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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인슈타인 시집 – 뜨락 , 가등의 방, 아무렇게나 살아도

올드코난 2010. 7. 2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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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4      투명 연구

 

 

뜨락

 

 하늘의 선이 지나간다

 머리 위에 또렷하게 깔리는 선

 구름의 층이나 바람의 결

 별자리의 움직임이 아닌

 무소부재의 떠 있는 선

 손을 내밀면

 물방울 몇 개 또르르 굴러

 그 넓고 먼 뜨락을 펼친다

 아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곳

 

 때로 나는 거기에 있다

 

가등의 방

             

 지구상에 가등은 칠억칠천칠백만개이다

 나는 가등이 가진 동그란 방을 보고 있다

 지나가는 이들은 거기에 멈추어 서지 않는다

 일이프로의 사람들만 그 아래 서서 가등의 방에 든다

 그들은 책을 읽거나 누군가를 기다리며 서 있거나

 벤취에 앉아서 연인과 포옹을 하거나

 오지 않는 차를 기다리고 서 있다

 차들은 모르는 별처럼 지나가고

 차 속에서 보면 그들은 외계의 별 속에 서 있다

 지켜줄 아무런 벽도 창도 없는 방에 그들은 있다

 바람과 별과 시가 낙엽과 함께 발밑을 구르고

 누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채

 누군가는 방 속에 있고 누군가는 방 밖에 있다

 그들의 집은 저기 어둠 속 어딘가에 있고

 아직 기다리는 이는 오지 않아서 가지 못한다

 벌써 누가 자기의 방에서 불을 켜고 있는가

 저 집들 저 아파트들에서 닫힌 방이 까무룩하고

 그 방은 멀리까지 퍼져나가지 못한다

 서로를 지키는 방이 길 속에 있는데

 왜 모두들 문을 닫고 웅크린 채 벽과 천정을 바라

 불을 켜고 있는 것인지 바람만 스산하다

 그대 거기서 무엇을 보느냐

  

 나는 진종일 가등의 방에 서 있는 사람을 본다

 그는 자기만의 방이 없어서 누군가를 기다리고만 있다

 가등의 방에는 문이 없어서 누구나 드나들지만

 그는 오지 않고 그는 기다리고만 있다

 

 누가 가로수 길을 걸어서 오고 있는가

 그는 고개를 빼들고 바라다본다

 열린 방과 방을 건너서

 칠억칠천칠백만개의 방이 겹쳐진 동그라미를

 등에 지고 그가 걸어서 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너무도 눈부시어 그는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이제 우리를 해가 켜든 가등의 방에 서 있게 한다

 

 

 해는 열린 세계의 별들의 거리에 우리를 내 놓은 것이다

 이제 모든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거리로 나오리라

 나는 저 커다란 가등이 가진 동그란 방을 보고 있다

 그래도 나는 낮에 가등을 켜놓을 수만 있다면

 더 좋은 방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렇게나 살아도

 

 아무렇게나 살아도 천국에 갈 수 있다

 제 땅에 내리는 뿌리를 누가 자르랴

 잎 피우고 꽃 피우거라

 아무리 바위가 굳어도 뿌리는 그 속을 헤집고 들어가

 둥지를 튼다 잎을 피우고 줄기를

 뻗어 벼랑 아래 물에 그 속에

 한 나라를 펼친다

 꽃그늘 환한 물 널리널리 번지는 불

 타오르는 것들 숲을 이루고

 토끼며 오소리 노루며 살쾡이 수리부엉이 날린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뿌리 밖으로 저를 뻗어서

 다른 땅을 가기도 한다 뿌리 밑으로 잎새 밖으로

 흐르는 것들을 올올이 빨아들이며

 잎새에서 뿌리까지의 다른 나라를 연다

 거대한 빛기둥 속빛 타오르고

 그저 살아 있음만으로도 어디까지나 갈 수 있으니

 살아 있는 날의 기쁨이여

 뿌리여

 네가 가고 싶은 데로 가서 살아라

 썩은 놈은 빨아먹고 맑은 물은 꽃피우거라

 아무렇게나 살아도 거기에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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