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훈 詩
승무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설러워라.
빈 대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똥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양 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고풍의상
하늘로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 끝 풍경이 운다.
처마 끝 곱게 늘이운 주렴에 반월이 숨어
아른아른 봄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가는 밤
곱아라 고아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줏빛 호장을 받친 호장저고리
호장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
살살이 퍼져 내린 곧은 선이 스스로 돌아 곡선을 이루는 곳
열 두 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치마 끝에 곱게 감춘 운혜 당혜
발자취 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삶며시 문을 열고,
그대는 어느 나라의 고전을 말하는 한 마리 호접
호접인 양 사풋이 춤을 추라, 아미를 숙이고...
나는 이 밤에 옛날에 살아 눈 감고 거문고 줄 골라 보리니
가는 버들인 양 가락에 맞추어 흰 손을 흔들어지이다.
완화삼
차운 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
조지훈. 1920 - 1968. 경북 영양 출생. 본명은 동탁이며, 혜화전문학교를
졸업했다. 1939년 <문장>지에 시가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1939)하여
<백지> 동인으로 활동했다. 초기 시는 불교적 선의 감각을 엿볼 수 있으며
동양적 정신의 깊이를 보여주는 시세계를 완성했다. 박두진, 박목월과 함께
<청록집>을 발행하기도 했다.
'배움 >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이상화 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의 침실로 (0) | 2010.07.08 |
---|---|
시) 서정윤 作 홀로서기 (0) | 2010.07.08 |
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당신을 보았습니다., 인과 율, 우는 때 (0) | 2010.07.08 |
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슬픔의 삼매, 비방, 심은 버들 (0) | 2010.07.08 |
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눈 물, 꿈과 근심, 차라리 (0) | 2010.07.08 |
시) 김억 作 봄바람, 산수갑산, 김억 소개 이력 (0) | 2010.07.08 |
시) 이광수 作 붓 한 자루, 서울로 간다는 소, 이광수 약력 (0) | 2010.07.08 |
시) 정지용 作 - 산엣 색시 들녘 사내, 내맘에 맞는 이, 무어래요 (0) | 2010.07.08 |
시) 정지용 作 - 바 람, 별똥, 기차, 고향 (0) | 2010.07.08 |
시) 정지용 作 - 병, 할아버지, 산에서 온 새 (0) | 2010.0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