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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논개의 애인이 되어 그의 묘에 , 비바람

올드코난 2010. 7. 11.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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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문학, , 소설

만해 한용운(韓龍雲)



 論介
愛人 되어 그의

 

  낮과 밤으로 흐르고 남강(南江)은 가지 않습니다.

  바람과 비에  우두커니  섰는 촉석루는    같은 광음(光陰)      

따라서 잡습니다.

  논개여, 나에게 울음과  웃음을 동시에  주는 사랑하는 논개여.    

  그대는   조선(朝鮮)의 무덤   가운데 피었던   좋은 꽃의  하나      

이다. 그래서 그 향기는 썩지 않는다.

  나는 시인으로 그대의 애인이 되었노라.

  그대는 어디 있느뇨.  죽지 않은  그대가 이  세상에는 없구나.     

  

  나는 황금의 칼에  베어진 꽃과  같이 향기롭고  애처로운 그대     

의 당년(當年)을 회상한다.

  술 향기에 목마친 고요한  노래는 옥()에 묻힌  썩은 칼을 울렸다.

  춤추는 소매를 안고  도는 무서운  찬 바람은  귀신(鬼神) 나라     

의 꽃수풀을 거쳐서 떨어지는 해를 얼렸다.

  가냘픈 그대의  마음은 비록침착하였지만   떨리는 겁보다도 더      

욱 무서웠다.

  아름답고 무독(無毒)  그대의  눈은 비록  웃었지만  우는 것      

보다도 더욱 슬펐다.         

 

  붉은 듯하다가  푸르고 푸른  듯하다가 희어지며,  가늘게 떨리   

는 그재의  입술은 웃음의  조운(朝雲)이냐, 울음의  모우(暮雨) 

, 새벽달이 비밀이냐, 이슬꽃의 상징이냐.    

  삐삐 같은  그대의  손에 꺽이지  못한  낙화대(落花臺)의 남은      

꽃은 부끄럼에 취하여 얼굴이 붉었다.

  옥 같은  그대의 발꿈치에  밟힌 강  언덕의 묵은  이끼는 교궁      

(驕矜)에넘쳐서 푸른   사롱(紗籠)으로 자기의   제명(題銘)을 가       

리었다.

 

  아아, 나는 그대도  없는 빈  무덤 같은  집을 그대의 집이라고     

부릅니다.

  만일 이름뿐이나마 그대의 집도  없으면 그대의 이름을 불러 

기회가 없는 까닭입니다.

  나는 꽃을  사랑합니다마는  그대의 집에  피어있는  꽃을 꺽을      

수는 없습니다.

  그대의 집에 피어있는  꽃을 꺽으려면  나의 창자가  먼져 꺽여   

지는 까닭입니다.

  나는 꽃을 사랑합니다마는  그대의 집에  꽃을 심을  수는 없습니다.

     그대의 집에 꽃을  심으려면 나의  가슴에 가시가  먼저 심어지   

는 까닭입니다.

  용서하여요 논개여,  금석(金石) 같은  굳은 언약을  저버린 것     

은 그대가 아니요 나입니다.

  용서하여요 논개여, 쓸쓸하고  호젓한 잠자리에  외로이 누워서    

끼친 한()에 울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고 그대입니다.

  나의 가슴에  <사랑>  글자를 황금으로  새겨서  그대의 사당    

(祠堂)에 기념비를 세운들 그대에게 무슨 위로가 되오리까.

  나의 노래에 <눈물>  곡조를 낙인으로  찍어서 그대의 사당에  

제종(祭鍾)을 올린대도 나에게 무슨 속죄가 되오리까.

  나는 다만 그대의  유언대로 그대에게  다하지 못한  사랑을 영     

원히 다른 여자에게는 주지 아니할 뿐입니다. 그것이  그대의 얼굴 

과 같이 잊을 수가 없는 맹세입니다.

  용서하여요 논개여,  그대가 용서하면  나의 죄는  신에게 참회   

를 아니 한대도 사라지겠습니다.              

 

  천추(千秋)에 죽지 않는 논개여,

  하루도 살 수 없는 논개여,

  그대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이 얼마나  즐거우며 얼마나 슬프겠는가?

  나는 웃음이  겨워서  눈물이 되고   눈물이 겨워서 웃음이   니다.

  용서하여요, 사랑하는 오오 논개여.      

 
비바람

 

  밤에 온 비바람은

  구슬 같은 꽃 수풀을

  가엾이도 지쳐 놓았다.

 

  꽃이 피는 대로 핀들

  봄이 몇 날이나 되랴마는

  비바람은 무슨 마음이냐.

  아름다운 꽃밭이 아니면

  바람 불고 비 올 데가 없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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