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과 항우에 중립을 지키고 있던 팽월(彭越)이 나섰다. 팽월은 항우의 성격으로 보아 한(漢)이 무너지면 자신도 무사하지 못하리라 여겨 황하를 건넌 후 동아(東阿)에서 초군을 공격했다. 초나라 장수가 전사하고 전황이 불리해지자 항우가 직접 나서 팽월을 공격했다.
한편, 유방은 승승장구하던 한신(韓信)의 군대를 빼앗은 후 황하를 건너 성고를 재탈환하고 광무(廣武)에 주둔했다. 항우 역시 팽월을 물리친 후 다시 광무에 진을 치고 한군과 수개월간 대치했다.
이때 팽월이 여러 차례 양(梁) 땅에서 교란하며 초군의 보급로를 끊어버리자 항우가 이를 걱정했다. 다급해진 항우는 빨리 전쟁을 끝내고 싶은 마음에 인질로 잡고 있던 유방의 부친을 삶아 죽이겠다며 유방을 협박했다.
하지만유방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뻔뻔하게 대꾸했다. "전에 회왕(懷王)의 신하로 있을 때 그대와 내가 형제가 되기로 약속했으니 내 아버지는 곧 그대의 아버지이다. 그대가 아비를 반드시 삶겠다면 내게도 국 한 그릇을 나눠주기 바란다."
항우가 노하여 태공을 죽이려 하자 항백이 만류했다. "천하의 일이란 아직 알 수 없으며 또한 천하를 도모하는 자는 자신의 집을 돌보지 않는 법입니다. 그를 죽인다고 한들 유익함이 없고 그저 화를 더하게 될 뿐입니다." 이에 태공을 살려주었다.
유방과 항우가 오랫동안 대치하면서 결판을 내지 못하자 장정들은 군역(軍役)에 시달리고 노약자들은 물자 운반에 지쳐버려 모두들 어서 빨리 전쟁이 끝나길 학수고대했다.
항우가 유방에게 "천하가 여러 해 동안 혼란스러운 것은 오직 우리 두 사람 때문이다. 애꿎은 천하 백성들을 고달프게 하지 말고 그대와 내가 자웅을 겨뤄보자."며 맞대결을 제안했지만 이런 잔꾀에 넘어갈 유방이 아니었다. 유방은 "내 차라리 지혜를 겨룰지언정 힘을 다툴 수는 없다"면서 거절했다.
한번은 항우가 장수를 보내 한군에 싸움을 걸게 하자 한군에서 명사수로 유명한 누번(樓煩)이 나타나 오는 족족 활로 쏘아 죽였다. 자신의 장수가 세 차례나 누번의 화살에 쓰러지자 크게 노한 항우가 직접 갑옷을 입고 전투에 나섰다. 누번이 활을 쏘려고 하다가 눈을 부릅뜨고 크게 꾸짖는 항우의 소리에 놀라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진지 속으로 되돌아 온 후 다시 나오지 못했다.
또 한번은 양측이 광무산 골짜기에서 마주보며 설전을 벌였다. 유방이 항우의 죄목을 일일이 열거하며 화를 돋우자 항우가 숨겨 놓았던 쇠뇌를 쏘아 유방을 맞혔다. 불의의 습격에 부상당한 유방은 다시 성고로 도망쳤다.
이때 한신은 하북(河北)을 함락시킨 후 제(齊)나라와 조(趙)나라를 잇달아 무찔렀다. 한신의 군대가 초나라를 공격하려 하자 항우는 장군 용저(龍且)를 보내 한신과 맞서게 했다. 하지만 믿었던 용저의 군대가 한신에게 크게 패하자 두려워진 항우는 무섭(武涉)을 보내 한신에게 천하를 셋으로 나누자고 제안했다. 즉, 초한(楚漢) 및 한신의 제(齊)가 각기 천하의 3분의 1을 차지하자는 매력적인 제안이었지만 유방에 대한 의리를 중시한 한신에게 거절당했다.
성고에서 한군과 대치하고 있던 항우는 팽월이 후방에서 또 식량보급을 끊어버리자 화가 나서 직접 팽월에 대한 공격에 나서기로 했다. 항우는 떠나면서 뒷일이 불안해 대사마 조구(曹咎)에게 절대 한군과 싸우지 말고 그냥 지키기만 하라고 당부했다.
처음에 조구는 항우의 명령대로 한군이 아무리 싸움을 걸어와도 응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군에서 사람을 시켜 5-6일 연속해서 초군을 모욕하자 조구가 노하여 전면적인 공격에 나섰다. 항우가 없는 초군은 한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 전투에서 초군이 크게 패했고 대사마 조구, 새왕 사마흔 등이 패배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고 전투의 소식을 들은 항우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와야 했다. 돌아와 보니 한군은 식량이 풍부한 반면 초군은 오랜 전투에 지쳐 있었고 식량마저 떨어진 상태였다. 이때 유방이 항우에게 사람을 보내 가족들을 풀어줄 것을 요청했다. 처음에 거절하던 항우는 홍구(鴻溝)를 중심으로 천하를 동서로 양분할 것을 약속한 후에야 유방의 부모와 처자를 석방했다. 이후 항우는 곧장 동쪽으로 돌아갔다.
유방 역시 서쪽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장량과 진평이 반대하고 나섰다.
"한은 지금 천하의 반을 차지했으며 제후들도 모두 우리 쪽에 귀의했습니다. 초나라 군사들은 지치고 군량도 떨어졌으니 이는 하늘이 초나라를 망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기회를 이용해 탈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 놓아주고 공격하지 않는다면 호랑이를 길러 후환을 남겨두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유방이 이 말이 옳다고 여겨 항우와의 약조를 어기고 다시 초군을 추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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