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중국

유방의 함양 입성

올드코난 2015. 12. 1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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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 유방의 책사가 된 역이기(酈食其)의 계책으로 무혈로 진류(陳留)을 얻게 되고 진군해 개봉(開封)을 공락하고 한에 들러서 소수 병력으로 고전하던 한의 왕성과 장량을 구원하고 진군을 내쫓아 한을 재건했고 그 은의를 내세워 장량을 객장(客將)으로서 빌린다. 나아가 남양(南陽)을 공략하고 성주가 도망치고 없는 완[宛, 지금의 하남 성河南省 남양南陽]을 포위해 항복시키는 등 진군 속도가 항우보다 빨랐다. 이유는 유방은 항복한 성주에게 관용을 베풀어 불필요한 소모전을 막았기 때문이다.


유방은 관중 남부 관문인 무관(武關)까지 이르렀고 이 무렵 항우도 조에서 진군 주력을 격파했고 진 내부는 크게 동요했다. 시황제 사후 2세 황제를 내세워 전권을 장악한 환관 조고(趙高)는 패전 사실이 발각되면 자신이 책임질까 두려워 2세 황제호해를 죽이고 기원전 207년에 이르러 유방에게 관중을 둘로 나누어 각자 왕이 되자는 밀서를 보내 왔지만, 이를 가짜라고 판단한 유방은 군을 대동하고 무관의 수비대장을 장량의 계책을 써서 속이고 쳐서 돌파했다.


요관(嶢關)은 진의 마지막 요새로서 죽음을 각오한 군사가 지키고 있었지만, 그 수비대장이 상인 출신으로 계산하는 성격이라는 사실을 이용한 장량의 계책으로, 많은 기치를 세워서 대병력이 온 듯이 꾸며 항복을 권했다. 이 계책은 성공하여 수비대장은 항복을 약속했지만, 유방의 군은 성에 들어오자마자 불시에 수비대를 공격해 제압하고 요관을 돌파했다.


진왕 자영(子嬰, 진 마지막 황제)은 패상(覇上)까지 진군한 유방의 앞에 백의에 목에 끈을 묶은 모습으로 나타나서 황제의 증거인 옥새를 바치면서 항복한다. 부하들은 자영을 죽여야 한다고 외쳤지만 유방은 이를 듣지 않고 자영의 목숨을 보증했다. 함양에 입성한 유방은 궁전 내의 여자와 금은보화에 눈이 멀어 오래 머무르며 즐기고 싶었지만 번쾌나 장량의 간언으로 패상으로 물러났다. 시골 한량이었던 유방에게 함양의 재보와 후궁의 여자들은 극락으로까지 여겨졌지만, 부하의 충고에 일절 손을 대지 않았다. 이런 태도는 훗날 유방이 민심을 얻게 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그리고 패공은 진나라 백성들 중 덕망 있고 명망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대들은 그동안 진나라의 가혹한 법령에 오랫동안 시달려왔다. 앞으로는 내가 관중의 왕이 될 것이다. 그대들에게 3가지 법령만을 약정하고자 한다.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하고, 사람을 다치게 한 자와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그 죄에 따라 처벌할 것이다. 진나라의 모든 법령은 다 폐지하며 관리와 백성들은 이전처럼 편안히 생활하게 될 것이다. 내가 지금 패상으로 물러나 있는 이유는 단지 제후들이 오기를 기다려 조약을 맺기 위한 것이다."

유방이 약조한 세 가지 법률을 공약삼장이라고 한다. 이후 유방은 각지에 사람들을 파견해 진나라 관리들과 함께 모든 현, 향, 읍을 다니며 이 사실을 알리게 했다. 진나라 백성들은 이 소식을 듣고 모두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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