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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인슈타인 시집 – 투명한 바닥, 투명한 창, 투명한 방

올드코난 2010. 7. 28.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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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4      투명 연구

투명한 바닥

 

 길바닥을 내려다보며 걷다가……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은행잎이 굴러가는 곳의 유리같은 바닥이

 내 몸 안으로 굴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보도블록과 은행잎과

 나 사이에 있는 것들이 저 빌딩들과 산과 바다

 사이에 있는 것들이

 불을 밝혀 들고 너울거리며 일어나 회오리치며 불어와서

 나를 하늘로…… 저 깊은 하늘로 날리는 것이었다

 나는 길바닥을 내려다보며 걷고만 있는데…… 그래

 그래 나는 날고 있었다 빛을 타고 흐르며 그들 속에서

 속으로 아아 무언가 더운 것으로 풀풀 날아서……

 희디 흰 것이 되어

 땅을 뒤덮고 있었다 그 위로 내가 사뿐히 내려서

 누군가의 그림자를 덮고……그의 핏줄 속으로 들어간다

 들어간다 희디흰 눈이 되어 니코틴 더러운

 가래침에 끼어서

 어둡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그대의 가슴 깊은 곳

 한줄기 물로…… 파도가 철썩이는 곳에 이른다

 멀리 떠 있는 섬 하나 등대에 불이 보이고

 우리는 바닥에 깔린 별로서 하늘에 내돋고 있었다

 나는 그저 길바닥을 내려다보며 걷고만 있는데

 

투명한 창

 

 물을 빨아들인 스폰지가 물이 되어

 술을 빨아들인 내가 술이 되어

 회사를 빨아들인 사채업자가 사장이 되어

 땅을 빨아들인 나무가 다시 땅이 되어

 나를 빨아들인 무지개가 내가 되어 하늘 아래 걸려서

 그 투명한 유리를 통하여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보여준다

 그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듯 그들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나는 너처럼 투명해지고 굴러다니고 싶어

 스폰지가 물에게 말한다 나는 네 속에 숨어서

 누군가를 왕창 적시고 싶어 물이 스폰지에게 말한다

 너는 어제 왜 동대문에 들어가서 잠을 잤니

 임마 그걸 네가 알지 내가 어떻게 아냐

 나는 술하고 싱갱이를 하고 있었고

 사장이 된 사채업자는 장부를 수도 없이 들여다보더니

 종업원들에게 일장 연설을 하고 있었다

 이제 여러분과 나는 한 몸으로서 이 회사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아

 나무는 제 잎으로 저의 뿌리를 덮고 다시 잎을 달고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거렸고 그들이 피어 댄

 담배 연기가 가물거리며 방안에 자욱하다 

 스폰지는 물이 되고 싶고 술은 내가 되고 싶고

 나는 네가 되고 싶고 너는 내가 되고 싶다


 

투명한 방

 

 내가 너의 집에 갔을 때 피던 거 있지

 방안 가득 뽀얗게 피어나던 꽃 담배 연기 아지랑이

 나는 그게 그리워서 물밑에서 물을 보듯 너를 보아

 일렁이는 햇살 물결의 어른거림이 너에게서 오고

 다함없는 노래가 언제 어디서나 울려오는 거 있지

 네가 보고플 때면 나는 너에게로 가듯이 가라앉으며

 물 밑에 있는 산과 골짜기를 돌아 해조의 음을 따라

 굽이치는 물결로 거슬러 너의 방

 향기를 찾아가서 가곤 했지

 거기에 너는 항상 있었고 비발디와 아아 사계와 바람이

 바람이 불고 있었지 나는 그것이 영원한 것인줄 알고

 히히덕거리며 낄낄거리며 너의 향기에 취해 피어나면서

 조금씩 빗겨 가는 빛이

 노을 쪽으로 번지는 것을 보지 못했지

 가는 비 내리고 비껴 가는 빛이 높은 하늘에서

 무지개를 이룰 때에

 이제 불붙는 어둠이 오고 너의 집은 어둠 속에 잠긴다

 불을 켜야 하리 어두움에 불을 붙이고 태워야 하리

 그러나 나는 그때 무엇인가 떠오르는 것을 느낀다

 아아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별 하나, 불켜진 창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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