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나라는 항량이 만들었고 스스로 무신군(武信君)을 칭하며 조정의 대소사를 주관했었다. 초회왕(楚懷王)을 옹립하고 어느 정도 국가의 체제를 정비한 항량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항보(亢父 지금의 산동성 제녕시)를 공격했다. 그는 제(齊)나라의 전영(田榮), 사마용저(司馬龍且)의 부대와 연합해 동아(東阿)에서 진(秦)나라 군대를 대파했다.
항량은 이 기세를 모아 계속 진군(秦軍)을 추격해 서쪽으로 진격할 것을 촉구했으나 제나라는 고질적인 내분에 휩싸여 더 이상 진군할 의사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항량은 유방과 항우에게 각각 군사를 거느리고 서쪽으로 진격하게 했다. 유방과 항우가 나서서 성양(城陽)을 전멸시키고, 복양(濮陽) 동쪽에서 진군을 격파하며 수차례 전과를 올리자 항량은 점차 진나라를 경시하고 교만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송의(宋義)가 항량에게 건의했다.
"싸움에서 이겼다고 장수가 교만해지고 병사들이 나태해진다면 반드시 패하고 맙니다. 지금 병사들이 다소 나태해지고 있지만 진군은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교만해진 항량은 그의 충고를 무시하고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때 항량은 송의를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송의가 제나라로 가던 도중 제나라 사신 고릉군 현(顯)을 만났다. 송의가 고릉군에게 말했다.
"공께서는 무신군(武信君 항량)을 만나려 하십니까?"
"그렇소이다."
"신이 생각하건대 무신군의 군사는 반드시 패할 것입니다. 공께서 천천히 가신다면 죽임을 면할 수 있겠지만 급히 가신다면 화를 당하실 수 있습니다."
과연 송의의 예측대로 진나라에서 모든 군사를 모아 장함을 지원하자 장함은 정도(定陶 산동성 정도현)에서 초군을 공격해 크게 무찔렀다. 이 와중에 항량도 전사했다. 항량이라고 하는 듬직한 지휘관을 잃고 우왕좌왕하던 초나라 군사들은 동쪽으로 물러나 팽성 주변에 진을 치게 된다.
이때 유방과 항우는 마침 진류(陳留)를 공격하고 있었다. 항량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자 진상의 부장으로 있다가 나중에 항량에게 귀속된 여신(呂臣) 장군과 함께 군사들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물러났다. 여신의 부대는 팽성(彭城) 동쪽, 항우의 부대는 팽성 서쪽에 주둔했으며, 유방의 군대는 탕현(碭縣)에 주둔했다.
한편 항량의 전사 소식을 들은 초회왕은 몹시 두려워하면서 도읍을 우이에서 팽성으로 옮기고 여신, 항우의 군대를 합쳐 자신이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자 했다. 또 유방에게 탕군 태수와 무안후(武安侯)를 봉해 탕군 지역의 군대를 거느리게 했다. 이때 항우 역시 장안후(長安侯)에 봉해졌고 여신이 사도(司徒)가 되었으며 여신의 부친인 여청(呂靑)이 재상인 영윤(令尹)이 되었다. 회왕은 과거 항량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었던 권력을 유방과, 여신 부자, 항우에게 각기 나눠주어 항우를 견제한 것이다. 항우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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