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제의 뒤를 이은 원제의 이상주의는 전한의 정치적인 발전을 저해시키고 결국 망국의 조짐이 보이고, 뒤를 이은 황제들이 개혁에 실패하면서 결국은 왕망에 의해 전한은 멸망을 하게된다.
1.전한 성제 (漢成帝)
원제의 뒤를 이어 장남 유오(成帝 劉驁)가 황위에 오른다. 전한의 12대 황제 한 효성황제 유오(漢 孝成皇帝 劉驁, 기원전 51년 ~ 기원전 7년, 재위 기원전 33년 ~ 기원전 7년)로 자는 태손(太孫)이다. 26년간 재위에 있었다. 짧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성제는 주색에만 빠져 정사를 소홀히 했다.성제는 황태후 왕씨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고 황태후의 오빠 대사마 왕봉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황태후는 손자를 왕위에 올려놓기 위해 조비연 과 조합덕을 양아공주 집으로 보내 성제의 눈에 띄게 했는데 조비연과 조합덕 은 미모가 굉장히 아름다웠고 가무로 성제의 마음을 홀린다. 성제는 조씨 자매를 불러들이고 조씨 자매는 차례대로 성제를 모셨다. 그리고 어느 날 성제가 조합덕의 침상에서 급사하고 만다. 성제의 죽음에 많은 의문이 있었는데, 성제가 급사한 지 얼마되지않아 조합덕은 자살한다. 성제의 시기는 전한의 쇠퇴기로 기득권들의 부패가 매우 심각해져가던 때였고 여기에는 성제의 책임이 가장 크다 할 것이다.
2. 전한 애제
성제에게는 후사가 없었다. 성제가 갑작스럽게 죽자 뒤를 이은 황제는 원제의 후궁이었던 소의 부씨(昭儀 傅氏)의 차남 공제 유강(恭王 劉康)의 아들로 원제의 손자가 되는 유흔이 전한의 13대 황제 애제 (한 효애황제 유흔, 漢 孝哀皇帝 劉欣, 기원전 27년 ~ 기원전 1년; 재위기간 기원전 7년~2년)가 20세에 등극한다. 근데 애제는 중국 역사에도 유명한 동성애 황제였다. 애제의 마음을 뺏은 미남자는 소의동씨의 동생이었던 동현(董賢)이었다. 애제는 동현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고 대사마까지 진급을 시킨다. 나이와 능력에 비해 지나친 대우였고, 이는 전한 멸망을 가속화하게 되는 결과가 된다. 애제가 26세가 되던 재위 6년만에 죽자 동현(董賢)은 자신의 처와 함께 자살하고 만다.
3.전한 평제
전한의 14대 황제 한 효평황제 유간(漢 孝平皇帝 劉衎, 기원전 9년 ~ 기원후 5년, 재위 기원전 1년 ~ 기원후 5년), 연호는 원시(元始) 본래 휘는 기자(箕子)였으나, 간(衎)으로 고쳤다. 중산효왕 유흥(中山孝王 劉興)의 아들로 어머니는 위희(衛姬)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중산왕이 되었는데, 애제의 죽음으로 아홉살의 나이에 황제가 되었다. 기원후 4년 왕망의 딸을 황후로 맞았고 이듬해인 14살이 되던 해에 장인인 왕망에 의해 독살당했다.
4. 전한의 멸망
전한의 15대황제이며 마지막 황제였던 유자영(孺子嬰, 5년 ~ 25년, 재위 : 6년 ~ 8년11월)은 말대황제(末代皇帝),정안공(定安公)으로 불리기도 하며, 성은 유(劉), 이름은 영(嬰)이다. 선제의 서자인 초효왕(楚孝王) 유오(劉囂)의 증손이자 유오의 서자인 광척양후(廣戚煬侯) 유훈(劉勳)의 손자이며 광척후(廣戚侯) 유현(劉顯)의 아들이다.
안한공(安漢公) 왕망(王莽)이 평제를 독살한 후, 왕망은 태어난지 1년 밖에 안된 광척후 유현의 아들인 유영을 6년 3월 기축일(1일)에 황태자로 세운 뒤, 옛날 주나라 때 주공이 어린 성왕을 보필한 것을 본받아 유자(孺子)라 호칭했다. 그런 뒤 반대를 무릅쓰고 스스로를 ‘가황제(假皇帝)’로 호칭하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섭황제(攝皇帝)’로 호칭 하며 임시 제위에 올랐다. 그리고 유자는 어리다는 이유로 황제로 세우진 않았다. 그리고 서기 8년 11월 왕망은 전한을 멸하고 신나라를 세우고 황제에 등극한다. 이때까지를 서한 혹은 전한 시대라고 한다. 이후 왕망의 신은 광무제에 의해 멸망하게 후한 시대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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