다는 말을 들은 패현의 여러 인사들이 모두들 여공에게 인사를 드리러 왔다. 당시 풍습에 귀한 손님을 맞을 때는 예물을 드리는 관례가 있었다. 마침 현의 관리로 있던 소하(蕭何)가 예물을 관리하고 있었다. 워낙 많은 인사들이 찾아온 까닭에 소하는 "진상한 예물이 천냥 이하인 사람은 당하(堂下)에 앉도록" 했다. 이때 정장의 신분으로 참석했던 유방은 한 푼도 없는 주제에 거짓으로 "하례금 일만냥"이란 명자(名刺 성명과 예물의 내용을 적는 쪽지)를 적어보냈다. 이것을 본 여공은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까지 걸어나와 유방을 맞았다.

여공은 평소 관상을 즐겨보았는데 유방의 특이한 생김새를 보고는 더욱 공경하며 그를 상석에 앉혔다. 평소처럼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조금도 사양하지 않는 유방의 건방진 모습에 모두들 눈살을 찌푸렸지만 여공은 오히려 그런 유방이 더 마음에 들었다. 연회가 끝난 후 여공은 따로 유방을 남긴 후 뜻밖의 제안을 했다.

"저는 어려서부터 관상보기를 좋아해 여러 사람들의 상을 보았지만 당신처럼 좋은 상은 없었소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좀 자중(自重)하시기 바라며 제게 여식이 하나 있으니 배필로 삼아주셨으면 합니다."

사실 이때 유방은 이미 조씨 성을 가진 여인과 결혼해 아들까지 두고 있었다. 여공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귀한 딸을 유방의 후처로 보내는 셈이 된다.

나중에 이 말을 전해들은 여공의 아내가 화를 내면서 심하게 반대했지만 여공은 아녀자가 알바가 아니라는 말로 일축해버렸다. 결국 여공은 자신의 뜻대로 딸을 유방에게 시집보냈다. 이 여인이 바로 훗날 아들을 대신해 권력을 휘두른 여후(呂后)이다.


5. 유방의 관상에 대한 일화

유방의 특이한 생김새에 대해서는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유방이 정장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한번은 유방이 휴가를 얻어 시골집에 돌아와 있는데 부인 여 씨가 두 남매를 데리고 밭에서 김을 매고 있었다. 이때 마침 길을 가던 한 노인이 마실 물을 달라고 청했다. 여 씨가 먹을 것을 주자 노인이 그녀의 관상을 자세히 보더니 말했다. "부인은 천하의 귀인이 되실 상을 지녔습니다." 그러자 호기심이 발동한 여 씨는 두 아이들을 데려다 관상을 보게 했다.

노인이 아들 혜(훗날의 혜제)를 보더니 "부인이 귀하게 되시는 것은 바로 이 아이 때문입니다."라고 말했고 딸(훗날의 노원공주)을 보더니 역시 귀한 상이라고 평가했다.

노인이 떠난 후에 집에 돌아와 이 이야기를 들은 유방은 자신의 관상이 어떤지 궁금해 부리나케 노인의 뒤를 쫓아갔다. 결국 노인을 만난 유방이 자신의 관상에 대해 묻자 그 노인은 "조금 전에 부인과 아이들의 관상을 보았는데 모두 당신을 닮았습니다. 당신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한 상입니다."라고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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