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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낙화, 산거, 지는 해

올드코난 2010. 7. 11.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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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韓龍雲)



 落

 

  떨어진 꽃이 힘없이 대지(大地)의 품에 안길 때

  애처로운 남은 향기가 어데로 가는 줄을 나는 안다.

  가는 바람이 작은 풀과 속삭이는 곳으로 가는 줄을 나는 안다.

  떨어진 꽃이 굴러서  알지 못하는  집의 울타리  사이로 들어갈     

때에

  쇠잔한 붉은 빛이 어데로 가는 줄을 나는 안다.

  부끄러움 많고 새암  많고 미소  많은 처녀의  입술로 들어가는     

것을 나는 안다.

 

  떨어진 꽃이 날려서 작은 언덕을 넘어갈 때에

  가엾은 그림자가 어데로 가는 줄을 나는 안다.

  봄을 빼앗아가는 악마의 발 밑으로 사라지는 줄을 안다.

山居 (산거)

 

  티끌 세상을 떠나면

  모든 것을 잊는다 하기에

  산을 깍아 집을 짓고

  돌을 뚫어 샘을 팠다.

  그름을 손인양하여

  스스로 왔다 스스로 가고

  달은 파수꾼도 아니언만

  밤을 새워 문을 지킨다.

  새소리에 노래라 하고

  솔바람을 거문고라 하는 것은

  옛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오고 가지 않는 근심은

  오직 작은 베게가 알 뿐이다.

 

  공산(空山)의 적막이여

  어데서 한가한 근심을 가져오는가.

  차라리 두견성도 없이

  고요히 근심을 가져오는

  오오 공산의 적막이여.

 

 지는 해

 

  지는 해는

  성공한 영웅의 말로(末路)같이

  아름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창창(蒼蒼)한 남은 빛이

  높은 산과 먼 강을 비치어서

  현란한 최후를 장식하더니

  홀연히 엷은 구름의 붉은 소매로

  뚜렷한 얼굴을 슬쩍 가리며

  결별의 미소를 띄운다.

 

  큰 강의 급한 물결은 만가(輓歌)를 부르고

  뭇산의 비낀 그림자는 임종의 역사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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