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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헤르만 헷세 – 탄식

올드코난 2010. 6. 30.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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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Herman Hesse)


탄식

 

 우리에게는 존재가 부여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흐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모든 형식에 기꺼이 흘러든다.

 낮이나, 밤이나. 동굴이나, 사원으로.

 우리는 뚫고 나아간다. 존제에  대한 갈망이 우리를 몰

아치고 있다.

 

 우리는 쉬지 않고 형식을 하나씩 완성한다.

 어떤 형식도 우리의 고향이나 행복이나 고통은 되지 않

는다.

 우리는 언제나 도중에 있으며 항상 손님이다.

 밭이나 보섭도 우리를 부르지  않고, 우리를 위해서 빵

은 생기지 않는다.

 

 신께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

.

 신은 진흙인 듯 우리를 매만진다.

 진흙은 말이 없고,  뜻대로 되며,  울지도 웃지도 않는

.

 이겨지기는 하지만 구워서 굳힐 수는 없다.

 언젠가는 굳어서 돌이 되어 영원하리라.

 그런 소망이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나래친다.

 그러나 불안한 전율은 끝내 남을 뿐,

 우리의 삶에는 결코 휴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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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Herman Hesse)
1877.7.2 ~ 1962.8.9

독일계 스위스인 시인,소설가,화가

 

1877 독일 남부 슈바벤 주의 칼브에서 개신교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요하네스 헤세는 인디아에서 선교활동을 적이 있는 선교사였고, 외삼촌 빌헬름 군데르트는 일본에서 활동한 교육가로 불교연구의 권위자였다. 이러한 환경은 헤세가 동양사상에 관심을 갖게 했다.

14 때인 1891 명문 개신교 신학교이자 수도원인 마울브론 기숙신학교에 입학했지만, 부적응과 신경쇠약증 발병으로 1 만에 중퇴했다. 이때의 경험은 소설 《수레바퀴 밑에서》에서 비판적으로 묘사되었다. 시계부품공장 견습공, 서점 점원 등을 전전하면서 2년간 방황하던 헤르만 헤세는 튀빙겐에서 서점 점원으로 일하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삶의 안정을 찾았다. 1904 『페터 카멘찐트(향수)』를 통해 헤세는 일약 독일어권에서 유명한 작가가 되며, 이후 그는 성공적인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1 세계대전이 시작할 즈음에 『페터 카멘찐트』는 6만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한다.

1 세계대전 당시 반전주의적 태도로 극우파들의 애국주의에 반대했다가 독일에서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돌출된 행동은 당시 지식인들이 전쟁을 비판하기는커녕, 오히려 전쟁을 지지하고 다른 민족에 대한 미움을 부추기기까지 하는 극우성을 보이는 것에 대해 실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식민지로 전락한 아시아를 보면서 환멸을 느꼈지만, 아시아 여행경험(1911)으로 느낀 사해동포주의도 그의 애국주의 반대집필의 배경이 되었다. 이때 나온 작품이 데미안이다. 소설은 그가 크게 성공을 거둔 작품 하나이다.

1923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고, 2 세계 대전 때에 헤르만 헤세의 작품은 인쇄에 필요한 종이가 배당되지 않게 나치의 탄압을 받았다. 1946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대표작

§  《수레바퀴 밑에서Unterm Rad(1906)

§  데미안 Demian -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6)

§  《싯다르타 Siddhartha(1922)

§  《황야의 이리 Der Steppenwolf(1927)

§  동방 여행 Journey to the East (1932)

§  《유리알 유희 Das Glasperlenspiel(1943)

(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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