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중국

의제를 죽이고 민심을 잃은 항우

올드코난 2015. 12. 1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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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06년 4월이 되자 함양에 머물던 각국 제후들은 각기 병사들을 해산해 봉국(封國)으로 돌아갔다. 항우 역시 초나라로 돌아갔다. 항우는 의제에게 사자를 보내 천도를 강요했다. 표면적인 구실은 원래 제왕의 거처는 강의 상류에 위치해야 한다는 것이었으나 속내는 따로 있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챈 의제의 신하들이 점차 의제를 배반하고 항우에게 붙었다. 의제가 거추장스러워진 항우는 몰래 손을 써서 형산왕, 임강왕에게 알려 장강(長江) 가운데서 의제를 살해하게 했다. 항우 입장에서 볼 때 의제는 자신이 세운 허수아비 황제였지만 언제부턴가 자신의 행동에 제약을 가해오자 천하 패권을 차지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의제를 그대로 둔다면 자신이 실권은 있을지언정 명실상부하 패왕이 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이런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하지만 항우의 이런 행동은 천하 민심을 잃게 된 큰 실책 중 하나였다. 나중에 의제 암살에 관련된 경포가 항우를 저버린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평소 언행과는 달리 자신의 옛 주군조차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는 항우의 모습은 경포로 하여금 신뢰할 수 없게 했다. 항우는 자신의 실력만 믿고 애초의 대의명분을 저버렸으며 이는 이후 초한(楚漢)간의 경쟁에서 불리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한편 원래 한왕(韓王)이었던 성(成)은 유방을 도와준 관계로 항우의 눈 밖에 났는데 전공(戰功)이 없다는 구실로 왕위를 폐하고 후(侯)로 삼았다가 얼마 뒤에 죽여 버렸다.

항우는 또 원래 제왕(齊王)이었던 전불(田巿)을 교동왕(膠東王)으로 옮기게 하고 제나라의 실력자 전영(田榮)을 무시한 채 제나라 장수 전도(田都)를 제왕(齊王)으로 삼아 임치(臨菑)에 도읍하게 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전영이 반란을 일으키자 전도는 초나라로 도망갔고 전불은 항우가 두려워 마지못해 교동왕에 올랐다. 전영이 그를 쫓아가 살해한 후 스스로 제왕(齊王)에 올랐고 뒤이어 제북왕(齊北王) 전안(田安)마저 죽이고 3제(三齊)를 통일했다.


이외에도 원래 조왕(趙王)이었던 헐(歇)을 대(代)로 옮겨 대왕(代王)으로 삼고 그의 신하인 장이를 조나라 왕에 봉하자 항우의 처사에 불만을 품은 진여(陳餘)가 전영과 손잡고 항우에게 반기를 들었다. 이들은 상산을 공격해 장이를 무찌르고 헐을 모셔와 다시 조왕으로 삼았다.


이런 혼란의 배후에는 애초 자신과의 친소관계에 따라 제멋대로 분봉한 항우의 불공평한 논공행상이 있었다. 하지만 이중에서도 가장 억울한 사람을 꼽자면 당연히 유방이었다. 애초 회왕의 약속에 따르면 관중에 먼저 진입한 사람이 관중 땅을 차지해야 했지만 마치 유배된 듯 궁벽한 파, 촉 땅을 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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