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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인슈타인 시집 – 국가적 손해, 만화경, 국화빵틀 속에서

올드코난 2010. 7. 28.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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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2      만화경

 

 

 국가적 손해

  

 글을 아껴서 쓰십시오

 김서린 대중탕 한쪽 벽에

 빨간 아크릴 글자가

 눈을 꿈뻑이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찔끔해서 다시 눈여겨본다

 물을 아껴서 쓰십시오

 개눈에는 뭣만 보인다더니

 나는 문득 수도꼭지를 잠근다

 물을 아껴서 쓰십시오

 물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끼지만

 김서린 저 편에서 준엄하게 나를 바라보는 눈

 빌어먹을 꽉 쏟아지고만 싶은데

 흥청흥청 나를 써버렸으면 좋겠는데

 그게 무슨 국가적 낭비라나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다가 쏟아지란다

 시인 여러분

 나를 아껴서 써 주십시오

 

만화경

  

 아이와 색종이를 오리면서

 도화지에 붙이며 그림을 만들면서

 그림 뒤로 사라져버리는 색종이의 뒷면을 생각했다

 울긋불긋 빛나는 이 세상도

 색종이의 뒷면 같은 무엇이 받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뒷면이 사라지면 그림은 남을 수 있을까

 거대한 이 도시는

 뒷면에서 뼈를 세운 노동이 팔 뻗쳐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의 이만큼의 생활도

 보이지 않는 이들이 떠받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신문에서 종이가 없어지면 글자들은 어떻게 떠오르나

 우리의 육신이 사라지면 영혼이 그런 빛깔로 떠오르나

 

 잘라서 남는 종이들은 왜 쓰레기로 버리면서

 우리들의 삶의 어느 부분도 이렇게 버려지는 게 아닐까

 버려지지 않고 뒤에서 떠받들지 않고 사는 세상은 없을까

 문득 궁리하다가 색종이를 잘게잘게 잘랐다

 아이가 동그란 눈으로 아빠 무어야 한다

 유리를 몇 개 주워다 만화경을 만들었다

 이제야 비로소 안팎이 없고

 버려지지 않는 천변만화의 세상이 이루어졌다

 아이가 좋아서 깡총깡총거린다


 

국화빵틀 속에서

 

 세상이 생겨났을 때

 나까지는 생기지 않고

 잘 흘러가더니

 지금 내가 누운 방은 무엇이냐

 나를 바라보는 저 어둠은?

 이편 저편을 건너 뛰어 있는

 수많은 별들은 다 누구의 것이냐

 거기다

 무슨 한방울씩의 운명을

 짜놓고 돌리는

 뜨거워오는 이 바닥은 무엇이냐

 누군가 이마에 입을 맞추고

 온몸에 달라 붙어

 한몸을 이루는 이 뜨거운 수작은?

 아이고 아이고 뜨거라

 그래 돌아눕자 그대와 나

 등짝이 다 타불것네

 우리 서로 안고나 돌자

 오메 씨원한 것

 이럴라고 세상이 너를 보내뿌렀나

 이제 우리는 무엇이 되어 남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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