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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인슈타인 시집 – 유령의 집, 용꿈, 카메라

올드코난 2010. 7. 28.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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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2      만화경

 

유령의 집

  

 아무도 없는데 가스불이

 번쩍

 파아란 눈을 뜬다

 이윽고 국이 끓고

 밥통에 김이 모락모락난다

 갑자기 티브이가 켜지고

 예쁜 아가씨가 튀어나와

 온몸을 흔들며 노래한다

 비디오 테이프가 스르륵스르륵

 그 계집애를 먹어치운다

 집에 있던 유령이 깜짝 놀라

 장농 뒤에 숨어서

 숨을 죽이고 내다본다

 따르릉!

 유령이 얼떨결에 달려가 손을 뻗는데

 덜컥 수화기가 일어난다

 밥 다 해 놓았니?

 

 수화기가 덜꺽 주저앉으며

 유령을 깔아버렸다

 

용꿈

  

 용을 보았다 입에서 불을  뿜어대고 퍼렇게 번쩍이는 두 눈, 들판의 나무

와 집들은 꺼멓게  그슬려 있었다 세상에 종말이 온 것일까  나는 표류하

는 배에 실려  쓸쓸했고 천둥과 번개 속에 흠뻑 젖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아내는 용꿈은 좋은 꿈이라고  좋아했다 나는 아니라고 외치고  싶었다

번쩍번쩍 불을 뿜어대는 용이라니  그 푸르른 비늘들이 부르르 떨리며 

탄이 되어  떨어지고 아 내가 잠시 보고    그 세상은 얼마나 황량하고

쓸쓸했던가 나는 커텐을  열고 창 밖을  내다보았다 마당의 나무들이 는개

  젖고 있었다 이 얼마나 평화롭고 고요한 봄날의  아침인가 그러나 나

는 용의 눈 안에 빨려들어가  있는 것만 같았다 이제 아침을 먹고  전철을

타고 회사엘 나가고 하루의 일을 한다는 것이  부질없이만 느껴졌다  나는

용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꼬리를 길게  늘이며 어디론가 날아가고만  싶었다  

 

 표류하는 배 하나 떠나가고 있음이여

 걸리버의 소인국으로 배는 떠나는 것인가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설 때 아내가

 복권 꼭 사세요 했다


 

카메라

  

 지하철 모니터에 내가 어른거린다

 백화점 티브이 속에서도 두리번거린다

 히죽거리며 나를 보다가 문득 깨닫는다

 은행에서 관공서, 길거리에서

 집요한 눈으로 나를 고누고 있는 카메라를

 

 나는 가방 속에 총과 탄약을 가득 든 갱일까

 불온문서나 삐라를 뿌리는 불순분자일까

 

 하늘에서도 카메라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나를 찍어댄다

 길바닥에 담배꽁초를 내던지다가

 임금인상 결단투쟁 외치는 이들을 지나치다가

 회사비밀을 어디에다 내다버릴까 궁리하다가

 주간지에서 벗은 여자를 보고 낄낄거리다가

 하늘의 모니터에서 흘끔거리는 나를 본다

 

 잠을 자다가 문득 깨어나는 한밤중에도

 스르르스르르 필림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별들의 뿌리에 칭칭 감기인 내 꿈들의 허연 뼈가

 바람이 켜는 노래를 따라 덜거덕거리며 일어나 앉아

 새벽까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읽거나

 에리히 얀츠를 읽으며 그 태풍이 불붙는 가슴으로

 들어와 박히는 카메라를 본다

 

 가만히 눈을 감고 짙푸른 하늘과 떠오르는 해를 지워본다

 눈 감은 어둠 속 저 깊고 깊은 속으로

 세포와 별들과 쿼크와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는 내가 보인다

 나는 감독도 시나리오도 없는 이 헤어날 길 없는 영화의 주인공

 한 장면도 커트 않고 상영될 아름다운 영상을 그려본다

 

 그때

 내 서른 세개의 해가 일제히 떠올라 샤타를 눌러댄다

 나는 문을 박차고 지글거리는 광야로 나선다

 누군가 백마를 타고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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