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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산골물, 칠석

올드코난 2010. 7. 11.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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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韓龍雲)


산골물

 

  산골 물아

  어데서 나서 어데로 가는가.

  무슨 일로 그리 쉬지 않고 가는가.

  가면 다시 오려는가.

 

  물은 아무 말도 없이

  수없이 얼크러진 등 댕담이.칡덩쿨 속으로

  작은 달이 넘어가고

  큰 달은 돌아가면서

  쫄쫄쫄쫄 쇠소리가

  양안 청산(兩眼淸山)에 반향(反響)한다.

  그러면

  산에서 나서 바다로 이르는 성공의 비결이

  이렇단 말인가.

  물이야 무슨 마음이 있으랴마는

  세간(世間)의 열패자(劣敗者)인 나는

  이렇게 설법(說法)을 듣노라.

칠석

 

  「차라리 님이   없이 스스로   님이 되고   살지언정 하늘         

녀성은 되지 않겠어요.  녜녜」 나는 언제인지  님의 눈을 쳐다보  

며 조금 아양스런 소리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 말은 견우(牽牛)  님을 그리는  직녀(織女)가 일  년에 한     

번씩 만나는  칠석을 어찌  기다리나 하는  동정의 저주였습니다.     

  이 말에는  나는 모란꽃에  취한 나비처럼  일생을 님의  키스에    

바쁘게 지내겠다는 교만한 맹세가 숨어 있습니다. 

 

  아아, 알 수 없는  것은 운명이요, 지키기  어려운 것은 맹세입  

니다.

  나의 머리가 당신의 팔 위에 도라질을 한 지가 칠석을 열 번    

이나 지나고 또 몇 번을 지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용서하고 불쌍히 여길  뿐이요, 무슨 복수    

(復讐的) 저주(詛呪)는 아니하였습니다.

  그들은 밤마다  밤마다  은하수를 새에두고  마주  건너다 보며      

이야기하고 놉니다.

  그들은 해쭉해쭉 웃는  은하수의 강안(江岸)에서  물을 한 줌씩    

쥐어서 서로 던지고 다시 뉘우쳐 후회합니다.

  그들은 물에다  발을 잠그고  반 비슥이  누워서 서로  안 보는 체하고 무슨 노래를 부릅니다.

  그들은 갈잎으로 배를 만들고  그 배에다 무슨  글을 써서 물에    

띄우고 입김으로 불어서  서로 보냅니다. 그리고  서로 글을 보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잠자코 있습니다.

  그들은 돌아갈 때에는 서로  보고 웃기만 하고  아무 말도 아니  

합니다.

 

  지금은 칠월칠석날 밤입니다.

  그들은 난초(蘭草) 실로  주름을 접은  ()꽃의 웃옷을 입었  

습니다.

  그들은 한 구슬에 일곱  빛 나는 계수나무  열매의 노리개를 찼  

습니다.

  키스에 술에 취할 것을  상상하는 그들의 뺨은  먼저 기쁨을 못    

이기는 자기의 열정에 취하여 반이나 붉었습니다.

  그들은 오작교를 건너갈  때에 걸음을  멈추고 웃옷의 뒷자락을    

검사합니다.

  그들은 오작교를 건너서  서로 포옹하는  동안에 눈물과 웃음이   

순서를 잃더니 다시금 공경하는 얼굴을 보입니다.

  아아, 알 수 없는  것은 운명이요, 지키기  어려운 것은 맹세입 니다.

  나는 그들의 사랑이 표현인 것을 보았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나의 사랑을 볼 수가 없습니다.

  사랑의 신성(神聖)은 표현에 지나지 않고 비밀에 있습니다.

  그들이 나를 하늘로  오라고 손짓을  한대도 나는  가지 않겠습     

니다.

  지금은 칠월 칠석날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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