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시

시) 이상화 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의 침실로

올드코난 2010. 7. 8.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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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며

  종달이는 울타리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다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같은 멀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쁜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도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서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몸 신명이 집혔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나의 침실로

 

  마돈나! 지금은 밤도 목거지에 다니로라 피곤하여 돌아 가련도다.

  ,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

오너라.

 

  마돈나! 오려무나, 네 집에서 눈으로 유전하던 진주는 다 두고 몸만

오너라.

  빨리 가자. 우리는 밝음이 오면 어딘지 모르게 숨는 두 별이어라.

 

  마돈나! 구석지고도 어둔 마음의 기리에서 나는 두려워 떨며 기다리노라.

  , 어느 덧 첫닭이 울고-뭇개가 짓도다. 나의 아씨여, 너도 듣느냐.

 

  마돈나! 지난 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 둔 침실로 가자, 침실로!

  낡은 달은 빠지려는데, 내 귀가 듣는 발자국-, 너의 것이냐?

 

  마돈나! 짧은 씸지를 더우 잡고, 눈물도 없이 하소연하는 내 마음의

촛불울 봐라.

  양털같은 바람결에도 질식이 되어 얕푸른 연기로 꺼지려는도다.

 

  마돈나! 오너라, 가자. 앞산 그리매가 도깨비처럼 발도 없이 이곳 가까이

오도다.

  , 행여나 누가 볼는지-가슴이 뛰누나,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마돈나! 날이 새련다. 빨리 오려므나. 사원의 쇠북이 우리를 비웃기 전에

  네 손이 내 목을 안아라. 우리도 이 밤과 같이 오랜 나라로 가고 말자.

 

  마돈나! 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다리 건너 있는 내 침실, 열 이도

없으니!

  , 바람이 불도다. 그와 같이 가볍게 오려무나, 나의 아씨여, 네가

오느냐?

 

  마돈나! 가엾어라. 나는 미치고 말았는가. 없는 소리를 내 귀가 들음은-

  내 몸에 피란 피-가슴의 샘이 말라 버린 듯 마음과 몸이 타려는도다.

 

  마돈나! 언젠들 안 갈 수 있으랴. 갈 테면 우리가 가자, 끄을려 가지

말고!

   너는 내 말을 믿는 마리아-내 침실이 부활의 동굴임을 네가 알련만...

 

  마돈나! 밤이 주는 꿈, 우리가 얽는 꿈, 사람이 안고 궁그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느니,

  ,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는 나의 침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마돈나! 별들의 웃음도 흐려지려 하고, 어둔 밤 물결도 잦아지려는도다.

  , 안개가 사라지기 전으로 네가 와야지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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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상화 소개 및 이력, 설명

이상화
(1901. 4. 5 경북 대구~1943. 4. 25 서울.)


본관은 경주
. 호는 무량(無量)·상화(尙火 : 또는 想華)·백아(白啞).

경북 대구 출생. 호는 상화. 일본 동경 외국어학교 불어과 졸업. 월탄, 팔봉 등과 <빽조>를 창간(1921). 중국대륙을 방랑하며 낭만적이고  상징적인 시를 썼으며, 잘 알려져 있는 나의 침실로18세때 작품이다.

아버지 시우(時雨)와 어머니 김신자(金愼子)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나 7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가정 사숙(私塾)에서 큰아버지 일우(一雨)에게 교육을 받았다. 1916년 경성중앙학교에 입학해 1919년 수료하고, 강원도 일대를 방랑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대구학생운동에 참여하고 백기만과 함께 거사하려다 사전에 발각되어 잠시 서울에 피신했다. 1921년 현진건의 추천으로 〈백조〉 동인에 가담했고, 1922년 프랑스 유학을 목적으로 도쿄[東京]로 건너가 아테네 프랑세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다 관동대지진으로 귀국했다. 1925년 박영희·김기진 등과 함께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에 참여했고, 1927년 대구에 돌아왔으나 여러 번 가택수색을 당했으며 의열단 이종암사건에 말려들어 구금되기도 했다. 1937년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친형인 이상정 장군을 만난 이유로 5개월 정도 옥살이했다. 1934년 〈조선일보〉 경상북도총국을 경영했으나 실패하고, 1937년 이후 교남학교에서 영어와 작문을 가르쳤는데, 이때 "피압박 민족은 주먹이라도 굵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교남학교에 권투부를 신설했다. 1940년 학교를 그만두고 독서와 연구에 몰두하며 〈춘향전〉을 영역하고 〈국문학사〉·〈불란서 시 평석〉 등을 기획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위암으로 죽었다. 1946년 경상북도 대구 달성공원에 상화시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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