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시

시) 주요한 作 불놀이, 빗소리, 샘물이 혼자서

올드코난 2010. 7. 8.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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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한 詩

 
불놀이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강물 위에 스러져 가는 분홍빛

... 아아,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사월이라 파일 날, 큰 길을 물밀어 가는 사람 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아아,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시뻘건 불덩이가 춤을 춘다. 잠잠한 성문

위에서 내려다 보니, 물 냄새, 모래 냄새, 밤을 깨물고하늘을 깨물은

횃불이 그래도 무엇이 부족하여 제 몸까지 물고 뜯으며, 혼자서 어둔 가슴

품은 젊은 사람은 과거의 퍼런 꿈을 찬 강물 위에 내어던지나 무정한

물결이 그 그림자를 멀출 리가 있으랴?-아아 꺽어서 시들지 않는 꽃도

없건마는, 가신 임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야, 에라 모르겠다.

불길로 이 가슴 태워 버릴까. 어제도 아픈 발 끌면서 무덤에 가 보았더니

겨울에는 말랐던 꽃이 어느 덧 피었더라마는 사랑의 봄은 또 다시 안

돌아오는가, 차라리 속 시원히 오늘 밤 이 물속에... 그런데, 행여나

불쌍히 여겨 줄 이나 있을까... 할 적에 퉁탕 불티를 날리면서 튀어나는

매화포, 펄떡 정신을 차리니 우구구 떠드는 구경꾼의 소리가 저를 비웃는

듯 꾸짖는 듯, 아아, 좀 더 강렬한 정열에 살고 싶다. 저기 저 횃불처럼

엉기는 연기, 숨막히는 불꽃의 고통 속에서라도 더욱 뜨거운 삶을 살고

싶다고 뜻밖에 가슴 두근 거리는 것은 나의 마음...

 

  사월달 따스한 바람이 강을 넘으면 청류벽 모란봉 높은 언덕 위에

허어옇게 흐느끼는 사람떼. 바람이 와서 불적마다 봄빛에 물든 물결이 미친

웃음을 웃으니, 겁 많은 물고기는 모래 밑에 들어 박히고, 물결치는

뱃속에서 졸음오는 리듬의 형상이 오락가락-어른거리는 그림자, 일어나는

웃음소리, 달아논 등불 밑에서 목청 길게 빼는 어린 기생의 노래, 뜻밖에

정욕을 이끄는 불구경도 이제는 겹고, 한 잔 한 잔 또 한 잔 끝없는 술도

인제는 싫어, 지저분한 배 밑창에 맥없이 누우면 까닭 모르는 눈물은 눈을

데우며, 간단 없는 장구 소리에 겨운 남자들은 때때로 불 이는 욕심에 못

견디어 번득이는 눈으로 뱃가에 뛰어 나가면, 뒤에 남은 죽어가는 촛불은

우그러진 치마 깃 위에 조을 때, 뜻 있는 듯이 찌걱거리는 배젖개 소리는

더욱 가슴을 누른다...

 

  아아, 강물이 웃는다. 괴상한 웃음이다. 차디찬 강물이 컴컴한 하늘을

보고 웃는 웃음이다. 아아, 배가 올라온다. 배가 오른다. 바람이 불 적마다

슬프게 삐걱거리는 배가 오른다.

 

 

  저어라 배를, 멀리서 잠자는 능라도까지, 물살 빠른 대동강을 저어

오르라. 저기 너의 애인이 맨발로 서서 기다리는 언덕으로 곧추 뱃머리를

돌리라. 물결 끝에서 일어나는 추운 바람도 무엇이리오. 괴이한 웃음

소리도 무엇이리오. 사랑 잃은 청년의 가슴 속도 너에게야 무엇이리오.

그림자 없이는 밝음도 있을 수 없거늘-오오 다만 네 확실한 오늘을 놓치지

말라. 오오 사르라, 오늘밤! 너의 빨간 횃불을 빨간 입술을 눈동자를 또한

너의 빨간 눈물을.

 

 

     빗소리

 

  비가 옵니다.

  밤은 고요히 깃을 벌리고

  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이즈러진 달이 실낱같고

  별에서도 봄이 흐를 듯이

  따뜻한 바람이 불더니

  오늘은 이 어둔 밤을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다정한 손님같이 비가 옵니다.

  창을 열고 맞으려 하여도

  보이지 않게 속삭이며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뜰 위에 창 밖에 지붕에

  남 모를 기쁜 소식을

  나의 가슴에 전하는 비가 옵니다.

 

 

샘물이 혼자서

 

  샘물이 혼자서

  춤추며 간다.

  산골짜기 돌 틈으로

 

  샘물이 혼자서

  웃으며 간다.

  험한 산길 꽃사이로

 

  하늘은 밝은데

  즐거운 그 소리

  산과 들에 울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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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한 (1900. 10. 14 평양~1979)
평남 평양 출생이며, 호는 송아. <창조> 동인으로
우리나라 신시운동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이며 전원과 자연을 구가한 낭만적인 세계를 노래한 시인. 주요 작품으로는 '불놀이'1919)가 있고, 시집 <아름다운 새벽>(1924)) <3인의 시가집>(1929:이광수, 김동환 공저) <복사꽃>(1930)이 있다.

목사인 아버지 공삼(孔三)의 8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소설가 주요섭은 그의 아우이다. 1912년 평양숭덕소학교를 졸업하고 선교목사로 파견된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1918년 메이지 학원[明治學院] 중등부를 졸업했다. 중학시절에 회람잡지 〈사케비〉를 펴냈다고 하나 확인할 수 없다. 도쿄 제1고등학교[東京第一高等學校]에 다니면서 1919년 2월 김동인·전영택 등과 순문예동인지 〈창조〉를 펴냈고, 그해 3·1운동이 일어나자 상하이[上海]로 망명해 1925년 후장대학[滬江大學]을 졸업했다. 1년 동안 대한민국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편집을 맡아보았다. 1926년 귀국하여 동아일보사 기자로 입사했으며, 1929년 광주학생사건 때 잠시 투옥된 적도 있었다. 동아일보사 편집국장 및 논설위원, 조선일보사 편집국장 및 전무를 역임하고, 1935년부터 실업계에 입문하여 화신상회 이사로 근무했다. 8·15해방이 되자 대한상공회의소 특별위원, 대한무역협회 회장, 국제문제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1958년 민주당 민의원 의원에 당선되어 1960년 재선되었으며 부흥부장관 및 상공부장관을 지냈다. 1964년 경제과학심의회의 위원, 1965~73년 대한일보사 회장, 1968년 대한해운공사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경기도 고양시에 안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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