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이 정장으로 있을 당시 진나라는 혼란한 시기였다. 당시 정장의 임무는 주로 국가를 대신해 백성들에게 세금을 걷고 노역(勞役)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유방이 직무상 부역(賦役)에 종사할 사람들을 데리고 역산(酈山)까지 인솔을 하는데, 당시 뒤숭숭한 사회분위기 속에 도처에서 도망자가 생겼고 유방이 인솔하던 무리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도망쳤다. 이대로 역산에 도착한다면 사람이 불과 몇 명 남지 않을 것이고, 단 한명이라도 도망자가 생기면 인솔 책임자도 가혹한 처벌을 받아야 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이런 상황 속에서 책임 추궁이 두려워 악착같이 임무를 수행하거나 혹은 자기 목숨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제 살길만을 모색할 것이다. 하지만 유방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유방은 풍읍(豊邑) 서쪽에 있는 늪지에 이르자 가던 길을 멈추고 인솔하던 사람들과 술을 나눠 마셨다. 그리고는 밤이 되자 인솔하던 사람들을 풀어주면서 말했다. "당신들은 모두 도망가서 각자 살 길을 찾으시오. 나 역시 곧 도망칠 것이오." 그가 인간적으로 대우해주자 많은 사람들이 유방의 넓은 흉금에 반했고 이후 직접 그를 따라나선 장정들이 10명이 넘었다. 이때부터 유방의 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유방은 자신이 인솔하던 사람들을 풀어준 후 남아 있던 술을 더 마신 후 한밤중에 작은 늪지를 따라 난 길을 걸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앞에 가던 사람이 돌아와 "앞에 큰 뱀이 길을 가로 막고 있으니 되돌아가십시오."라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잔뜩 술에 취한 유방은 "장사(壯士)가 가는 길에 무엇이 두려우랴!" 라고 호기를 부리면서 앞으로 나아가 검을 뽑아서 뱀을 잘라 버렸다.
유방은 그 후 몇 리를 더 걸어간 후 술에 취해 더 이상 걷지 못하고 길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다.
기이한 것은 당시 유방을 뒤따르던 사람들이 뱀이 죽은 곳에 이르자 한 노파가 통곡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의아하게 여긴 사람들이 노파에게 우는 까닭을 묻자 노파가 대답했다.
"어떤 자가 내 아들을 죽였기 때문에 이렇게 통곡하고 있다. 내 아들은 백제의 아들이다. 뱀으로 변신해 길을 막고 있었는데 지금 적제(赤帝)의 아들에게 참살 당했으니 그래서 통곡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노파가 이상한 말을 한다고 여겨 혼내주려 하자 노파는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노파가 사라진 후 뒤따라오던 사람들이 유방이 누워있는 곳에 이르니 이때 유방은 술에서 깨어 있었다. 그가 유방에게 방금 겪은 일을 알려주자 유방은 내심으로 아주 기뻐하면서 자신이 뱀을 죽인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후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모두 유방을 더욱 경외(敬畏)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일찍이 진시황은 "동남쪽에 천자의 기가 있다"고 여겨 직접 동쪽지역을 순행하여 기를 누르고자 했다. 유방은 이 운기(雲氣)가 자신에게 있다고 여겨 깊은 골짜기 속으로 도망쳤다. 신기한 것은 당시 유방이 아무리 깊은 산골짜기에 숨어도 부인 여 씨는 쉽게 그를 찾아낼 수 있었다. 유방이 이상하게 여겨 그 연유를 묻자 여 씨가 대답했다. "당신이 계신 곳에는 위에 늘 한 무리 운기가 있어요. 그것을 따라가면 당신을 쉽게 찾을 수 있답니다." 유방이 이 말을 듣고는 아주 기뻐했다. 패현 젊은이들도 이 이야기를 들은 후 많은 사람들이 유방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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